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20.5.28 목
> 뉴스 > 칼럼 > 단비발언대
     
'강남 좌파'에 거는 기대
[단비발언대] 윤지원
2011년 07월 07일 (목) 11:26:22 윤지원 기자 jw8444@naver.com

   
▲ 윤지원 기자
초등학교 1학년때 나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애정은 유별났다. 그는 유독 말랐던 나를 ‘코스모스 코스모스’라고 부르곤 했다. 그럴 때면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난 괜스레 으쓱해졌다. 어느 날 선생님은 수업 중 갑자기 칠판에 당시 내 아버지 회사 이름을 썼다. 분필로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쓴 뒤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었다. 다 커서 안 사실이지만 그날 오전 내 어머니는 선생님 책상에 돈봉투를 두고 가셨다. 선생님의 이상한 행동은 봉투에 적힌 회사 이름을 칠판에 씀으로써 돈 잘 받았다는 표시를 한 것이었다.

내가 처음 경험한 선생님의 관심은 위선이었다. 사람들이 위선을 유독 싫어하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눈 뜨고 당하기 십상일 테고, 그런 경험의 누적이 위선자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유전됐을 것이다.

위선은 특히 정치와 손잡는 일이 아주 흔하다. 미국의 리무진 리버럴, 네덜란드의 살롱 사회주의자, 폴란드의 커피숍 혁명가, 프랑스의 샴페인 좌파...... 소수를 위하는 듯하지만 정작 자신은 특권층에 소속되어 그 권리를 누리는 정치적 위선자를 혐오하는 레토릭들이다. 

1970년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흑인과 백인을 융합할 목적으로 공립학교의 흑백공용 통학버스 운행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아이들은 사립학교에 다니게 함으로써 흑인과 섞이는 걸 피했다. 21세기 초 미국의 환경운동가들이 교통수단 이용 캠페인을 벌이며 자신들은 SUV나 운전수가 모는 리무진을 타고 다녀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이렇게 사상과 말이 삶의 실제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 위선자들에게 시민들은 격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강남좌파’는 억울하게 혐의를 뒤집어쓴 듯하다. 조국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정동영 의원의 공통점은 모두 특목고의 부당함을 설파했다는 것이고 이들 자녀가 모두 특목고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강남좌파’란 꼬리표가 달렸다. 하지만 특목고생 자녀가 있다고 그런 교육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논리는 엉성하다.

‘강남좌파’라 낙인 찍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결국 ‘특권층으로 살면서 왜 서민 운운하냐’는 거다. 하지만 자기 계급이익에 몰입하지 않고 없는 이를 위하고 대변하는 것이 욕먹을 일인가? 그들 논리대로라면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니 위선자이고, 귀족 출신이면서도 전 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도 영락없는 위선자다.

힘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위해 힘쓰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위해 베풀고, 배운 자가 못 배운 자를 위해 발언할 때, 세상은 조금씩 살만한 곳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층이 요즘처럼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 등을 포퓰리즘으로만 몰아붙인다면 세상은 더 살기 힘든 곳이 될 수밖에 없다.

‘강남좌파’는 기득권층에 속하면서도 대중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사람들이다. 기득권층이 보면 배신자요 위선자일지 몰라도 민중에게는 믿고 의지하고 싶은 호민관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윤지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3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1년후에 생뚱맞게 (58.XXX.XXX.246)
2012-09-21 00:18:43
선생님의 차별적 애정을 받을 땐 좋았으나 봉투의 위력에서 나오는 위선임을 알아 차린 후의 배신감과 강남좌파의 진정성과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 대충은 알만하나, 어처구니없는 결론밖에 안 남는다는.
리플달기
0 0
지나가던이 (121.XXX.XXX.150)
2011-08-27 13:48:01
필력이 형편없어 논리적인 반박은 하기 힘들지만 기자님의 의견을 납득하기 힘들군요. 자식들을 특목고에 보내놓고는 특목고의 부당함을 설파하는 것이 위선이 아니라는 것에 마르크스와 이회영 선생을 비교하는 부분을 쉽게 인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자로 태어났던 마르크스나 이회영 선생의 행동을 과연 스스로 결정하여 자식들을 특목고에 보낸 그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솔선수범이라는 말은 리더에게 큰 덕목이기에 그들의 위선이 크나큰 배신감으로 돌아와 비판하는 것을 어떤 타당한 목적을 가지고 옹호하시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합니다.
리플달기
1 1
윤지원 (175.XXX.XXX.217)
2011-11-11 21:36:05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목고를 다니게 한 것과 마르크스, 이회영 선생을 배치시킨 것이 오해를 살 여지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자녀가 특목고에 다니는 이유로 사상과 행동의 불일치, 즉 위선자라고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쟁적 암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체제를 비판하려면 좋지 않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듯 특목고 학부모들도 구조 변화를 위해 특목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리플달기
1 0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충북 아 00192|등록일 : 2017-11-27|발행인: 이봉수|편집인: 심석태|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심석태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석태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