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㉜ 그린 리모델링 성공사례 편백경로당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구립 노인정 편백경로당은 얼핏 평범한 단독주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를 100% 스스로 만들어 쓰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입니다.

2021년 1월 ‘그린 리모델링’(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건축물 가치를 키우는 사업)을 마친 이 건물은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제로에너지 건축 1등급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 2021년 9월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선정한 그린 리모델링 우수 사례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건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집’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단열’ 개념 거의 없었던 마흔 살 건물

편백경로당은 원래 대지 187제곱미터(㎡), 건축면적 82.31㎡의 1층짜리 단독주택이었습니다. 노원구청이 이 건물을 사들여 불법 증축된 부분을 걷어내고 부엌을 넓히면서, 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설비도 갖췄습니다. 1981년 지어진 이 주택은 단열이 매우 취약했습니다. 외벽과 지붕의 단열재 두께가 50밀리미터(mm)에 불과해 집안의 열이 밖으로 샜습니다. 창문도 기밀(공기 차단)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리모델링을 맡은 민현준 잘그린건축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의 중심 공간인 거실에는 단열재가 아예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태양광 등 자체 생산한 재생에너지로 필요한 전기수요 등을 감당하도록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건물 전체를 외단열(단열재를 바깥쪽으로 설치)로 감싸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얹었습니다. 단열재 두께는 외벽과 바닥의 경우 100mm, 지붕은 150mm로 키웠습니다. 창문도 단열성과 기밀성이 높은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환기 부분에서도 폐열 회수 장치를 설치해 건물 안의 공기를 내보내고 바깥 공기를 들여오면서, 발생하는 열 손실을 최소화했습니다.

냉난방·조명·급탕 등 소비 에너지 100% 자체 생산

이런 공사의 성과는 ‘에너지자립률 100.1%’라는 성적표였습니다. 건물이 냉난방, 조명, 급탕, 환기 등에 소비하는 에너지를 자체 생산한 에너지로 감당하고도 약간 남는다는 얘기입니다. 편백경로당의 에너지소비량은 연간 1㎡당 115.5킬로와트시(kWh)인데, 생산량은 115.7kWh로 나왔습니다. 이 건물의 에너지효율등급은 전체 10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1+++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건물에서 쓰는 에너지가 모두 재생에너지인 것은 아닙니다. 태양광으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지만, 경로당 사용자들이 취사용으로 가스레인지를 원해 도시가스 등을 일부 쓰고 있습니다. 민현준 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설계사무소와 노원구청 측은 부엌에 전기 인덕션을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경로당을 주로 사용하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아 가스를 쓰게 됐어요. 그 부분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피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편백경로당을 포함해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두 차례 참여했다는 민 소장은 “제로에너지 건축 리모델링을 알릴 수 있는 ‘앵커 사업’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노인정, 숙박시설, 도서관 등 관련 사례를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면 그린 리모델링의 필요성에 관한 인식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갈 길 먼 제로에너지 건축 리모델링

제로에너지 건축의 공식적인 정의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입니다. 2022년 4월 기준 제로에너지 건축 인증(에너지자립률 20% 이상)을 받은 건축물은 전국에 186개입니다. 이 중 에너지자립률이 100%를 넘어 1등급 본인증을 받은 건물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7동도서관(왕배푸른숲도서관)과 경기도 과천시 위버필드 아파트단지 내 게스트하우스 등 12곳입니다.

제로에너지 건축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면적이 1000㎡를 넘어가는 공공건축물은 2020년에 이미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가 됐으며, 2023년 1월부터 연면적 500㎡ 이상 규모로 확대됐습니다. 2025년부터는 면적 1000㎡를 넘는 민간건축물에도 의무 사항이 적용됩니다. 스웨덴에서는 2021년부터 모든 건물의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가 됐습니다. 미국은 2020년부터 일반주택에 제로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했고, 공공건물과 상업건물은 2030년부터 의무화 규정이 적용됩니다.

신축건물뿐 아니라 기존 건축물도 에너지소비량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2020년 발표한 ‘그린뉴딜’ 계획에서 공공건축물과 공공임대주택 등을 대상으로 한 그린 리모델링 추진 방침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개인 소유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은 진전이 별로 없습니다. 리모델링 과정이 까다롭고 비용도 적지 않은데, 지원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이승복 교수는 2022년 4월 28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존 빌딩들의 성능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절대로 탄소중립을 이룰 수가 없는데, 현재로선 인센티브(촉진책)가 부족합니다.”

건물 부문이 전체 에너지 수요의 30% 이상 차지

유엔환경계획(UNEP)과 국제건물건설산업연합(GABC)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에너지 수요에서 건물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36%, 탄소배출은 37%였습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의 에너지 효율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독일의 경우 2006년부터 주거용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에 관해 투자와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독일은 개인이 주택의 난방 시스템과 창문 교체, 지붕과 외벽의 단열 강화 같은 에너지 효율화 리모델링을 하면 비용의 20%만큼 3년간 세금을 깎아주는 지원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또 에너지 성능이 좋은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면 낮은 이자로 최대 12만 유로(약 1억 7000만 원)까지 빌려주는 등 금융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석유나 가스 난방을 친환경 시스템으로 바꾸면 45%까지 교체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이승복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린 리모델링을 위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도 접근방법은 다르지만,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만큼은 표명했습니다. 건물 임대차 변경이 생기거나 거래가 이뤄졌을 때, 건물을 수선하면서 에너지 성능을 강화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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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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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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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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