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교사 신분 불안정에 교육현장도 ‘흔들’

이민정(26•가명)씨는 지난 6월 서울의 한 사립중학교 국어과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다. 바로 몇 달 전 타 학교 정규 교사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터라 합격의 기쁨은 컸다. 학생들의 학업과 인성 모두에 관심을 쏟는 좋은 선생이 되겠다는 꿈도 가졌다. 그녀의 학교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나 꿈은 깰 수밖에 없는 걸까? 현실은 아이들에게 신경 쓸 충분한 시간과 여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 20시간 수업 말고도 각종 행정업무가 그녀에게 맡겨졌는데, 주로 품이 많이 들어 정규 교사들이 기피하는 잡무들이었다. 수업 준비가 아닌 일로 야근을 하면서도 학교측에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불안한 신분에 찍혀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정규교사는 4시 20분이면 바로 퇴근해요. 퇴근 시간 후 학교에 남아있는 선생님은 거의 기간제 교사예요. 수업시수가 보통 일주일에 20시간 정도인데 기간제 교사들은 24시간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어요. 물론 다른 업무도 많고요. 업무 많은 것에 대해 학교측에 항의 못하죠. 눈치 봐야 하니까.”

 

▲ 학교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지난 2009년 전국 사립 전국 초,중,고 신규임용 교원 76%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밝혀져 비판을 받았는데도 기간제 교사 수는 계속 늘어났다.

기간제 교사는 ‘일회용품’?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은 기간제 교사가 겪는 다른 문제에 비하면 약과다. 민정씨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예체능과 여교사는 기간제로 3년째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3년 전 한 정규 교사가 육아휴직을 내면서 기간제 교사로 고용됐다. 정규 교사가 아이를 한 명 더 낳으면서 고용기간도 늘었다.

그녀도 그동안 결혼을 했지만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가 출산하는 것은 꺼린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도 갖지 않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육아휴직을 낸 정규 교사가 휴직 기간을 합쳐 10년 연속 근무를 인정받았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학교에서 일한 경력은 비슷하지만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출산을 포기했던 자신에 비해 정규 교사가 갖는 혜택은 너무 컸다.

“기간제 교사가 학력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에요. 그저 정규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그런 보호를 받는 것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엄청 크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임정훈 대변인은 “일주일에 서너 건 기간제 교사들로부터 상담 문의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규직만 받는 성과급을 기간제 교사로 확대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며 “기간제 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고용개선책에서도 빠진 기간제 교사

기간제 교사가 겪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국의 1만여 초,중,고교에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는 2010년 기준 2만 4800여명으로 4년 전 1만 3700명에 견주어 80%나 증가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1월 한나라당과 정부가 당정협의를 거쳐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에서 기간제 교사는 정규직 전환 혜택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출산휴가 등으로 생긴 결원을 대신하는 인원이라는 기간제 교사의 특수성 때문에 전환 혜택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년, 출산휴가 등으로 생기는 결원의 대부분을 비정규직 교사로 메우는 것은 문제가 많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전국 사립 전국 초,중,고 신규임용 교원 76%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밝혀져 비판을 받았는데도 기간제 교사 수는 계속 늘어났다.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는 문제인데도 교육청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 임광빈 사무관은 “고용노동부와 한나라당의 당정협의 결과에 대해 교육청에서는 내부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 채용에 대해서도 “공립학교 기준에 준해서 지도감독을 하고 있지만,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무시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1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에서 기간제 교사가 제외된 것을 보도한 방송 뉴스 장면. ©MBC

 ”선생님, 내년에도 있어요” 질문에 소외감

기간제 교사 문제는 그들만의 피해로 그치지 않는다. 경기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김지훈(33ㆍ가명)씨는 작년 3월에 2년 동안 기간제 교사로 일했던 학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운 좋은 사례다. 그는 기간제 교사로 수업에 임한 것과 정규직이 된 지금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기간제 교사는 보통 1년 계약을 하고 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떠난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선생님과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규직이 되니 안정돼서 좋죠. 심리적으로 안정되니까 학생들 대하는 게 훨씬 나아졌어요. 학교측 눈치 보고 행정업무 과하게 하는 시간을 애들한테 쏟게 된 거죠. 담임 바뀌고, 선생이 자꾸 바뀌는 것은 아이들이 이상하게 느낄 수 있어요. 작년에 계셨던 분이 올해 와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는 건 문제가 많습니다.”

이민정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애들이 한번은 ‘선생님 내년에도 있어요’라고 묻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학생과 선생은 정서적 교감이란 게 있고 그런 점에서 선생은 당당해지고 싶은데 소극적이 돼버려요. 교사의 신분은 함부로 다뤄선 안 되는데 정부 책임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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