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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망치던 바람, 무한대의 자원되다
[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풍력 ② 전력 자립 꿈꾸는 제주
2014년 06월 07일 (토) 23:08:05 박일규 기자 sputternik@naver.com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검은색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을 많이 볼 수 있다. 거센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담을 쌓아야 겨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 제주였다. 이 돌담들이 척박한 땅 제주를 괴롭힌 과거의 바람을 상기시키는 유물이라면, 최근 해안에 줄줄이 들어서고 있는 하얀 풍력발전기들은 ‘무한대의 자원’으로 변모한 현재의 바람을 상징한다. 평균 높이가 100미터(m), 날개 하나의 길이가 34m에 이르는 풍력발전기는 제주도내 11개 풍력단지에 62기가 들어서, 설비규모 107메가와트(MW)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첨단기술로 만드는 '바람개비', 아직은 선진국과 수준차

제주시 구좌읍의 행원풍력발전단지 내에는 제주도청에서 운영하는 신재생에너지홍보관이 있다. 홍보관 부근에는 10여기의 풍력발전기가 가동되고 있다. <단비뉴스> 취재팀은 지난해 10월 5일 홍보관을 방문, 김병우 팀장의 안내로 덴마크 베스티스사가 제작한 750킬로와트(kW)급 풍력 발전기 내부를 직접 살펴봤다.

   
▲ 행원풍력단지 750kW급 베스티스사 풍력 발전기 내부. 송전을 위한 전력선과 정비 작업용 사다리가 보인다. ⓒ 조수진

발전기의 날개를 받치는 몸통격인 ‘지주대’의 철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내부로 들어가 전등을 켜자, 기둥 한 가운데를 지나는 굵은 송전선 다발이 보였다. 발전기 정비에 사용되는 사다리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1인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입구 안쪽으로는 발전기 상태를 점검하고 조작할 수 있는 전자패널이 붙어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온 일행에게 김 팀장은 멀리 해안가에 서 있는 풍력발전기 위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붉게 빛나는 뿔처럼 솟은 안테나 두 개가 보였다. 풍향과 풍속을 감지하는 센서라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센서는 바람의 상태에 따라 최적의 발전효율을 내도록 발전기의 날개를 움직여, 불어오는 바람과의 각도를 조절한다. 풍속이 1초당 25m 이상으로 너무 빠를 경우 기계에 손상을 주는 과전압이 발생하기 때문에 날개를 정지시켜야 한다. 이럴 때는 기계장치가 날개와 바람 사이의 각도를 수직으로 조정해서 날개가 돌지 않도록 만든다. 또 전선이 감길 경우 풀어주는 센서도 지주대 내부에 있다고 한다.

   
▲ 김병우 팀장이 제어판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풍력발전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제어가 필요하다. ⓒ 조수진

멀리서 보면 크고 단순한 모양의 바람개비 같은 풍력발전기에는 이처럼 정교한 부품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조금이라도 오작동이 일어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행원 풍력단지에서는 센서 고장으로 발전기에 불이 난 일이 있었다.

“풍향을 감지해서 날개를 조절하는 센서가 고장 난 적이 있었어요. 태풍이 불면 날개를 바람의 방향에 수직이 되도록 세워야 하는데 (센서가) 작동하지 않은 거죠. 모터의 브레이크는 작동이 됐는데 날개는 계속 돌아가는 상황이 된 겁니다. 결국 모터와 브레이크 사이의 마찰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어요.”

발전기 옆에는 풍력으로 생산된 690볼트(V)의 전기를 전력공급에 사용하는 22900V로 승압시키는 변압기가 설치돼 있다. 대규모 풍력 단지는 별도의 변전소를 가동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발전단가인 kW당 90원보다 비싼 107.29원의 고정가격으로 전력거래소에서 매입해준다.

한국 해양조선 등 잠재력 활용하면 발전가능성 충분

이런 풍력발전기를 제작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갖춰야 하는데 후발주자인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 선진국 기업과 수준 차이가 난다. 제주대학교 풍력대학원 고경남 교수는 “우리나라는 풍력단지 설계와 블레이드(발전기 날개) 설계에 많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덴마크와 같이 시장을 선도하는 나라와는 아직 기술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하면 우리 기업들의 발전 잠재력은 매우 큰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제주도청 스마트그리드과 조기석 주무관은 국내기업의 해양 플랜트 기술은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기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유 시추시설 같은 해상 구조물을 세우는 기술을 해상 풍력단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조선업체의 선박 스크류 제작 기술도 풍력발전기 제작에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윤성권 연구원은 “해상풍력은 제2의 조선산업으로 일컬어진다”며 “우리나라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관련 기술 및 인적자원 등은 어느 국가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엔지니어링이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 들어설 대정해상풍력단지에 7MW급 해상풍력발전기 12기를 납품하기로 하는 등 국내 대기업들이 풍력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조 주무관은 소개했다.

'2030년까지 무탄소 섬으로', 제주의 도전

제주도는 바람이 풍부한 지역 특성을 활용해 풍력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09년 제주시 구좌읍에 김녕풍력발전실증단지를 설립, 제주대학교와 함께 국산 풍력 발전기의 성능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중대형급 이상 발전기는 이 단지에서 블레이드 및 소음 시험, 중력 및 하중 시험, 전력품질시험, 설계평가 등을 치르고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두산중공업, 효성, 한진중공업 등이 이곳에서 풍력발전기 인증을 받았다. 제주도에 실증단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많은 돈을 들여 영국 등 해외로 나가야 했다고 한다. 조기석 주무관은 “제주도는 바람이 여러 방향으로 불고 바람의 세기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성능을 시험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제주도가 이처럼 풍력발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에너지자립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대부분의 전기를 육지에서 공급받아왔는데, 해저전력선이나 육지 발전소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 예기치 못한 정전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06년 4월 1일의 경우 전라남도 해남군과 연결된 해저케이블에 이상이 생겨 2시간 30분간이나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주도의 풍력발전은 오는 2030년까지 도내 전력 수요의 6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카본프리아일랜드 2030(Carbon Free Island 2030)계획’ 일환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의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보급한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태양광, 풍력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원을 적극 활용해 ‘청정전기’를 자체 생산하고, 전기자동차로 교통망을 구성하며, 주택 등 모든 건물에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그리드를 연결해 전기소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카본프리아일랜드 구상이다. 이중 풍력의 경우 2030년까지 350MW 규모의 육상 풍력단지, 2기가와트(GW:MW의 1000배) 규모의 해상 풍력단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2GW는 요즘 건설하는 원전 2기에 해당하는 설비용량이다.

제주에서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로 덴마크산 풍력발전기를 수입해 설치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기업이 제작한 발전기를 주로 사용한다. 국산 발전기는 초기에 수입했던 덴마크산 보다 발전 용량이 크다. 풍력발전은 전력생산 과정에서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 방지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다. 풍력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의 여러 풍력단지에서 가동 중인 1.5MW급 발전기 한 대는 연간 2300톤(t)의 탄소저감효과를 낸다. 이는 소나무 20만 그루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과 비슷하다.

제주시 구좌읍 앞바다는 수심이 10m 이내로 얕아서 해상 풍력단지를 만들기에 좋은 조건이다. 여기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2011년 4월부터 국내 최초로 시범운영하는 해상풍력발전기가 두 대 있다. 해상 풍력발전기는 육상 풍력발전기보다 발전 용량이 커서 기본적으로 2MW 이상이다. 질 좋은 해풍을 많이 이용하기 위해서다. 설치비용이 육상풍력발전보다 많이 드는 것도 대용량 발전기를 설치하는 이유 중 하나다.

   
▲ 구좌읍에 시범적으로 설치된 해상풍력발전기 두 대. ⓒ 조수진

공공자원인 바람 활용, 지역민에게 혜택 돌아가야

그러나 풍력발전사업이 아무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육상 풍력발전기의 경우 소음이 가장 큰 문제다. 제주도청에 따르면 현행법규에 따라 거주지 300m 이내에 풍력발전기를 건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끄럽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 들어온다. 풍력발전기 사이의 땅은 가격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있다. 대형 풍력발전기가 주변 경관을 해친다는 민원도 많다고 한다.

해상 풍력발전도 문제가 있다. 일부 어민들은 해상풍력단지가 어장과 해양생태계를 파괴한다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 조기석 주무관은 “해상발전기의 기저에 해초 등이 붙어 어장을 형성하고 해상풍력단지가 쌍끌이 어선의 무분별한 조업을 막아주는 등 오히려 어업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해상풍력시설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어민과 사업주체 간에 많은 대화가 있어야 갈등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전망이다.

제주도의 풍력발전 사업권을 대기업이 독점한다는 비판도 있다. 제주 한국방송(KBS)은 지난해 4월 방영한 <시사파일제주>에서 제주도 풍력자원지구 지정예정지 5곳 중 4곳이 대기업에게 배정됐다고 비판했다. 현재 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판매해 얻은 이익은 모두 사업자가 가져간다.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평균 발전단가 보다 비싸게 전기를 사주기 때문에 대기업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시사파일제주>에 따르면 풍력발전단지의 수익률은 시설 등 투자비용 대비 18% 정도로 매우 높은 편이다. 반면 제주도민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1MW당 연간 1천만원 이하의 지원금을 인근마을이 받는 것 외에 거의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공공자원인 바람으로 생긴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산하 전력연구원은 최근 제주시 한림읍에 발전용량 150MW 규모의 한림해상풍력단지 건설을 추진하면서 ‘수익의 17.5%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약속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제주도는 ‘지역자원시설세’를 도입해 기업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역자원시설세는 특별시, 광역시, 도에서 특정 자원에 대해 부과할 수 있는 지방세다. 부과 대상은 수력발전용수, 지하수, 지하자원, 원자력발전 등이다. 풍력발전은 현재로선 부과대상이 아니어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 조 주무관은 “정부가 기업 부담 증가나 풍력발전기 국산화 촉진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법제화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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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규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 환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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