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동국

▲ 박동국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풍물장터는 도떼기 장사꾼과 소매 상인, 구매자들의 설전장이다. 물건 값을 부풀려 부르거나 깎는 모습은 일상적 풍경이다. 이곳에서 정찰표는 제값을 표시하는 게 아니라 에누리가 시작되는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대형 마트의 상품들처럼 규격화해 있지 않으니 제 가격을 매기기도 어렵다.

장사꾼은 늘 ‘손해 보고 팔고’ 고객은 늘 ‘돈이 모자란다’는 둥 갖가지 이유로 깎아달라 떼쓴다. 가격은 상대방을 눙치는 말솜씨에 따라 정해진다. 말이 살아있어야 거래가 이루어지니 말이야말로 시장의 거간꾼이다. 글쟁이들의 죽은 글말이 아니라 서민들의 살아있는 입말이 시장의 공용어다.

‘우정집 떡볶이’ ‘원주집 백반’ ‘순용이네 만두’…… 허름하지만 익숙한 간판들이 늘어선 장터 맞은 편, 2m 남짓한 콘크리트 인도를 사이에 두고 세련돼 보이지만 낯선 간판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니스프리’ ‘스킨푸드’ ‘북스토어’…… 새로운 기호들이 장터의 오랜 고객들을 낯설게 한다. 젊은이들은 새 것에 금방 익숙해지지만 노인들에게는 빼앗긴 공간일 뿐이다. 이곳에서 가격표는 정확하게 가격을 표시하고 있으니 흥정이 필요 없다. 가격을 적은 표지판이 소통의 주역이고 입말은 조역일 뿐이다.

말은 이해가 쉬운 기호다. 글말이 인간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생겨났다면, 입말은 인간과 인간 사이 소통을 위해 탄생했다. 대화를 트는 데 몸짓만으로는 답답해 생겨난 것이다. 말은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가치를 발휘한다. 입말이 통해야 할 곳에 글말이 가득 들어찼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매일 소통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소통 갈증을 느끼는 이유다.

대형 마트 미나리와 풍물장터 미나리는 본질적으로 같다. 하지만 무표정한 가격표를 보고 구매하는 미나리와 “한 단에 얼마냐”는 물음에 온 얼굴을 무너뜨리듯 웃으며 가격을 부르는 장꾼의 미나리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리 동네 풍물장터로 향한다. 저잣거리의 언어를 즐기며 소통의 갈증을 푼다. "이거 천원만 더 깎아보드래요."


글쓴이 박동국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8기 ‘대학언론인 캠프’ 참가자이며, 3월 입학예정자입니다. 제시어는 ‘말’이었는데 참가자들이 귀가 후 보내온 캠프 과제 중 두 편을 이봉수 교수 첨삭을 거쳐 내보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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