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월드] 제미니호의 비극으로 이어진 기구한 역사

그들은 왜 해적질을  멈추지 않는가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 피랍으로 한국인 선원 4명이 억류된 지 540여 일이 지났다. 생사를 걱정하는 가족의 심정으로 소말리아 해적의 만행에 분노하면서, 한편으로 ‘도대체 왜 그들은 해적질을 멈추지 않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가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의 이면에 어떤 진실이 가려져 있는 것일까. 

극심한 기근, 끊임없는 종족과 종교 간의 내전, 완전히 붕괴된 국가 인프라, 그리고 만성적인 절대빈곤. 아프리카북동부, 아덴만과 인도양에 접한 해안국가 소말리아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이 나라는 1991년 장기독재자 바래 정권이 물러난 뒤 줄곧 부족 간의 내전에 시달렸고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종교 전쟁까지 겪으면서 인구 950만여 명 중 2백만 명 이상이 난민, 유랑민으로 떠도는 처지가 됐다.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최신호는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나라’ 1위에 올해로 5년째 소말리아를 올렸다. 반정부 시위로 매일같이 사상자가 발생하는 시리아나 이라크, 콩고보다도 더 절망적인 상태란 뜻이다.

▲ 제미니호 한국인 피랍선원을 촬영한 영상이 지난 달 추적 60분을 통해 방영됐다. ⓒ KBS 9월12일 추적60분

외국 어선이 어업자원 뺏고 유럽 기업은 핵폐기물 투기  

그러나 소말리아가 단순히 내전과 빈곤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절망적인 나라가 된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가 책임져야 할 ‘원죄’가 있다. 소말리아는 3,025킬로미터(km)에 달하는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로, 어업은 국민의 73%가 하루 2달러(약2200원)이하를 버는 이 나라에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다. 그런데 내전이 지속되는 동안 소말리아는 자체적으로 어업 자원을 지킬 여력이 없었고,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외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일삼았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보도한 2006년 유엔(UN)보고서를 보면 소말리아 근해는 마치 ‘모든 국가에게 허용된(Free for All)’ 해역인 것처럼 외국 어선들이 찾아와 어획량을 싹쓸이 해갔다. 심지어 물대포와 총으로 소말리아 어선을 쫓아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소말리아 어민들의 생활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럽 기업들은 감시가 소홀한 소말리아 해역에 핵폐기물 등 유해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갖다 버렸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기업들이 80년대부터 소말리아 해안에 폐기물을 투기해 온 사실을 지난 1997년 폭로했다.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폐기물을 자유롭게 버리는 대신 소말리아 군벌에게 무기를 공급하기로 한 유럽 기업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기업들이 소말리아 해역에 버린 유해 폐기물은 무려 3500만 톤(t)으로, 이탈리아 환경단체 레감비엔테(Legambiente)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유해 폐기물이 이 일대에 버려졌다”고 지적했다. 이후 소말리아에는 장애아 출산과 암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 2009년 이탈리아 기자가 조사한 소말리아 해역 유해폐기물 현장. ⓒ 알자지라 People & Power 2009년 1월 17일 방송

이런 외국인의 횡포에 맞서 어족 자원을 지키고 유해폐기물 투기를 막고자 등장한 해안경비대가 오늘날 소말리아 해적의 전신이다. 요즘도 출몰하는 해적선 중에 ‘소말리아국제해안경비대’나 ‘소말리아해병대’의 이름을 단 배들이 있고, 해적들 스스로 경비대를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들이 활동하면서 외국 선박의 무차별적 남획이 줄어 어족 자원이 풍부해지고 임금 상승 등 경제활성화 효과도 나타났다고 영국의 싱크탱크 해텀하우스가 지난 1월 보고했다. 그러나 해적들이 테러 집단과 결탁해 무기를 공급받고 2천km가 넘는 먼 바다까지 나가 납치극을 벌이는 등 날로 대담해지고 흉포화하면서 국제사회의 큰 골치거리가 됐다. 지난 2008년 이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박이 800여 척이고 피해 선원 2,300여명 중 300여명은 아직도 억류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지난해 4월 30일 피랍된 제미니호의 한국인 선원들도 포함돼 있다.

새 대통령 선출한 소말리아, 국제사회 공조로 돌파구 찾아야

우리 정부는 지난해 1월 해군 청해부대의 작전으로 아덴만에서 삼호 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한 이후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고수하며 제미니호 문제 해결을 미뤄왔다. 아덴만의 군사작전은 화려했지만 소말리아 해적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었고, 피랍 선원들의 가족은 피 말리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 21년 만에 처음으로 선출된 소말리아 연방 대통령 하산 셰이크 무함마드가 케냐방송 KTN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KTN 9월 11일 방송

실낱 같은 희망은 지난 9월 소말리아에서 21년 만에 처음으로 연방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점이다. 유엔의 감독 아래 새 헌법이 마련되고 의회 의원들과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소말리아의 정치 불안정이 해소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이제는 국제사회가 이 절박한 나라를 돕기 위해 나설 때다. 국제사회는 지금까지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위해 수 십 억 달러를 지출했고 비슷한 액수를 상업 어선의 안전을 위해 쏟아 부었다. 그러나 외국인의 불법 어로와 유해폐기물 투기 등으로 더욱 피폐해진 소말리아를 근본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지원에는 인색했다. 소말리아가 안정적인 국가 체제를 만들고 소말리아의 청년들이 해적이 아닌 건전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각국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외교적, 경제적 지원을 통해 소말리아의 재건을 돕는 한편 소말리아의 새 정부와 국제기구 등의 도움을 받아 한 시라도 빨리 제미니호 피랍선원을 구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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