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주제 ① 현대사회의 돋보기, 과학: 사실과 사기

“지구가 돈다고 생각하세요?”

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의 강의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청중에게 주 대표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알 수 있죠? (대답이 없자) 그냥 믿는 건가요?”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에 청중들은 왜 답변을 못 했을까? 사람들 통념처럼 과학이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자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대답해야 한다. 주 대표는 과학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천문학 혁명 이야기를 했다.

▲ 주일우 대표는 저널리스트로서 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강의했다. ⓒ 이대용

세계관의 변화를 동반한 과학의 사건들

사람들은 왜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느꼈을까? 단순히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꾸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지구를 기준으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다. 무거운 물체는 지구로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행성 외부에 있는 천상계로 날아간다는 중세 물질관도 버려야 한다,

칼 포퍼의 말처럼 사람들은 모든 세계관을 바꾸기보다는 기존의 세계관에 작은 ‘혹’ 하나를 더 붙이려 했다. 외행성(지구보다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진 행성)의 역행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행성이 태양을 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주전원(周轉圓: epicycle) 개념을 추가했다. 주전원이란 행성이 자신의 공전 궤도 상에서 일정한 크기로 도는 원을 말한다. 주전원의 중심은 다시 지구를 둘러싼 큰 이심원(離心圓: deferent)을 따라 돈다. 두 궤도를 합치면 행성은 우주공간에서 마치 돼지꼬리 모양의 문장삭제기호처럼 움직이며 역행한다는 것이 천동설의 설명이다.

▲ 천동설에서 외행성의 역행 운동(retrograde motion)을 설명하는 방식을 나타낸 그림. 주전원, 이심원, 이심점(equant)같은 복잡한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의 공전 속도가 외행성의 공전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관측했을 때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현미경으로 중력을 전달하는 물질을 찾아나선 얘기

중세 사람들은 천동설 이론을 조금씩 수정해 가며 기존의 틀에 맞춰갔다. 그러나 천동설로 설명하지 못하는 천문 현상들이 많아지게 됐고 사람들은 마침내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틀을 받아들이게 됐다.

▲ 코페르니쿠스의 책에 있는 지동설 우주관을 묘사한 삽화. 지동설의 탄생은 단순히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되지 않았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과정을 살펴보면 지구가 돈다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사실 관계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구성하는 틀이 옳은지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동설도 자연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뉴턴은 지구를 포함한 천체들이 중력에 의해 태양을 돈다고 주장했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천체에 어떻게 힘이 전달된단 말인가? 당대의 과학자들은 중력을 전달하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찾기 위해 현미경을 개량하는 등 광학기술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물론 그런 물질은 발견하지 못했고 현미경에 대한 관심은 한동안 식어갔다.

천안함 사태를 접하면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

근대 초 유럽에서 과학이 한창 발전할 때 역설적으로 모든 사물에 의심을 품는 극단적 회의주의, 곧 피론(Pyrrhon)주의가 유행했다. 지금까지 세상을 유지해왔던 가치관이 급격히 변하면서 모든 것에 회의를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주일우 대표는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 빗대 피론주의를 설명한다.

“인도인은 세계를 코끼리가 받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코끼리 밑에는 거북이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거북이 밑에는 무슨 동물이 있을까요? 세상 모든 동물이 나와야 만족하나요? 어떤 선에서 합의를 봐야 하는 겁니다.”

근대 과학자들은 ‘거북이’까지만 생각하는 완화된 회의주의를 받아들였다. 주 대표는 과학자들은 극단적인 회의 위에 블랙박스를 쌓아놓고 그 안에서만 생각한다고 했다. 과학자 사회에서 논의의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만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는 실제 과학 연구는 새롭고 혁신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과학은 합의된 틀 안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상과학’(normal science) 단계에 도달했다. 논문을 동료 과학자가 심사하여 학술지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동료심사(Peer Review)도 연구 내용이 통용되는 표준에 맞는지 보는 과정이다.

▲ 강의를 경청하는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이대용

과학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과학사’나 ‘과학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것은 과학의 틀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 대표는 과학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할 때 사회가 합의한 논의의 범위가 어디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우석 사건, 천안함 사태를 접하면 사람들은 음모론에 빠지기 쉽다. 논의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모든 것에 의심을 품기 때문이다. 음모론에서 벗어나서 과학적 이슈를 올바로 보는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합의한 ‘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주일우, 천정환, 이상수, 이택광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