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우장균 ‘다시 자유언론의 현장에서’

영화보다 더 리얼한 한국의 언론탄압

기자는 무엇보다 메시지의 전달에 신경을 쓰는 직업이다. 그래서일까? 우장균 YTN 해직 기자는 영화 얘기를 하면서 한국 언론의 현주소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사실 한국의 대중은 영화에 열광하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식상한 주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이미 확고한 것으로 생각해서일까?

그러나 한국의 ‘언론 자유’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세계 70위로 추락했다. 196개국 가운데 1위 핀란드와 꼴찌 북한의 중간쯤 된다. 그것도 미국의 보수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조사 결과이니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적극 지지해온 보수언론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자유는 보수의 핵심적 가치가 아니던가?

▲ 우장균 기자의 <다시 자유언론의 현장에서> 표지.

우장균 기자는 그의 저서 <다시 자유언론의 현장에서>를 통해 자신이 겪은, 영화보다 더 ‘리얼’한 언론 탄압의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언론의 자유와 역할에 대한 담론을 대중에게 친근한 영화 14편, 곧 <라디오 스타> <박하사탕> <슈렉> <국가대표> <쇼생크 탈출> <공동경비구역 JSA> <인생은 아름다워> <친구> <영웅> 등을 통해 풀어간다.

우 기자는 ‘MB 특보’ 출신 YTN 사장 임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008년 10월 강제 해직됐다. 그러나 그는 해직 후 한국기자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해직기자는 기자가 아니다’라며 YTN 사장이 한국기자협회에 보낸 공문도 기자들의 ‘공분’을 막지 못했다. 기자협회장으로 언론운동을 하고 있고 책도 썼으니 그는 여전히 ‘기록하는 자’ 곧 ‘기자’임에 틀림없다.

21세기 하고도 11년이 다 지나가는 시점이니 자칭 선진국인 한국에서라면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자체만으로 구시대적 냄새가 나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비민주적 요소가 많은 분야가 오늘의 한국언론이다. <프리덤 하우스>가 한국을 과거 군사정부 때처럼 ‘부분적 언론 자유 국가’로 분류한 근거는 세 가지다. 뉴스와 정보 내용물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공식적인 검열이 증가하고 있고, 온라인상에서 반정부 또는 친북 표현물 삭제가 늘어났으며, 대통령 측근을 주요 방송사 요직에 앉혀 방송사 경영까지 간섭해왔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근거는 셀 수 없이 목격됐다. MBC의 <PD수첩> 4대강 관련 결방, 시사프로그램 <후 플러스> 폐지, 개그우먼 김미화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하차, YTN의 기자 해직, 미네르바 구속, 가장 최근에는 팟케스트 <나는 꼼수다> 출연진에 대한 경찰 수사까지 수많은 사건이 이어졌다.

쇼생크 교도소의 노틀 소장이 넘치는 사회

우 기자는 현 정권의 언론 탄압이 영화 <쇼생크 탈출>의 쇼생크 교도소를 닮았다고 본다. 영화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들어온 주인공 앤디와 죄수들을 짐승처럼 부리는 교도관들, 그들을 지휘하는 이중인격자 노틀 소장이 나온다. 노틀 소장은 성경과 규율, 법과 원칙을 운운하며 교도소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교도소장이란 직책을 이용해 부정을 일삼았다.

앤디는 쇼생크에서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은행원 시절 쌓은 전문지식을 이용해 노튼 소장이 세금 면제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노튼 소장은 자기 재산을 불려주는 앤디를 잃고 싶지 않아 앤디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를 갖고 있는 토미를 살해한다. 영화에서는 앤디가 노틀 소장의 왕국 쇼생크 교도소에서 끝내 탈출에 성공한다.

▲ 영화 쇼생크탈출의 노틀 소장. ⓒ wikia.com

한국 사회의 쇼생크는 우 기자가 직접 겪은 YTN 기자 해직 사건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2008년 9월 청와대 박선규 언론비서관을 비판하는 글을 <기자협회보>에 올렸다가 해직된다. 박 비서관이 ‘MB 특보 YTN사장’ 취임에 핵심역할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 비서관은 낙하산 사장 저지투쟁을 하는 YTN 노조에 정부가 YTN 주식을 팔아버리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해직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지만 정말 해직될 줄은 몰랐다. 기자 6명이 해직된 이유는 업무방해 혐의인데, 나는 구본홍 사장의 업무를 방해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권력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관용을 기대한 것은 사치라 생각한다.”

우 기자는 거대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언론탄압을 자행하는 기자 출신 정권 인사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노틀 소장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양심과 상식에 따라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기자가 많다고 믿는다. 우 기자는 <쇼생크 탈출> 포스터에 쓰인 구절을 소개했다. 

“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 can set you free.”(두려움은 당신을 가두고, 희망은 당신을 해방시킨다)

▲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 앤디. ⓒ 월드프레스

우 기자가 박 비서관에게 보낸 편지글 형태의 <기자협회보> 기고문에는 기자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타난다.

“저와 YTN 기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박 비서관 같은 권력을 가진 공복의 서슬 푸른 칼날이 아닙니다. 저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그릇된 정책이 우리의 일터를 유린하고 이 땅의 언론독립을 훼손하고 우리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한국에선 휴머니스트가 곧 좌파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미스터리 총격 사건 이야기다. ‘볼일’을 보려다 실수로 지뢰를 밟은 한 남한군 병사는 그를 발견한 북한군 병사들에 의해 어려움을 모면한다. 남한 병사는 북한군 초소를 드나들며 선물도 주고 받으며 진한 우정을 다지는데, 어느 날 북한군 장교가 이들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돌발상황에 놀란 이들은 총을 발사하고 남한 병사는 자신이 쏜 총에 동생처럼 가까이 지내던 북한 병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자살한다.

▲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중 한 장면. ⓒ Koreafilm

우 기자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북한군 병사가 초코파이를 얻어 먹으며 자신의 소박한 꿈을 털어 놓는 장면을 꼽았다.

“내 꿈은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나은 초코파이를 만드는 거야. 그때까진 어쩔 수 없이 초코파이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어.”

우 기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접적지대인 공동경비구역에도 전쟁과 갈등보다는 평화와 소통 같은 휴머니즘이 흐르는데, 한국언론에는 휴머니즘이 사라지고 친북이나 반공과 같은 이분법만 남았다고 지적한다.

극단적 색깔론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보도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우 기자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결정적 증거인 어뢰잔해와 잇따른 정부발표에 의혹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속한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는 ‘천안함 언론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정부 공식 발표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있다면 검증과 사실 규명을 하는 게 언론의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검증위를 친북, 종북세력으로 낙인 찍기 바빴다.

우 기자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휴머니스트를 좌파로 매도하지 말라고 반박한다. 언론은 ‘진보와 보수’ 곧 좌우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유를 말하는 진짜 보수와 평등을 말하는 진짜 진보가 있을 때 인간의 존엄성이 빛난다고 말한다.

기자는 역사를 기록하는 놈이다

우 기자는 영화 <영웅>의 원전 격인 <사기>의 집필자 사마천을 들어 기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 때 나라의 기록을 맡은 사관이었다. 사마천은 패전한 장수 이릉을 변호했다가 사형 위기에 처했는데 사형을 면하는 유일한 방법은 궁형뿐이었다. 궁형은 남근을 자르는 형벌로 당시에는 죽는 것만 못한 치욕이었다. 그가 궁형을 선택한 이유는 “사기”를 완성하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 역사서 '사기' 집필가 사마천(司馬遷)의 초상화. ⓒ greenbee

우 기자는 모든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역사를 기록하는 사마천 정신이 곧 기자 정신이라고 표현한다. ‘기자(記者)는 기록하는(記) 놈(者)’이라는 게 그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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