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꿀벌] ② 국내외 네오닉 농약 규제 실태 비교

지난 4월 27일 만난 양봉업자 홍공진(70) 씨와 충북 제천시에 있는 홍 씨의 양봉장 모습. 그는 지난 겨울 벌통 300군 중 270군을 잃었다. 조승연 기자
지난 4월 27일 만난 양봉업자 홍공진(70) 씨와 충북 제천시에 있는 홍 씨의 양봉장 모습. 그는 지난 겨울 벌통 300군 중 270군을 잃었다. 조승연 기자

꿀벌이 사라졌다. 이 벌통도, 다른 벌통도 마찬가지였다. 취재팀은 지난 4월 27일 충북 제천시에 있는 홍공진(70) 씨의 양봉장을 찾았다. 홍 씨는 지난 겨울 벌통 300군 가운데 약 270군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피해를 입었다. 지난 5월 4일 방문한 충북 청주시에 있는 김 모씨의 양봉장도 비슷했다. 전체 330군 중 260군의 벌통에서 꿀벌이 겨우내 사라졌다.

이와 같은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은 2021년부터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한국양봉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초 한국양봉협회 소속 농가의 벌통 153만 7270군 중 61.4%인 94만 4000군에서 꿀벌이 실종되거나 폐사했다.

유럽과 미국 등 해외 학계는 꿀벌 피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농약(이하 네오닉 농약)에 주목한다. 네오닉 농약은 살충 효력이 뿌리, 잎, 꽃가루 등 식물 전체로 운반돼 식물에 접근한 곤충들에게 독성을 일으킨다. 살충 효과가 뛰어나 세계 각국의 산림과 논밭에서 두루 사용됐다. 1991년 독일의 제약회사인 바이엘이 첫 네오닉 농약인 이미다클로프리드(IMI)를 출시했고, 2000년대 초 중국의 제약회사인 신젠타가 티아메톡삼(THM)을, 일본의 제약회사인 타케타가 클로티아니딘(CLO)을 출시했다.

꿀벌 위해성 확인돼...EU·미국에서 사용 제한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2018년 2월 꿀벌에게 유해한 네오닉 살충제 3종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출처 유럽식품안전청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2018년 2월 꿀벌에게 유해한 네오닉 살충제 3종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출처 유럽식품안전청

하지만 2004년 프랑스에서 꿀벌 피해가 처음 발생한 이후 네오닉 농약이 꿀벌에 유해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유럽 양봉 농가와 환경 단체들은 유럽연합에 네오닉 농약의 사용 규제를 촉구했다. 2013년 5월 유럽연합은 이미다클로프리드(IMI), 티아메톡삼(THM), 클로티아니딘(CLO) 3종의 사용을 유럽 전역에서 2년간 한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15년 4월에는 유럽과학아카데미 자문위원회(EASAC)가, 2015년 11월에는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네오닉 농약이 꿀벌에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2018년 2월 유럽연합은 이미다클로프리드(IMI), 클로티아니딘(CLO), 티아메톡삼(THM) 등 네오닉 농약 3종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이후 프랑스 등 몇몇 국가에서 일부 작물에 대한 네오닉 농약의 사용을 ‘긴급 승인’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올해 1월 유럽사법재판소가 네오닉 농약의 긴급 승인을 불허하면서, 유럽연합에서 네오닉 농약의 사용은 계속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네오닉 농약의 꿀벌 위해성을 경고하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2016년 이미다클로프리드(IMI)가 꿀벌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살충제 규제부(DPR)는 2018년 IMI, 클로티아니딘(CLO), 티아메톡삼(THM), 디노테퓨란(DTN) 등 4종이 꿀벌에 높은 위해성을 보인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와 뉴저지주, 캘리포니아주가 네오닉 농약의 실외 사용을 금지했고, 올해 6월에는 뉴욕주가 작물 종자에 대한 네오닉 농약 사용을 금지했다. EPA는 2024년까지 네오닉 농약의 최종 평가를 마무리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사용 제한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네오닉 농약 규제 미비한 한국

네오닉 농약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네오닉 농약의 수입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작물보호협회가 2023년 7월 발간한 <농약연보>를 보면, 이미다클로프리드(IMI)의 수입량은 2018년 4만 400kg에서 점차 증가하여 지난해에는 6만 1490kg까지 늘었다. 클로티아니딘(CLO)의 수입량도 2018년 2만 2700kg에서 2022년 3만 4075kg으로 늘었다.

한국에서는 꿀벌에 대한 위해성이 높은 농약에 대한 사용 금지 조처를 내리지 않고, 그 겉면에 주의사항을 적은 문구와 그림만 표기하고 있다. 농약안전정보시스템 누리집 갈무리
한국에서는 꿀벌에 대한 위해성이 높은 농약에 대한 사용 금지 조처를 내리지 않고, 그 겉면에 주의사항을 적은 문구와 그림만 표기하고 있다. 농약안전정보시스템 누리집 갈무리

절차상으로 보면, 이들 농약은 일련의 검사를 거친 뒤 유통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농약은 '환경생물 독성분야 시험'을 거쳐 정식으로 등록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농약을 사용할 때 주의사항을 명시한 문구가 제품의 포장지에 기입된다. 꿀벌에 유해한 농약의 주의사항 문구는 4단계로 나뉘는데, 단계가 높을수록 살포가 제한되는 기간이 길어진다. 1단계 주의사항 문구에는 특정 시기에 대한 언급 없이 '독성이 강하니 주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단계는 '개화 시기와 꿀벌 활동이 왕성한 시간‘에, 3단계는 ‘꽃이 피기 전부터 꽃이 피어 있는 동안’에 살포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4단계는 ‘봄부터 꽃이 완전히 질 때까지’ 살포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한 네오닉 농약 제품의 포장지에 ‘이 농약은 꿀벌에 독성이 강하므로 꽃이 피어있는 동안이나 꿀벌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간에는 살포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2단계 주의사항에 해당한다. 조승연 기자
한 네오닉 농약 제품의 포장지에 ‘이 농약은 꿀벌에 독성이 강하므로 꽃이 피어있는 동안이나 꿀벌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간에는 살포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2단계 주의사항에 해당한다. 조승연 기자

지난 10년 동안, 국내에서 유통되는 네오닉 농약과 관련해 강화된 것은 이러한 주의사항의 상향조정뿐이었다. 2013년 유럽연합이 네오닉 농약의 사용을 2년간 한시적으로 금지한 후, 같은 해 농촌진흥청은 국내에서 사용되는 네오닉 농약 99개 품목을 대상으로 꿀벌에 대한 위해성을 다시 평가했다. 이 가운데 49개 품목의 네오닉 농약의 경고문구가 기존 1~3단계에서 4단계로 강화됐고, 나머지 50개 품목은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농약사를 운영하는 업주들은 농약에 주의사항 문구를 기입하는 현행 방식의 규제는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사용자의 눈길을 끌기 어려운 데다 사용 지침을 지키지 않아도 이에 따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농약 사용을 사용자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쉽게 구매하여 사용하는 농약

한국에서 농약 구매 절차는 간단하다. 농약 판매점에서 구매자 이름·주소·연락처와 농약 품목명, 수량 등 일부 정보만 등록하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충북 제천시의 한 농약사 업주는 “간혹 ‘문제가 생겨도 소비자 책임’이라는 서약서를 받기도 한다. 농가에서 농약을 잘못 써서 꿀벌이 죽어도 판매자 입장에선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약 사용 농가들도 주의사항 문구를 따르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제천시에서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정 모씨는 “보통 3월에서 10월까지 열흘에 한 번은 농약을 뿌려야 하는데, 특정 농약을 두 번 이상 연속으로 뿌릴 수 없게 하는 농약 허용기준 강화제도(PLS) 때문에 무조건 농약을 바꿔가면서 사용해야 한다. 꿀벌에 독성이 강한 농약을 개화 시기를 고려하며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제천에서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정 모씨가 직접 구매한 농약 영수증과 공병이다. 사용중인 제품 중에는 꿀벌 위해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네오닉 농약도 포함됐다. 해당 농약에 명시된 경고문구는 4단계에 해당한다. 정 씨 제공
제천에서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정 모씨가 직접 구매한 농약 영수증과 공병이다. 사용중인 제품 중에는 꿀벌 위해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네오닉 농약도 포함됐다. 해당 농약에 명시된 경고문구는 4단계에 해당한다. 정 씨 제공

정 씨가 공개한 농약 구매 영수증과 공병을 보면, 네오닉 농약이 다수 포함됐다. 정 씨가 사용하는 농약 중 하나인 ‘빅카드’는 클로티아니딘(CLO) 액상수화제 살충제로 4단계 경고문구가 명시된 고독성 농약이다. 정 씨는 이러한 농약들을 구매할 때, 사용 시 주의사항에 대한 별다른 안내지침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김진효 경상국립대 환경생명화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 꿀벌에 독성이 강한 농약들을 사용하는 방식은 농가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영역이다. 애초에 농약의 꿀벌 위해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나 지표가 없어 국내에서도 명확하게 사용을 금지하거나 위해성을 강력하게 공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3편에서는... 네오닉 농약의 만성 위해성

[사라진 꿀벌] 기사는 3회로 이어진다. '3회- 한국이 간과해 온 네오닉 농약의 만성 위해성' 편에서는 네오닉 농약의 만성적인 위해성을 조명하고, 국내 농약 승인 절차 중 하나인 ‘꿀벌 위해성 평가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2021년 겨울, 국내에서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이 처음 발생했다. 2022년 농촌진흥청은 이상기온, 꿀벌응애, 말벌 등을 그 원인으로 특정했다. 해외에서 꿀벌 실종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농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단비뉴스>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의 위해성에 주목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면밀한 분석 끝에 해당 농약을 꿀벌 피해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그 사용을 적극 제한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은 특별한 규제 없이 논밭과 산림 등지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기사는 총 세 편으로 구성됐다. 1편에서는 4대강과 지하수의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잔류 실태를 모니터링한 국립환경과학원의 보고서를 <단비뉴스>가 단독으로 입수·분석하여 보도한다.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은 4대강 거의 모든 유역에서 높은 농도로 검출됐고, 심지어 지하수에도 잔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편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의 해외 규제 현황을 살펴보고, 이와 대비되는 국내 사용·판매 실태를 보도한다. 3편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의 만성적인 위해성을 조명하고, 국내 농약 승인 절차 중 하나인 ‘꿀벌 위해성 평가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기사는 <한국일보> 제4회 기획취재 공모전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한국일보> 지면과 누리집에도 게재됐다. (편집자주)

<기사 차례>

① '꿀벌 킬러' 농약, 4대강과 지하수에서 검출

② 유럽은 금지한 네오닉, 한국은 마구잡이 사용

③ ‘꿀벌 킬러’ 농약을 가려내지 못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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