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윤지원

“압구정 가슴녀를 찾아라!”

▲ 윤지원 기자

혹시 볼륨감 있는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서울 압구정동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을 떠올렸다면 그 침 삼키시라. 지난 달 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순위 1위까지 올라갔던 ‘압구정 가슴녀’는 아쉽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 인터넷 매체가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내용의 서평을 쓰면서 ‘압구정 가슴녀’란 표현을 제목에 넣었다. 압구정역 일대에 즐비한 가슴성형 광고를 빗대 성적 매력에 집착하는 세태를 꼬집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곧 포탈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랐고 다른 매체들은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 채 압구정동의 ‘가슴녀’를 찾는데 혈안이 됐다.

“상반신 노출한채 거리활보? 진짜야, 가짜야?”
“압구정 가슴녀 클릭했더니 깜짝…”
“검색어 1위 압구정 가슴녀, 실체는 어디에?”

주요 일간지까지 가세한 ‘가슴녀 찾기’는 애달프고도 절박한 느낌을 줄 지경이었다. 나중에 해당 매체가 “가슴녀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고 해명한 후에야 이 어처구니 없는 소란이 가라앉았다. 

서태지, 이지아의 이혼 소송 등 연예인 사생활 얘기가 버젓이 신문과 방송의 주요 뉴스 자리를 차지한 데 이어 최근엔 연예인 인지도에 버금가는 ‘그녀’들이 지면과 전파, 온라인 공간을 번갈아 장식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가슴녀’ 에서부터 ‘국물녀’, ‘개똥녀’, ‘담배녀’, ‘라면녀’까지…. 도대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토론 거리를 제시한다’는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은 어디로 자취를 감췄는지 알 수 없다.

▲ 지난 4월 논란이 된 언론의 '압구정 가슴녀' 기사들. ⓒ 네이버 화면 캡처

‘루머(소문)’의 운명은 기자의 손에 달렸다. 루머는 말 그대로 뚜렷한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다. 전문 언론인은 이를 검증해서 믿을 만한 근거가 있고 뉴스가치가 있을 때 기사로 써야 한다. 언론이 다루는 뉴스는 대중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떤 것을 기사화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성격의 기사를 고르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00녀’ 시리즈는 어떤 여성이 상식이나 윤리 기준을 벗어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사회적으로 그리 긴요한 정보도 아니고 여론 형성에 기여할 만한 주제도 대개는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들은 물론 주류 언론들까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마녀사냥’ 여론에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중한 전파와 지면을 할애해야 할 사건과 쟁점이 우리 사회에 그렇게 부족하단 말인가. 기사 속 어떤 여자의 해괴한 행동이 클릭 수와 1분 시청률을 끌어올릴 때, 정작 대중의 관심이 절실한 누군가의 절규가 묻혀 버린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의제설정 기능을 논하기에 앞서 이런 기사를 보도한 언론들이 ‘사실검증’이란 가장 기본적인 저널리즘원칙마저 지키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지하철 안에서 ‘큰일’을 보았다고 해서 논란이 된  ‘분당선 대변녀’ 사건은 어느 승객이 SNS에 사진을 올린 후 온갖 언론이 이 ‘몰상식한 여성’을 비난하면서 떠들썩한 뉴스가 됐다. 하지만 현장을 목격한 다른 승객이 나중에 증언한 것을 보면 사건 당사자는 지적 장애인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사고’를 낸 것이었다고 한다. 진상을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떠들고 본’ 언론이 낳은 인권 침해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언론이 사실 확인에 소홀하다고 할 순 없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에 대한 강용석 전 의원의 병역의혹 제기를 포함, 크고 작은 사건에서 언론이 기본적 검증 의무를 지키지 않고 개인의 명예와 인권, 사생활을 짓밟은 예는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다. 

합리적인 의제설정과 철저한 사실검증의 의무는 언론학 개론에 나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런 원칙들이 무너지면 언론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언론이 실패하면 시민의 알권리 충족, 권력 감시, 계층간의 통합과 소수자의 권익 옹호 등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에도 치명적이다.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과 더불어 국가의 네 기둥 중 하나로까지 꼽히기도 한다. 정체 불명의 마녀사냥 대신 뿌리 깊은 권력 비리와 사회 부조리를 향해 용감하게 칼을 휘두르는 한국 언론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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