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단짝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 ‘쿨한’ 싱글 생활을 함께했던 터라 이 갑작스런 변화는 내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그녀의 변화는 더 놀라웠다. 매사에 냉소적이고 차갑기만 하던 그녀가 24시간 싱글벙글하고 농담까지 헤프게 늘어놓는다.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사랑, 그거 대단한 거 나도 잘 안다. 상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 뛰고, 온 세상 모든 시련을 단숨에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궁극의 환희. 그 구름 위 몇 분을 위해 누군 목숨을 내놓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 영화관을 점령한 <레미제라블>에
“이태리산 치즈를 얹어서인지 유럽에서 맛 본 딱 그 맛이라니까.” 휴가철에도 친구는 유럽에 갈 필요 없다며 또 이태원 자랑이다. 널찍한 테라스에 앉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들으며 프랑스 홍합구이에 와인을 곁들이면 마치 근사한 외국 도시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 파란 눈의 금발 머리 친구라도 사귀면 금상첨화다. 안 되는 영어라도 몇 마디 주고받고 나면 왠지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낸 기분이 든다. 그야말로 이태원, 이태원 프리덤!안산 원곡동도 온통 외국어 간판이 골목마다 빼곡하고 특색 있는 음식점이 많은
삼포로 가는 길 대신 '삼포세대'만 남았다.201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취업준비생인 친구들은 대부분은 반(半)자발적 '싱글'이다. '아직 직장도 없는데...'란 생각이 연애를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선배는 결혼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당장은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더라도, 여자친구가 직장이 없어 앞으로 혼자 빚을 갚아나갈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단다. 아이는 상상조차 어렵다. 주변을 한 바퀴만 돌아봐도 연애, 결혼, 출산 이 세가지를 포기한 '삼포'투성이다. 여기에 '세대(Generatio
“압구정 가슴녀를 찾아라!” 혹시 볼륨감 있는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서울 압구정동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을 떠올렸다면 그 침 삼키시라. 지난 달 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순위 1위까지 올라갔던 ‘압구정 가슴녀’는 아쉽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 인터넷 매체가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내용의 서평을 쓰면서 ‘압구정 가슴녀’란 표현을 제목에 넣었다. 압구정역 일대에 즐비한 가슴성형 광고를 빗대 성적 매력에 집착하는 세태를 꼬집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곧 포탈사이트 검색어
이번 총선의 키워드는 단연 ‘청년’이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27살 이준석을 비상대책위원으로 내세웠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이삼십대 청년 비례대표를 홍보효과가 큰 경선방식으로 선출했다.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새누리당의 27살 ‘젊은 피’ 손수조 후보와 부산 사상구에서 맞붙는다.청년 열풍 배경에는 지난 10.26 서울시장보궐선거에서 보여준 청년들의 표심이 자리잡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경선을 벌인 박원순 후보는 2030세대의 압도적 지지로 승리를 거뒀다.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페이스북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어느 죽음이라고 무게가 다르랴만, 전쟁터에서는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처럼 가볍게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고, 무거운 동상으로 부활하는 '전쟁영웅'도 있다. 전선이 따로 없는 내전에서 비참하게 죽거나 상처받는 이들은 민간인, 특히 아이와 여성이다. 방어수단조차 없는 그들은 전쟁의 본질인 폭력성과 거리가 멀지만 최대 피해자가 된다. 전장에서 죽음이 일상과 이웃하다 보면 언론의 관심도 멀어진다. 그런데 프랑스의 한 무슬림과 미국의 한 한국인이 총기를 난사해 각각 7명을 살해한
애인 있는 여자가 만나도 되는 이성친구는?<한국방송(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은 지난해 9월 방송에서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종교 오빠’는 무조건 종교 장소에서만 볼 것. 둘째, ‘엄마 친구 아들’은 부모님 입회 하에서만 만날 것. 하지만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절대 만나선 안 되는 ‘극악한 인물’이 있단다. 바로 ‘외국에서 살다 온 동창’이다. 애정남은 “외국 살다 온 친구는 사고방식이 위험하다. 만나면 허그(포옹)부터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우스개 속에 ‘돌아 온 유학생’
이민정(26•가명)씨는 지난 6월 서울의 한 사립중학교 국어과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다. 바로 몇 달 전 타 학교 정규 교사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터라 합격의 기쁨은 컸다. 학생들의 학업과 인성 모두에 관심을 쏟는 좋은 선생이 되겠다는 꿈도 가졌다. 그녀의 학교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그러나 꿈은 깰 수밖에 없는 걸까? 현실은 아이들에게 신경 쓸 충분한 시간과 여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 20시간 수업 말고도 각종 행정업무가 그녀에게 맡겨졌는데, 주로 품이 많이 들어 정규 교사들이 기피하는 잡무들이었다. 수업 준비가 아닌 일로 야근을
영화보다 더 리얼한 한국의 언론탄압기자는 무엇보다 메시지의 전달에 신경을 쓰는 직업이다. 그래서일까? 우장균 YTN 해직 기자는 영화 얘기를 하면서 한국 언론의 현주소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사실 한국의 대중은 영화에 열광하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식상한 주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이미 확고한 것으로 생각해서일까?그러나 한국의 ‘언론 자유’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세계 70위로 추락했다. 196개국 가운데 1위 핀란드와 꼴찌 북한의 중간쯤 된다. 그것도 미국의 보수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조사 결과이니
지난 달 12일 낮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한국서 출발한 기독교성지순례단과 함께 모세의 족적을 찾아 간 그곳은 예상외로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불과 이틀 전 콥트기독교 시위대 1만 여 명이 거리를 휩쓸었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광장 주변 길거리는 중동ㆍ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듯한 풍경들로 채워져 있었다. 얼굴과 몸을 거의 다 가리는 검정 천의 ‘히잡’을 두른 몇몇 여성이 수다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장바구니를 든 엄마를 쫓아 종종걸음을 옮겼다. 카이로 중심에 있는 고고학박물관
토요일인 29일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인 거리로 꼽히는 용산구 이태원이 평소보다 훨씬 떠들썩해졌다. 녹사평역에서 해밀턴호텔까지, 이태원의 주 도로에 차량통행이 금지되고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 아세안관광특구연합회가 주최하고 용산구가 후원하는 제 10회 이태원 지구촌 세계문화축제가 개막됐기 때문이다.오후 3시, 거리 퍼레이드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기수단, 고적대, 세계전통의상 쇼, 태권도 시범단, 어린이난타, 풍물패 등 1,500여명이 참가한 퍼레이드는 한강진역 근처 이태원 동문 아치를 출발해 해밀턴 호텔을 거쳐 녹사
주체성 자각한 대중의 대리인, 안철수 “딸 셋을 둔 강남부자의 사위들은 이렇습니다. 검사, 의사, 교수. 이렇게 사위를 고르면 집안이 완벽하게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게 한국의 연줄 문화입니다. 어떤 문제를 합리적 절차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아는 사람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런 구조 속에 비평적 사고는 쓸데없는 것이 돼버립니다.” 문화비평가로 활약하는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자기 목소리’가 사라진 한국 사회를 비판하면서 강의 주제인 ‘대중의 시대란 무엇인가’에 접근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근대’를 제
종군기자와 추리작가, ‘밀리터리 스릴러’로 만나다한 종군기자와 작가들이 함께 술을 마시던 자리였다. 종군기자는 세계 여러 분쟁지역 경험담을 술자리에 풀어놓았다. 타고 있던 자동차가 원격조종지뢰를 밟은 일부터 앉아서 볼일 보던 화장실 창문에 총알이 날아 들어온 경험까지. 그의 이야기는 헐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가 아니라 온몸으로 보고 느낀 실전 속 기록이었다. 숨죽이고 이야기를 듣던 어느 작가가 왜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안 쓰냐고 물었다. 종군기자도 공감했다. 자신의 경험담을 넣되 안보문제와 부딪히지 않을 만큼 상상을 가미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 나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애정은 유별났다. 그는 유독 말랐던 나를 ‘코스모스 코스모스’라고 부르곤 했다. 그럴 때면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난 괜스레 으쓱해졌다. 어느 날 선생님은 수업 중 갑자기 칠판에 당시 내 아버지 회사 이름을 썼다. 분필로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쓴 뒤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었다. 다 커서 안 사실이지만 그날 오전 내 어머니는 선생님 책상에 돈봉투를 두고 가셨다. 선생님의 이상한 행동은 봉투에 적힌 회사 이름을 칠판에 씀으로써 돈 잘 받았다는 표시를 한 것이었다.내가 처음 경험한 선생님의 관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