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4 서울 국제기후환경포럼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의 통계를 보니까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플라스틱의 양이 한 250% 정도 늘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4 서울 국제기후환경포럼’의 기조 강연에 나선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환경부가 발표하는 ‘전국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을 보면 2022년 기준 생활계(가정) 폐기물 중 폐합성수지류는 약 330만 톤(t)으로, 1996년의 약 100만t에서 3배 규모로 늘었다.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드는 합성수지여서 생산부터 소각까지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장 교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동향을 설명하며 “불필요한 플라스틱은 생산을 제한하고, 그다음에 최대한 순환이 잘 될 수 있는 친환경 설계의 플라스틱을 만들어 순환의 전 과정을 관리하자는 게 국제협약의 핵심 사항”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3회째인 서울 국제기후환경포럼은 오는 25일 부산에서 열리는 유엔 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회의를 앞두고, ‘플라스틱 제로, 새로운 나의 도시’라는 주제로 열렸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6개 도시 대표와 국내외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여했다.

플라스틱 생산·소비 못 줄이면 탄소중립 실패

장용철 충남대 교수가 2024 서울 국제기후환경포럼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동향과 대응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장용철 충남대 교수가 2024 서울 국제기후환경포럼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동향과 대응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장 교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과 순환경제 사회를 위하여’ 주제의 강연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 자료를 인용해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연간 4억 6000만t의 플라스틱이 소비되고 약 3억 5000만t이 폐기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중 1억 400만t은 부적절한 관리로 환경에 유출되거나 폐기물로 방치된다고 한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60년까지 3배로 늘어, 12억 3000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장 교수는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관리되고 처리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연간) 20억t이 발생하고 있다”며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는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지 않고는 달성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주도로 부산에서 일주일 동안 열리는 회의는 플라스틱 생산량 제한과 친환경 플라스틱의 순환과정 관리 체계화 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은 ‘자발적인 감축’을 주장하며 일괄적인 플라스틱 감축 시도에 반대하고 있다. 장 교수는 “이번에 혹시 불행하게 안 되더라도 1년 뒤, 2년 뒤에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만들어질 것”이라며 “(플라스틱 감축을 위해) 개발도상국에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더 많이 하는 게 선진국의 책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특히 생산부터 유통과 소각 등 플라스틱의 전 과정 중 재활용 부문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량 생산해서 대량 소비, 대량 폐기하는 구조가 계속되어서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며 “순환경제(지속적 재활용으로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베이징 등 주요 도시도 재활용 노력 박차

이어진 ‘플라스틱 오염 대응, 각 도시 정책 사례’ 세션과 ‘플라스틱 사용 중단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 세션에서는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등에서 온 전문가들이 각 도시의 플라스틱 정책에 관해 발표했다. 이와사키 타카노부 도쿄시 지속가능자재관리기획과 부국장은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 2030년까지 2019년 기준 플라스틱 소각량을 40%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2019년부터 5년간 플라스틱 소각량은 여전히 70만t”이라며 “시민을 대상으로 리유저블(재활용)컵 체험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사키 타카노부 도쿄시 지속가능자재관리기획과 부국장(가운데)이 도쿄의 플라스틱 감축 노력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정미선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자원순환과장, 오른쪽은 빈센트 폴 퍼디난드 비나라오 필리핀 퀘존시티 정부 보조 부서장. 김민성 기자
이와사키 타카노부 도쿄시 지속가능자재관리기획과 부국장(가운데)이 도쿄의 플라스틱 감축 노력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정미선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자원순환과장, 오른쪽은 빈센트 폴 퍼디난드 비나라오 필리핀 퀘존시티 정부 보조 부서장. 김민성 기자

정 디 베이징시 생태환경국 1급 주임과원은 베이징시가 2020년 ‘플라스틱 오염관리 행동계획’을 발표한 후 5년 내 플라스틱 오염관리 목표 달성을 위한 시간표, 로드맵과 10가지 주요 조처를 발표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베이징시는 배달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식기 불필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옵션을 선택하면 포인트 등 보상을 받는다.

정미선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자원순환과장은 “서울시 플라스틱 폐기물이 하루 약 3000t에 이르는데, 팬데믹 이후 증가해 잘 줄지 않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일회용 배달 컵과 음식 용기를 다회용기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배달 플랫폼 사업자와 다회용기 대여·세척 업체의 협업을 통한 배달 서비스도 시행한다. 정 과장은 그러나 “정부 주도의 강력하고 통일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운동 차원의 일회용 플라스틱 줄이기 사업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누르 할라장 반티 아스마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시 수석 부국장은 “(플라스틱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첫 번째 교훈은 강력한 지도자가 아주 명확한 비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쿠알라룸푸르시가 미세플라스틱 사용 근절을 위해 지역사회 사업주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환경부는 일회용품 규제 등에서 뒷걸음질

회의장과 화상 연결한 정 디 베이징시 생태환경국 1급 주임과원이 베이징시의 플라스틱 감축 노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회의장과 화상 연결한 정 디 베이징시 생태환경국 1급 주임과원이 베이징시의 플라스틱 감축 노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한국은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지지하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우호국 연합’(HAC) 66개 회원국 중 하나다. 이달 말 부산 회의에서 국제플라스틱협약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 정책은 전혀 모범이 되지 않고 있다. 장용철 교수 연구팀의 분석 결과 2021년 기준 한국의 생활계 폐기물 중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발전 등 에너지 회수를 뺀 물질 재활용만 볼 때) 16.4%에 불과하다.

이런 숫자의 배경에는 산업계 등의 눈치를 살피는 정부의 우유부단함이 있다. 환경부는 2022년 11월 플라스틱 빨대를 포함한 일회용품 실내 사용 금지 규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계도기간 1년을 두었으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또 전국 시행을 예고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는 제주와 세종에만 축소 시행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환경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로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는 국제적 노력에 역행하고, 제도 변화에 대비해 착실히 준비해 온 소상공인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축사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폐플라스틱 배출국으로 플라스틱 용기 과소비 문제를 안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라며 “서울시는 2026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지금보다 10% 줄이고, 재활용률은 (현재의 69%에서) 79%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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