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일규 기자

   
▲ 박일규 기자

비정한 생태계에서 작은 생물들의 생존 전략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의태, 곧 다른 생물의 모습이나 행동 베끼기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모르포 나비의 날개는 아름다운 푸른빛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날개 반대쪽은 포식자를 따돌리기 위해 나뭇잎 색깔을 띤다. 어떤 종은 뱀 눈알 무늬가 있어 천적을 놀라게 한다.

강한 동물의 능력을 빌리기도 한다. 기생 또는 공생이라고 부르는 행위이다. 공생의 대표적 사례인 흰동가리는 맹독을 가진 말미잘 속에 살며 보호받는다. 빨판상어는 상어가 먹다 남은 음식을 받아먹는다. 상어의 탁월한 사냥 솜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도 비슷한 부류가 있다. 바로 잊혀질 만하면 등장하는 논문 표절 의혹을 받는 저명인사들이다. 표절자들은 생김새가 아니라 생각을 베낀다. 이들의 의태 솜씨는 동물에 견주면 매우 서툴다. 몇몇 인사는 논문 전체를 베끼다시피 해서 금세 표절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약육강식의 생태계 같았으면 진작에 적에게 잡아 먹혔을 거다.

흰동가리나 빨판상어처럼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생의 연구 성과를 뺏어가는 교수, 부하 직원에게 논문을 대필시키는 상사 등이다. 영국 천문학자 조셀린 벨은 최초로 펄서(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를 관측했다. 그러나 논문의 저자는 휴이시였다. 이 냉정한 지도교수는 노벨상도 혼자 탔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생태계에서 의태나 공생은 약자들이 강자의 힘을 빌리는 행위다. 사자나 호랑이는 다른 보호색을 띠지도 기생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간 사회는 반대로 강자가 약자의 몫을 빼앗는다. 고위직을 겸하는 교수는 가난한 대학원생, 이름 없는 후학들의 생각을 자기 것처럼 속인다.

물론 맹수가 보호색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사냥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야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 반면 표절 의혹을 받는 사람 중에는 연예인, 운동선수, 국회의원처럼 학문적 성과나 학위가 절박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과 달리 의태를 하는 동물은 '원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르포 나비가 뱀이나 나뭇잎 모양을 흉내 낸다 해서 그것들에게 무슨 피해가 가겠는가? 공생관계인 생물도 서로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심지어 기생하는 생물도 숙주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동물에 견주면 인간은 얼마나 잔인한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은 진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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