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윤지원

▲ 윤지원 기자
“이태리산 치즈를 얹어서인지 유럽에서 맛 본 딱 그 맛이라니까.” 휴가철에도 친구는 유럽에 갈 필요 없다며 또 이태원 자랑이다. 널찍한 테라스에 앉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들으며 프랑스 홍합구이에 와인을 곁들이면 마치 근사한 외국 도시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 파란 눈의 금발 머리 친구라도 사귀면 금상첨화다. 안 되는 영어라도 몇 마디 주고받고 나면 왠지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낸 기분이 든다. 그야말로 이태원, 이태원 프리덤!

안산 원곡동도 온통 외국어 간판이 골목마다 빼곡하고 특색 있는 음식점이 많은 점은 이태원과 흡사하다. 다른 점이라곤 두 가지. 첫째, 백인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둘째, 한국인도 없다는 것. 거기다 지난해 벌어진 방글라데시인 폭력 사건 뒤 들어선 외국인치안센터는 원곡동을 더욱 음산하게 한다. 알고 보면 술 먹고 일어난 말다툼이 주먹 다툼으로 번진 흔한 폭력사건이었다. 그런데 그날 방송보도에는 ’원곡동, 민족 갈등으로 무법지대’라는 자막이 깔렸다.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을 보는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해외 문화와 가치관을 무분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모방하는 ‘수용의 메커니즘’과 무조건 배척하고 폄하하는 ‘배제의 메커니즘’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가 그대로 작용하는 각기 다른 대상은 자명하다. 미국으로 가는 한국 유학생 수가 경기침체 속에도 고공 행진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들어오는 문학, 영상, 음반, 의류 등이 인기를 끄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수용의 메커니즘’을 보면 한국 사회는 제노포비아, 곧 외국인혐오증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동남아 출신 외국인과 중국 동포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외국인 근로자의 비인격적인 근로환경, 노예 수준의 임금체계, 차가운 사회적 시선은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준 상처다. 그리고 이 상처는 사회 전반의 무관심 속에 덧나기 일쑤다. 이주여성들이 겪는 인권유린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이자스민에게는 쉽게 돌을 던진다. ‘배제의 메커니즘’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 엄연히 작동하고 있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의 이중성은 지난해 터진 외국인 범죄의 여파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9월과 10월, 미군의 청소년 성폭행 사건이 두 번이나 터졌다. 사건 뒤 일부 시민단체가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를 요청한 것 말고 우리 언론과 여론의 관심은 금세 사그라졌다. 그런데 중국 동포나 저개발국가 출신 범죄는 범인의 모국이 강조되고 편견이 그들 동포 전체를 향한다. 범죄는 개인이 저지른 것인데도 특정 국민 전체를 매도한다. 우리 속에 꿈틀대는 ‘배제의 메커니즘’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인권유린에 침묵하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요 야만이다. 미셸 푸코도 “우리 것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그 거만함이야말로 진정으로 야만스러운 사고”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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