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에 나서기에 앞서 우리 노년은 반성합니다. 생산력 제일주의에 제동을 걸지 못한 것에 대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숙에 기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그리하여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이제 달라지겠습니다.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22년 1월 1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삼일문 앞. 눈발이 날리는 거리에서 60~70대 남녀 40여 명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석일웅 작은형제회 수사 등이 ‘육십플 러스(60+)기후행동 사발통문: 노년이 미래다’를 낭독하는 동안 이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집중했습니다. 노년층 기후위기 대응조직인 ‘60+기후행동’이 공식 출범하는 현장, 참석자들은 '할머니가 지킨다, 초록지구' ‘우리가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 등의 현수막과 손팻말을 단단히 붙들고 서 있었습니다. 행사의 상징색인 초록으로 마스크, 털모자 등을 쓰거나 외투를 차려입은 이들의 머리 위로 싸라기눈이 내려앉았습니다.

노년층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

60+기후행동 창립준비위원회는 출범 선언문에서 “2022년 1월 19일을 출범일로 택한 것은 ‘119’라는 숫자를 통해 긴급 재난 상황임을 환기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출범식 장소를 탑골공원으로 정한 것도 우리 선조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자주와 독립을 외친 성스러운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사회를 맡은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년층이 우리나라를 산업화하고 경제 대국으로 만드는 주역을 했지만, 우리의 성공이 우리의 실패가 됐습니다. 기후위기에 노년층의 책임이 있고 자유로울 수가 없어서, 참회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60+기후행동’을 출범하게 됐습니다.”

이어 환영사에 나선 윤정숙 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민의 80% 이상이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기후정책으로 인한 불편을 모두 감수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많이 늦어진 정부 정책은 여전히 너무 느리고 방향도 일관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젊은 세대의 기후행동을 지지하고 연대하며 행동하는 기후위기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기업과 정부에게 탄소중립, 생태적 공정사회가 되도록 대화도 하고 압력도 넣겠습니다.”

정성헌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청년정치가 중요합니다. 생명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도록,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진출하게끔 노년층이 잘 도와줘야 합니다.”

이날 참석자 중 유일한 20대인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청년의 정체성을 살려서 서울 중심으로 기후운동을 하고 있지만, 세대 간에 연대하고 서울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기후운동이 확장될 필요성을 느낍니다. 구호로 외치고 글로써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으로 경험하고 함께하는 기후운동을 세대 간의 연합을 통해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산불·폭염 등 재난 속 시민들도 기후행동에 공감

노래패 메아리에서 활동했던 곽대원, 김재섭 씨는 ‘아름다운 것들’ 등 노래 공연으로 출범식의 열기를 고조시켰습니다. 참가자들은 탑골공원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행진한 뒤 해산했습니다. 조명심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소 기후문제에 대해 심각함을 느끼고 있다가 신문에서 60+기후행동 출범식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산불, 폭염 등 위기가 당면한 상태에서 우리가 너무 태평하게 살고 있어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언문 낭독에 참여한 민윤혜경 씨는 ‘경은아, 할머니가 나설게’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경은은 민윤 씨의 손녀 이름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살다가 지난해 귀국했다는 민윤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크게 일어났던 산불이 알고 보니 기후위기로 인해서 일어나는 일들이었습니다. 어른들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청년은 대선 후보들에 ‘원포인트 기후토론회’ 요구

한편 청년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기후토론회 개최를 요구했습니다. 청년환경단체들의 연합체인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는 2022년 1월 2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30세대는 대선 후보들에게 기후위기 원포인트 토론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응답하라 기후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극심한 기후재난과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지금, 인류는 ‘진보와 퇴보’를 넘어 ‘생존과 멸종’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20대 대선을 최초의 ‘기후대선’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대선은 코로나 위기, 경제위기, 기후위기를 막을 대통령을 뽑는 선거여야 합니다. 2월 초까지 대선 후보들이 ‘원포인트 기후토론회’에 나서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플랜제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미 토론회에 나오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윤석열 후보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윤 후보의 답변을 촉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