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용암천변을 걷다가 개미들이 벌이는 대전쟁을 목격했다. 인도 가장자리 폭 10cm 남짓한 길고 하얀 포석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개미들로 새카맣게 뒤덮혀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개미 몸길이 보다 높게 겹겹이 쌓인 시체 위에서도 개미들은 다리가 엉킨 채 서로 물어 뜯으며 싸우고 있었다. 전투는 한 곳도 아니고 도로를 따라 대여섯 군데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작은 곤충들의 잔인함에 한 싸움이 끔직해 얼른 자리를 피했다.개미는 ‘의충(義蟲)’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잔혹한 동물이다. 다른 개미 집단과 벌이는 전쟁은 대부분
이공계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과학고등학교와 영재고등학교에는 일반 고등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교육과정과 시설이 있다. 무학년제, 이동식 수업, 대학교에 버금가는 실험실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 이공계 체험학습도 이들이 누리는 특혜 중 하나다.<단비뉴스>가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영재고등학교를 제외한 우리나라의 대다수 과고와 영재고 학생들은 1학년 때 미국으로 이공계 체험학습을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과고의 경우 유럽이나 싱가폴,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여행 기간은 보통 7박 10일이었다.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풍물장터는 도떼기 장사꾼과 소매 상인, 구매자들의 설전장이다. 물건 값을 부풀려 부르거나 깎는 모습은 일상적 풍경이다. 이곳에서 정찰표는 제값을 표시하는 게 아니라 에누리가 시작되는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대형 마트의 상품들처럼 규격화해 있지 않으니 제 가격을 매기기도 어렵다.장사꾼은 늘 ‘손해 보고 팔고’ 고객은 늘 ‘돈이 모자란다’는 둥 갖가지 이유로 깎아달라 떼쓴다. 가격은 상대방을 눙치는 말솜씨에 따라 정해진다. 말이 살아있어야 거래가 이루어지니 말이야말로 시장의 거간꾼이다. 글쟁이들의 죽은 글말이 아니
아버지 어릴 적 사진에는 개 한 마리가 항상 있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길러온 개라고 한다. 개가 죽었을 때 몇 날 며칠 산을 헤매다 돌아온 할아버지는 혼이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내 어릴 적 사진에는 화초가 많이 나온다. 할아버지가 집 안 가득 갖가지 난과 꽃나무를 들여놓아 나는 식물원 같은 집에서 컸다. 이제 개도 화초도 다 죽은 자리에는 크고 작은 수석들만 자리잡고 있다.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온갖 무늬들, 곧 한반도나 금강산 같은 것들이 할아버지 눈에는 잘도 보였다. 원목으로 맞춤
“지구가 돈다고 생각하세요?”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의 강의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청중에게 주 대표가 다시 물었다.“어떻게 알 수 있죠? (대답이 없자) 그냥 믿는 건가요?”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에 청중들은 왜 답변을 못 했을까? 사람들 통념처럼 과학이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자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대답해야 한다. 주 대표는 과학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천문학 혁명 이야기를 했다. 세계관의 변화를 동반한 과학의 사건들사람들은 왜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요즘 시대에 가장 믿지 못할 것이 방송과 신문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친구인 기자가 말한 ‘요즘 시대’는 30년이 지났지만 마치 지금 언론상황을 말하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보도를 제대로 못할망정 독재에 비분강개하는 기자가 꽤 있었고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상황에 순종하는 기자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보도된 것은 폭압정치의 틈새를 뚫고 나오려는 기자들의 의기가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들 신문은 지금
정말 완벽한 날에,우리는 공원에서 샹그리아를 마시다가,날이 어두워지면 함께 집에 가지.정말 완벽한 날에,우리는 동물원에 가서 먹이를 주고영화도 보고, 그리고 집에 가지.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루 리드의 히트곡 ‘완벽한 날(Perfect Day)'의 가사다. 그에게 완벽한 날이란 ‘너’와 함께하는 일상이다. 근처 공원에 가고, 동물원에 가고, 영화관에 가는 평범하고 반복적인 하루에 너와 내가 포함되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은 완벽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수많은 지난날 중 완벽했던 하루를 떠올리면 그 날은 ‘무엇’ 때문이 아니라 ‘
비정한 생태계에서 작은 생물들의 생존 전략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의태, 곧 다른 생물의 모습이나 행동 베끼기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모르포 나비의 날개는 아름다운 푸른빛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날개 반대쪽은 포식자를 따돌리기 위해 나뭇잎 색깔을 띤다. 어떤 종은 뱀 눈알 무늬가 있어 천적을 놀라게 한다.강한 동물의 능력을 빌리기도 한다. 기생 또는 공생이라고 부르는 행위이다. 공생의 대표적 사례인 흰동가리는 맹독을 가진 말미잘 속에 살며 보호받는다. 빨판상어는 상어가 먹다 남은 음식을 받아먹는다. 상어의 탁월한 사냥 솜씨를 이용
“한국은 모든 가치를 중앙에서 독점해왔기 때문에 지역의 관점에서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이 없어요. 지역에서 발행되는 책자만 봐도 중앙에서 내려온 가치를 섬기는 걸 최고로 여겨요.”세명대학교 교양학부 구완회 교수는 외면받는 지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구 교수의 지적처럼 제천에 있는 세명대의 저널리즘스쿨 학생들도 자신이 생활하는 지역이 얼마나 유서 깊고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인지 모른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그저 시멘트 공장이 많은 지역, 좀 더 관심이 있어봤자 음악영화제가 열리는 곳 정도로 안다.가까이 있지만
레지스탕스로 활약한 프랑스 소설가 카뮈는 괴벨스로 대표되는 나치의 선전선동술에 맞서 지하신문과 잡지에 ‘독일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를 여러 편 썼다. 드골 정부가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특히 언론인을 가혹하게 처단할 때 논란이 일자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증오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정의는 기억의 바탕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청산의 기억이 아예 없어서인가? 일제와 독재정권에서 왜곡보도 경력을 쌓은 우리 언론은 그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진 듯하다. 수많은 공안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박근혜
성적우수자에게 특권을 준다.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고 교사용 큰 사물함을 쓸 수 있다. 급식 때도 먼저 배식되고 단체 청소에서도 면제된다. 한 아이가 묻는다. “그건 차별 아닌가요?” 마여진 선생님은 눈도 깜짝 않고 대답한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는 거. 이거 너무 당연한 사회 규칙 아닌가?” 지난 여름 방영된 드라마 <여왕의 교실> 한 장면이 씁쓸하게 떠오른 까닭은 차별이 당연하다고 말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반박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학교는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산기슭에는 특별한 마을이 숨어있다. 박기호 다미아노 신부(64)와 신도들이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일군 신앙공동체 ‘예수살이 산 위의 마을’이 그곳이다.“산 위의 마을, 거기까지 어떻게 가려고?” 보발분교 앞에서 길을 묻는 취재진에게 마을 할머니가 놀란다. 산길을 한 시간 가까이 허위허위 올라가니 말 그대로 ‘산 위의 마을’이 나타난다. 마르티나라고 불러달라는 마을 주민이 내준 시원한 차 한 잔은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했다.똥오줌을 모으는 것도 하느님의 뜻 박기호 신부
‘병든 사회가 아이를 범했다.’ 작년 나주 성폭행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었다. 병든 사회의 원인 중 하나로 PC게임을 꼽았다. 신문은 피해자의 어머니와 범인이 밤새 PC게임에 몰두했다고 보도했다. 피시방을 돌아다니는 범인의 사진도 실었다. 게임은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도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경산 중학생 자살 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가해학생들이 게임에 몰두했다는 언급이 반복해서 나온다. 피해학생에게 온라인 게임에서 앵벌이를 시켰다는 기사도 보인다. <조선일보>는 신조어 ‘빵셔틀’의 셔틀이 게임에서 나온 말이라는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