[단비현장]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 추모 행사

“농촌 소멸, 곡물자급률 하락, 환경 훼손 등은 시장과 정부 실패의 결과물입니다."

지난 24일 오전 11시 충남 천안시 교보생명 계성원에서 양승룡 고려대 교수가 ‘농의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대산의 유산, 지속 가능한 농(農)을 위한 연대’를 주제로 열린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 추모 행사에서 양 교수는 기조강연을 맡았다. 그는 농업이 식품공급이라는 본원적 가치 외에 작물 재배로 탄소를 흡수하는 환경보전 기능,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활성화 기능, 치유 및 여가 공간 같은 어메니티 제공 기능, 식량안보 기능 등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원적 가치와 달리 이 다원적 기능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시장재”라며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농촌은 삶의 뿌리’ 대산 철학 따라 농업 교육 등 지원

양승룡 고려대 교수가 대산 신용호 선생 20주기 추모 행사에서 ‘농의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제공
양승룡 고려대 교수가 대산 신용호 선생 20주기 추모 행사에서 ‘농의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제공

교보생명의 창립자인 신용호 선생은 ‘농촌은 우리 삶의 뿌리요, 농업은 생명을 지켜주는 산업’이라는 철학으로 1991년 한국 최초의 농업·농촌 지원 공익법인인 대산농촌재단(이사장 김기영)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농업연구 지원, 농업인 연수, 농업리더장학생 양성 등 연간 17억 원 규모(2022년 기준)의 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5일까지 이틀 동안 열린 이번 행사는 ‘지속 가능한 농업과 농촌’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종합토론, 토크쇼로 이뤄졌고, 농민·연구자·장학생 등 200여 명이 참여했다.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미래세대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각급 학교의 농업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여론 주도층과 정책입안자 다수가 비농촌 출신이고, 농업과 직접적 관계를 갖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교양 농업 교육의 기반이 부족하면 생산자보다 소비자 관점의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 교수는 또 당장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은 있지만, 장차 농업에 종사할 가능성이 있는 아동·청소년, 은퇴를 앞둔 농부들을 위한 교육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소년 시기의 교육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낳는 만큼 ‘농촌 유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 유학이란 도시에 거주하는 초·중학생들이 일정 기간 지방에서 학교에 다니며 농촌을 체험하는 제도다.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농업 교육에 관한 주제발표를 통해 농촌 유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농업 교육에 관한 주제발표를 통해 농촌 유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로컬푸드 등 도시와 농촌 잇는 ‘재농화’ 필요

김철규 고려대 교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 - 농의 가치 확산’ 발표를 통해 한국 사회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낮은 행복도를 보이는 원인은 농촌 공간을 주변화하고 지역사회를 해체하는 ‘도시 중심주의’와 ‘산업 중심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을 지속 가능한 사회로 만드는 대안으로 ‘재농화’(re-peasantization)를 제시했다. 재농화란 네덜란드 사회학자 얀 다우 판 더르 플루흐가 제시한 개념으로, 농업 중심의 사회경제적 관계를 만들고 농업의 중요성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도시에서 텃밭을 조성하거나 로컬푸드 시장을 여는 것이 대표적 예다. 김 교수는 학교급식, 공동체형 식당 등 먹거리를 매개로 도시와 농촌을 잇는 도농연대 프로그램의 가치도 강조했다.

김철규 고려대 교수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 - 농의 가치 확산'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김철규 고려대 교수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 - 농의 가치 확산'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이보은 마르쉐친구들 대표는 김 교수의 발표와 관련해 자신이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설명했다. 마르쉐는 서울 성수동, 혜화동, 인사동 등에서 열리는 농산물직거래장터로, 상품 거래뿐 아니라 전시, 음악공연, 어린이 먹거리 교육 등이 함께 이뤄진다. 그는 “500평 정도의 소규모 농사를 지속하는 농부들이 있다”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도시와의 연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철규 교수는 “마르쉐는 농부와 도시민들을 연결해 주는 의미가 있다”며 “마르쉐 같은 사례가 많아지면 농촌에 대한 도시민들의 이해가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토론 시간에 김태양 농산어촌교육협동조합 이사장, 김현대 전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정민철 협동조합젊은협업농장 이사, 이보은 마르쉐친구들 대표 등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제공
종합토론 시간에 김태양 농산어촌교육협동조합 이사장, 김현대 전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정민철 협동조합젊은협업농장 이사, 이보은 마르쉐친구들 대표 등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제공

소비자 교육으로 도시민·농업인의 거리 좁혀야

3부 토크쇼 순서에서는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의 진행으로 곽미옥 샘말농원 대표, 원혜덕 평화나무농장 대표, 조형진 전주엠비시(MBC) 피디(PD), 김두리 두리농원 사무국장 등 ‘지속 가능한 농촌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3부 토크쇼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출연진. 왼쪽부터 김두리 두리농원 사무국장, 이동현 미실란 대표, 이나라 유엔식량기구(FAO) 한국협력연락사무소 부소장, 조형진 전주MBC PD, 원혜덕 평화나무농장 대표, 곽미옥 샘말농원 대표,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대산농촌재단 제공
3부 토크쇼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출연진. 왼쪽부터 김두리 두리농원 사무국장, 이동현 미실란 대표, 이나라 유엔식량기구(FAO) 한국협력연락사무소 부소장, 조형진 전주MBC PD, 원혜덕 평화나무농장 대표, 곽미옥 샘말농원 대표,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대산농촌재단 제공

김두리 사무국장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유기농을 하는 부모를 따라 농촌에 정착해 5년째 농장 운영과 농업 교육 등을 하고 있다. 그는 “처음 농촌에 왔을 때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이 가격이라니 너무 싸다’고 생각했는데 소비자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너무 비싸다’라는 말이었다”며 “이것이 도시민과 농업인의 거리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소비자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농업에 대해 잘 몰라서 제일 싸고 큰 농산물만 골랐다’ ‘농업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를 반성한다’ 등의 소감을 듣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인식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소비자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두리 두리농원 사무국장이 소비자 교육의 중요성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제공
김두리 두리농원 사무국장이 소비자 교육의 중요성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제공

<두근두근 팜팜> <마녀들의 포레스트> 등 농업 프로그램을 다수 제작한 전주MBC 조형진 PD는 “취재를 위해 일본 문부과학성에 갔는데 그곳에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먹거리 교육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 프로그램 기획을 가져가면 (회사에서) 사람들이 잘 보지 않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며 “농업 콘텐츠 제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농업 프로그램이나 농업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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