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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을 빼앗는 이는 누구인가
[마음을 흔든 책]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알레산드로 리마싸 '천유로세대'
2012년 07월 11일 (수) 22:19:15 윤지원 기자 jw8444@naver.com

삼포로 가는 길 대신 '삼포세대'만 남았다.

201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취업준비생인 친구들은 대부분은 반(半)자발적 '싱글'이다. '아직 직장도 없는데...'란 생각이 연애를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선배는 결혼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했다. 당장은 주택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더라도, 여자친구가 직장이 없어 앞으로 혼자 빚을 갚아나갈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단다. 아이는 상상조차 어렵다. 주변을 한 바퀴만 돌아봐도 연애, 결혼, 출산 이 세가지를 포기한 '삼포'투성이다. 여기에 '세대(Generation)'이라는 말이 붙는 게 자연스러워 보일 뿐이다.

   
▲  인코르바이아와 리마싸의 <천유로세대> ⓒ예담출판사

삼포세대의 원조는 '88만원세대'였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인턴 채용이 급증하면서 청년들에게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아져버렸다. 학자금 대출 빚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허덕이며 근근이 살아가는 그들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88만원 세대'였다. 그런데 이 표현의 진짜 원조는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와 알레산드로 리마싸라는 이탈리아의 두 젊은이다.

안토니오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알레산드로는 경제학을 공부한 후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죽어라 일해봤자 두 사람의 월 수입은 많아야 1000유로(약 147만원)일 때가 많다. 2006년 둘이 함께 쓴 소설 <천유로 세대>가 그저 로셀라, 클라, 알레, 테오라는 허구의 인물들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해 '아르바이트 하이에나'가 된 로셀라, 능력 있는 '계약직'으로 늘 해고 불안에 시달리는 클라우디오, 기자를 꿈꿨지만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우체국 직원이 된 알레시오, 부모님이 준 풍족한 용돈으로 놀고 또 놀기만 하는 만년 대학생 마테오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20대와 겹친다.

특히 로셀라가 논문대필, 보모, 옷 가게 점원 등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벌은 돈이 고작 700유로(원화 100만원)라며 친구에게 대성통곡하는 내용에선, 순간 멍해졌다. 지난 여름 한 달 내내 밤낮 없이 일한 끝에 받은 인턴 월급이 40만원임을 확인했던 때처럼 .

"클라, 하루 종일 생각해 봤는데... 이번 달에 내가 얼마나 벌었는지 계산해 보기 시작했어. 근데 봐. 딱 700유로 나오는 거 있지. 이게 뭐야..."

"솔직히 요즘은 애 보는 일이 부업이 아니라 내 주업이 되는 것 같아 겁이 나. 아직 스물 여섯 살인데, 컴퓨터공학 졸업장까지 가지고 직업으로 베이비시터를 하기엔 좀 이른 것 같잖아"

6년이 지난 지금 로셀라는 어떤 모습일까? 신문 국제면이 '유로존 위기'로 가득한 최근 상황을 미루어 짐작컨대, 그녀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대성통곡하고 있을 것만 같다. 며칠 전 읽은 기사에 한 그리스 청년은 "이제 월급 1000유로는 꿈 같은 돈"이라고 했다. 겨우겨우 벌 수는 있었던 1000유로마저 꿈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앞으로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가. 아니, 그들의 진짜 이름을 빼앗아가는 이는 누구인가.

앞서 말했듯 유럽 청년들과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은 닮아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미국의 20대와도 비슷하다. '불안한 청춘', 아니 '불안사회'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자 국제사회는 정치권, 학계, 언론할 것 없이 모두 지금의 난상을 해석하고 설명하기 급급하다. 누구나 한 번쯤 '신자유주의'니 '자본주의' '금융위기' 등등을 들어봤을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조차 최근 인터뷰에서 "이제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지겹다"고 밝혔다. 연일 매스컴을 보고 듣는 내 귓가에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금융위기'란 단어들이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

일자리가 없고, 돈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빵이 없어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럽의 경제위기가 유로존 내부의 불균형에서 왔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라는 이야기들은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이념이 곧 만병통치약이라는 수많은 약장수들의 외침 또한 마찬가지다. 너도나도 복지를 외치는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 역시 다를 바 없다.

말과 말들 속에 책임은 미뤄지고, 희망은 멀어져 간다.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연대보다 경쟁이 먼저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저 제 힘에 의지해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월 700유로 수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작 밤을 새워 이력서를 고치던 로셀라처럼. 그렇게 1000유로 세대는 500유로 세대로, 88만원 세대는 삼포세대로 추락하고 있다.

"한 달에 700유로라. 대중이나 선도하며 그 가식적인 슬로건으로 입이나 닦는 정치인들이 과연 이 삶을 어떻게 알까?. '젊은이들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 몇 마디 하고 한 달에 2만 유로는 벌면서, 로셀라 같은 애들은 주머니에 남은 동전 몇 개로 시들어가든 말든 나이 90이 되어도 국회 의석을 지키고 있는 뻔뻔한 인간들(책 162쪽 클라우디오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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