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돌'

▲ 박소연 기자
아버지 어릴 적 사진에는 개 한 마리가 항상 있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길러온 개라고 한다. 개가 죽었을 때 몇 날 며칠 산을 헤매다 돌아온 할아버지는 혼이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내 어릴 적 사진에는 화초가 많이 나온다. 할아버지가 집 안 가득 갖가지 난과 꽃나무를 들여놓아 나는 식물원 같은 집에서 컸다. 이제 개도 화초도 다 죽은 자리에는 크고 작은 수석들만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온갖 무늬들, 곧 한반도나 금강산 같은 것들이 할아버지 눈에는 잘도 보였다. 원목으로 맞춤 제작한 받침대 위 수석들은 할아버지가 없을 때는 그냥 평범한 돌인데 할아버지가 있을 때는 인형과 같은 갖가지 형상을 드러낸다. 어린애가 인형 머리카락을 곱게 빗기고 공주 옷을 입히듯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돌에 물을 주고 돌 표면을 정성스레 닦았다. 돌에 무늬가 있다면 그건 자연히 생긴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정성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끼던 개와 꽃나무들을 미리 보낸 할아버지는 당신이 먼저 보낼 일 없는 돌을 가져다 ‘기르며’ 외로움을 달랬다. 모두들 눈에 죽어있는 돌이 할아버지 눈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먹여야 하는, 제 스스로 자라 무늬를 만들어내는 생물이었다. 생물의 짧고 허망한 삶에 지친 할아버지는 억만 겁의 세월도 살아내는 돌에 의미를 부여해 죽은 돌을 살게 만든 것이다.

할아버지는 때때로 내게 말했다. 당신이 죽으면 돌은 내가 가지라고. 비싼 돌이니 팔아서 결혼할 때 보태 쓰라고. 이 말이 슬프게 들리는 건 할아버지가 당신의 죽음을 얘기해서가 아니다. 지천에 널린 돌이 실제로 비싼 값에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돌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짧고 허망한 삶에 지쳐 죽은 돌을 살려야만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기댈 곳 없는 인생이 많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다. 많은 이들의 삶이 돌에라도 의미를 부여해 이겨내야 할 만큼 외롭다는 사실이 슬프다.

생명이 유한한 생물에게 돌과 같은 무생물은 그 영원함 때문에 의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신의 이름을 돌에 새기려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숨 쉬지 않는 사람을 어찌 살았다 하며, 불지 않는 바람을 어찌 바람이라 하겠는가’라는 정유찬 시인의 말은 틀렸다. 숨 쉬지 않는 사람도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외로운 이의 가슴 속에는 늘 찬바람이 분다. 할아버지의 돌처럼 모든 것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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