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풍력 ① 특성화마을 제주 행원리

제주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약 30킬로미터(Km)쯤 떨어져있는 구좌읍 행원리는 주민 1천명가량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지난해 10월 <단비뉴스> 취재진이 처음 찾아갔을 때, 붉은 등대가 있는 포구엔 작은 어선 몇 대가 정박했고 좁은 골목 사이로 자전거 타는 아이들 몇이 오갈 뿐 마을은 한적했다. 하지만 이 마을을 다른 어촌과 확실히 구분 짓는 풍경이 있었다. 하얀 날개가 웅장한 풍력발전기들이었다. 바람개비처럼 세 날개가 천천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중 마을에서 꽤 떨어진 것은 인근의 오름(낮은 분화구)보다 높이 솟아 있었다. 저 멀리 바다에 세워진 해상풍력까지 10여대의 발전기가 장관을 이뤘다.

▲ 제주 행원리의 가장 큰 자원은 바람이다. 마을 근방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들이 돌고 있다. ⓒ 조수진

마을 공동소유 발전기 1대로 연 10억원 수입

행원리 이일형(53) 이장에 따르면 이 마을의 주 소득은 해녀들이 전문장비 없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나잠어업과 연안양식업이다. 거센 바람과 척박한 토질 때문에 농사는 작은 규모의 밭농사밖에 지을 수 없다. 갈수록 고령인구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한동안 이 마을은 생기를 잃고 있었다. 그런데 1997년 마을 인근에 ‘행원풍력단지’가 조성되고 사업자들이 대형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서 마을에 새로운 소득원이 생겼다. ‘풍력발전단지 사업자는 인근 마을에 발전용량 1메가와트(MW)당 1천만원 이하의 지원금을 주어야 한다’는 조례에 따라 1998년부터 마을에 연간 1억2천만원 가량의 지원금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현재 행원풍력단지에는 총 설비용량 9.8MW규모의 발전기 15대가 설치돼 있다.

행원리 주민들은 이런 지원금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에 도전했다. 마침 제주도가 대기업 위주 풍력사업에 대한 대안으로 협동조합이나 마을법인 형태의 주민사업을 지원하는 내용의 신재생에너지특성화마을 사업을 추진했다. 2011년 10월 도의회에서 ‘제주특별자치도 풍력발전사업 허가 및 지구지정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면서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행원리 주민들은 2012년 9월 행원풍력에너지 특성화마을 법인을 설립했다. 이일형 이장이 법인의 발기인이 되어 마을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이때까지 모아 놓은 풍력발전 지원금과 대출금을 합쳐 2013년 3월 드디어 풍력발전기 1대를 설치했다. 에스티엑스(STX)에서 만든 2MW용량의 발전기로, 60억원이 들었다.

마을은 이 발전기로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팔아 연간 10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아직은 수입 대부분을 융자금 상환에 쓰고 있지만, 빚을 다 갚고 나면 마을 복지에 쓸 돈이 꽤 생기게 된다. 요즘은 대출금을 나눠 갚고 분기당 2천만~3천만 원 정도를 남겨 700여 고령 주민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 행원리가 자체적으로 설치한 2메가와트급 풍력발전기. ⓒ 조수진

'한국의 바람' 잠재력 현실화하려면 정부 지원 절실

신재생에너지특성화마을로 지정된 곳은 아직까지 전국에서 행원리 한 곳 뿐이다. 행원리처럼 바람이 풍부한 마을은 곳곳에 있지만, 사업을 하는데 각종 규제와 제한이 많아 마을 단위로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부지로 쓸 수 있는 마을 소유의 땅이 있어야 한다. 발전기 설치비도 마을 주민들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발전용량도 3MW 이하의 발전기 1대로 제한돼 경제성을 확보하는 데 아쉬움이 있다.

“우리는 마을 소유의 땅도 있었고 지원금을 모아 둔 것도 있었지만, 돈과 땅이라는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마을이 얼마나 되느냔 말이에요. 규제를 줄여야 더 많은 마을이 사업에 참여해요. 예를 들어 땅만 있고 돈이 없는 마을은 토지를 담보로 융자를 받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발전기 제한도 그래요. 잘 되는 마을은 3MW이상 되는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 마을 단위의 풍력발전법인 설립을 주도한 행원리 이일형 이장. ⓒ 조수진

이일형 이장은 특성화마을 관련 규제가 합리적으로 완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만일 규제가 풀린다면 행원리에 풍력발전기를 추가로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발전기 한 두 대만 더 설치해도 행원리 같은 작은 마을은 주민 생활이 크게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 이장은 또 “주민들이 나서서 발전기를 세우기까지 과정도 쉽지 않았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주민들이 법인설립과 환경평가 등 절차를 밟아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관공서나 도의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도 다른 마을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적극 지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주민들 간에는 법인의 형태 등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많은 회의를 거치며 활발한 소통이 이뤄졌고, 이 같은 합의가 성공적인 사업추진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이 이장은 회고했다.

주택가 소풍력발전도 적극 연구개발 필요

행원리에는 대형풍력발전기 1대 외에 마을 한가운데 가로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수평형 소풍력발전기도 1대 있다. 이 이장은 “저것 때문에 주변이 훤하다”며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형풍력발전기는 행원리처럼 풍부한 바람 등 환경여건이 충족되는 곳에만 설치할 수 있지만 소풍력발전기는 대부분의 주거지에 손쉽게 가설할 수 있다. 그런데 풍력발전기는 날개 크기의 제곱에 비례해서 전력생산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소풍력발전기는 전력생산량이 매우 적어 경제성면에서는 매력이 떨어진다. 특히 미관이나 설치 면적을 고려해서 수직형(바람의 방향과 날개가 수직이 되는 형태)을 선택하는 경우 전력생산량은 더 적다. 제주대학교 풍력대학원 고경남 교수는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소풍력 연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수직형 소형풍력발전기도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3년 대한민국 에너지대전’에 참여한 업체의 관계자는 “수직형 풍력 발전기는 기존의 수평형 발전기에 비해 발전량이 적긴 하지만 바람의 방향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 소풍력발전기는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전 에너지기술연구원에 시험적으로 설치된 수직형 소풍력발전기(좌),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중), 제천시 홍광초등학교(우)에 설치된 풍력가로등. ⓒ 박일규

우리나라 국토는 3면이 1년 내내 바람이 부는 바다이고, 제주 같은 섬이나 대관령 같은 고지대도 많아 풍력자원의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윤성권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풍력발전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독일, 일본의 경우와 같이 정부에서 풍력발전 우선지역을 선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지역에 대한 규제 및 인허가 권한을 해당 지자체에 이관한다면 설치 절차가 간소화돼 보다 활발하게 풍력발전기가 설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생태자연도 1등급지역 또는 법적으로 보존관리 되는 지역이라도 풍력발전 설치로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을 경우 (발전)시설 입지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제도 마련이 요구 된다”고 덧붙였다.

윤 연구원은 소풍력발전과 관련, “현재 국내에서 그린홈 100만호 보급사업을 통해 소형풍력을 지원하고 있지만, 개인수요자 중심의 시장은 기반이 취약한 단점이 있다”며 “학교와 공공기관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처럼 소형풍력발전기 설치를 지원하는 등 정부 정책을 통해 설치용량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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