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로운 청년] ① 긍정 에너지로 건강 배달하는 곽바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1년 실시한 ‘청년세대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1.3%가 ‘요즘은 청년이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고난 앞에 좌절하지 않는 청년도 있다. 그들은 제 삶을 긍정하고 주변에 선한 영향을 주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단비뉴스>는 그들을 ‘단비로운 청년’이라 부르기로 했다. 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단비처럼, 고난이 만연한 세상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청년을 만나 연속으로 소개한다. (편집자주)

 

그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서울 강남구 일대를 돌아다닌다. ‘야쿠르트 언니’ 곽바다(25) 씨다. 하루 3시간 동안, 그는 노란 전동차를 타고 총 10킬로미터(km)를 달린다. 양복점, 출판사, 자동차 회사, 전시장, 음식점 등에 야쿠르트를 배달한다. 그 일을 그는 좋아한다. 야쿠르트를 배달할 수 있어 즐겁다.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곽바다 씨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어느 아파트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최은주 기자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곽바다 씨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어느 아파트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최은주 기자

도산대로를 누비는 코코

곽 씨는 지난 2월부터 야쿠르트를 배달했다. 그는 오전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6시 50분이면 출근 준비가 끝난다. 집에서 5분을 걸으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242번 버스를 타면 20여 분 만에 한국 야쿠르트 청담점에 도착한다. 오전 7시 20분 사무실에 도착해 옅은 노란색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이윽고 야쿠르트를 가득 실은 전동차에 오른다. 노란색 전동차의 별칭은 ‘코코’다. 전동차는 유제품을 차갑게 유지하는 냉장 기능이 있는데, 이를 뜻하는 영어 ‘Cold & Cool’을 줄여 코코(coco)라고 부른다.

코코에 올라탄 곽 씨는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를 향한다. 그의 배달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출근 직후 사무실에서 건강을 챙기려는 이들에게 곽 씨는 야쿠르트나 우유 같은 유제품, 그리고 야채즙, 커피, 샐러드 등을 배달한다. 매일 아침 찾아가는 사무실이나 가게는 58곳이다. 일주일이면 대략 800여 개 제품을 판매한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국야쿠르트 청담지점 사무실에서 곽 씨가 다음날 판매할 제품을 출고장에 기록하고 있다. 최은주 기자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국야쿠르트 청담지점 사무실에서 곽 씨가 다음날 판매할 제품을 출고장에 기록하고 있다. 최은주 기자

유제품을 주문해 마시는 사람이 많지만, 요즘엔 샐러드나 야채즙을 챙기는 손님도 늘었다. 그들 대부분은 40~50대의 직장인이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그들은 곽 씨에게 상담을 청하기도 한다. “장에 좋은 게 뭔가요?”, “이번에 새로 나온 제품은 어때요?” 가끔 긴급 구호를 요청받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곽 씨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전날의 술로 숙취가 가시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간에 좋다는 유제품을 콕 찍어 구매한다.

온갖 사무실이 모인 강남구 도산대로 일대에 건강을 배달하고 나면, 오전 10시 30분이다. 곽 씨는 코코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와, 내일 배달할 제품을 점검한다. 오전 11시 30분, 곽 씨는 야쿠르트 유니폼을 벗는다.

이제 학교로 갈 시간이다. 그는 아침에 일하고 낮과 밤에 공부한다. 바쁘고 고단한 일상은 그에게 별스럽지 않다. 그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다.

곽 씨가 운전하는 전동차는 냉장고 기능을 겸한다. 그 안에 우유, 야채즙, 야쿠르트 등이 담겨있다. 최은주 기자
곽 씨가 운전하는 전동차는 냉장고 기능을 겸한다. 그 안에 우유, 야채즙, 야쿠르트 등이 담겨있다. 최은주 기자

야쿠르트 언니가 된 청년

곽 씨는 199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여러 면에서 힘들었던 가정환경 탓에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했다. 검정고시를 치렀고, 2017년 대학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지낼까 생각했다. 월 37만 원의 기숙사 비용이 문제였다. 그는 소득 1분위의 가정에서 자랐다. 소득수준에 따라 8개 구간으로 나눴을 때, 가장 낮은 소득으로 살아왔다는 뜻이다. 월 37만 원은 곽 씨에게 큰 돈이었다. 서울에서 더 저렴한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의 조건으로 첫 자취방을 얻었다. 부모님이 월세를 보탰지만, 그마저도 부담이 됐다. 곽 씨는 1년 만에 자립을 결심했다.

그 뒤로 그의 ‘알바 인생’이 시작됐다. 대학 입학 1년 만에 휴학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2018년,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고등학생들의 자소서를 첨삭하며 돈을 벌었다. 2019년, 정보통신 분야의 스타트업에서 넉 달 동안 일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주 6일 동안 일하여 총 150만 원을 받았다. 그해 가을에는 기아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석 달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다. 2020년, 보험사에서 영업사원을 보조하면서 두 달 동안 일했다. 그해 봄부터 골프복 쇼핑몰에서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보조 업무를 맡았다.

그것은 그냥 돈을 버는 일이 아니었다. 보험회사는 그에게 실적을 요구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비난했다. “이것밖에 못하느냐”고 욕했다. 쇼핑몰에서는 그가 소속된 팀 전체의 사원이 해고당하는 일도 겪었다.

그런데도 곽 씨는 “괜찮았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다. 2년 6개월 동안 치러낸 수많은 직업을 돌아보며,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회사 사람들이 밥을 잘 챙겨줘서 좋았다, 종일 일하니 돈 쓸 일이 없어 좋았다, 보고서 작성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코인의 세계를 알 수 있어 좋았다, 일하지 않았다면 배울 수 없었던 업무를 익힐 수 있어 좋았다고 곽 씨는 말했다. 심지어 해고된 일에 대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2021년 복학했다. 그래도 여전히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평일에는 학교 연구실에서 일했다. 주말엔 카페에서 일했다. 그렇게 일하여 월 100만 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는 부족했다. 주말은 물론 평일까지 일하느라 학업을 병행하기도 어려웠다. 곽 씨는 자신의 조건에 맞는 일을 찾았다. 적어도 월 130만 원을 벌어야 했다. 또한, 강의 시간을 피해 일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다 찾아낸 일이 야쿠르트 배달이었다.

곽 씨는 정기 배달을 주문한 이들 외에도 현장에서 유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어느 도로변에서 곽 씨가 유제품을 구매한 고객의 계산을 돕고 있다. 최은주 기자
곽 씨는 정기 배달을 주문한 이들 외에도 현장에서 유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어느 도로변에서 곽 씨가 유제품을 구매한 고객의 계산을 돕고 있다. 최은주 기자

돈 받으면서 운동하는 일

원래부터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관심이 많았다. 정보통신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시절, 곽 씨도 야쿠르트를 자주 사 먹었다. 다만 그들은 모두 중년이었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휴대용 카드 결제기를 잘 다루지 못했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지난 1월, 곽 씨는 구직구인 앱에 오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 일의 정식 명칭이 ‘프레쉬 매니저’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2주간 교육을 받고 2월 첫째 주부터 거주지와 가까운 청담점에 배정받았다.

긍정 에너지로 가득 찬 곽 씨는 야쿠르트를 배달하여 좋은 점을 한참 이야기했다. “예전엔 주말 새벽까지 카페에서 일하느라 밤낮이 바뀌어 늦게 일어났어요. 야쿠르트 일을 하고 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건강해졌어요! 하루에 걸어 오르는 계단을 합치면 30층 건물 이상이거든요. ‘돈 주고 왜 헬스장 다니냐’고 친구들에게 제가 물어요. 야쿠르트 일하면, 돈 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데! 하하.”

그것만이 아니다. 야쿠르트 일을 하면 수많은 직업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건물 관리인, 청소 노동자,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도 그의 고객이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곽 씨는 용기를 얻는다. “매일 새로운 해가 뜨면, 새 건물이 지어져 있어요. 밤새 어지럽혀진 거리도 말끔하게 치워져 있죠. 내가 잠자는 동안 누군가 땀 흘려 일한 거죠. 그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 엄청난 힘을 얻어요. 무기력하고 우울해질 수가 없어요.”

단체주문이 들어오면, 곽 씨는 노란 가방에 유제품을 담아 배달한다. 최은주 기자
단체주문이 들어오면, 곽 씨는 노란 가방에 유제품을 담아 배달한다. 최은주 기자

그것은 그의 철학이다. 곽 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 힘든 일을 많이 겪었던 어린 시절부터 그는 인간의 내면에 관심이 많았다.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 존재의 본질을 묻는 ‘형이상학’이 그에겐 재밌는 공부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철학이지만, 생활비를 버느라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입학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졸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철학 공부의 재미를 아주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야쿠르트 언니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그는 철학과 학생회장이 됐다.

학생회장이 된 기념으로 학과친구들에게 야쿠르트를 돌렸다. “일 마치고 몇 개 챙겨간 야쿠르트를 공짜로 주기도 하고, 사고 싶다는 친구에겐 돈 받고 줘요. 그런 게 저한테는 작고 소소한 행복이죠.” 그가 야쿠르트를 배달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친구들도 이제는 ‘너무 힙한 알바’라며 부러워한다.

곽 씨가 코코에서 야쿠르트를 꺼내고 있다. 최은주 기자
곽 씨가 코코에서 야쿠르트를 꺼내고 있다. 최은주 기자

마음을 에워싸는 긍정의 철학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곽 씨는 잘 알고 있다. 20대 초반 어느 시절, 정신적·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혼자 방에 처박힌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그를 챙겨줬다. 돈이 없어 굶고 있던 그에게 밥을 사줬다. 무기력에 빠져 어지러운 방에 찾아와 청소를 해줬다. 어느 날엔 자취방 보일러가 고장 났다. 꽁꽁 얼어붙은 그에게 자기 방을 내어준 친구가 있었다. 2주 동안, 친구 방에서 고양이와 함께 따뜻하게 지냈다. 그들을 떠올리며 곽 씨는 말했다. “친구들은 저를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줘요.”

그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고양이다. 2020년 10월, 친구가 구조한 고양이를 곽 씨가 키우게 됐다. 마음을 에워쌌다는 뜻에서 ‘에움’이라 이름 붙였다. “그 존재를 지키고 보호할 이가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막중한 책임감과 동시에 무한한 위안을 느껴요.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고양이랑 같이 있으면, 내가 혼자 남은 게 아니라는 것, 이 존재를 지키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곽 씨가 배달 도중 만난 야쿠르트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은주 기자
곽 씨가 배달 도중 만난 야쿠르트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은주 기자

바쁘고, 때로는 힘들지만, 곽 씨는 항상 웃으려고 노력한다.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고,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려 노력한다. “저한테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집중해서 나아갈 능력, 시간, 그리고 돈이 없어요. 대신 작은 순간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예컨대 ‘코코’를 타면 그는 행복하다. 따뜻한 바람이 그의 눈과 코와 귀를 스친다. 천천히 나아가는 길에서 작고 예쁘고 귀한 고양이를 만난다. 그것이 모두 행복이다.

그 행복이 부끄럽지 않으므로 그는 야쿠르트 배달하는 모습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친구들에게 야쿠르트 배달일을 권하기도 한다. 행복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코코 타는 즐거움을 친구들과 나누는 것은 그의 소박한 야심이다. “친구들과 전동차 타고 전국 일주 가자고 이야기했어요. 점장님이 빌려준다고 했어요. 하하”

그녀의 소망은 거창한 직업이나 성취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저 영리하고 선한 사람이 되는 게 그의 꿈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 원해요.” 그런 소망을 품기 힘들 정도로 외롭고 힘든 또래들에게 해줄 말이 없느냐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주제넘은 조언으로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다만 … 세상으로 나와 햇볕이라도 만나면 좋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울해지려 할 때면, 저는 밖에 나가요. 아침 배달하면서 계단을 하나씩 올라요. 움직이면 몸과 마음이 조금씩 괜찮아지거든요.”

전국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프레쉬 매니저는 1만 1000여 명이다. 그 가운데 20대 매니저는 대략 150명 정도다. 곽 씨를 닮은 전국 150여 명의 야쿠르트 언니들은 매일 아침 햇볕을 맞으며 건강을 배달한다.

코코 옆에 선 곽바다 씨가 웃고 있다. 최은주 기자
코코 옆에 선 곽바다 씨가 웃고 있다. 최은주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