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이택광 교수
주제 ① 대중의 시대란 무엇인가

주체성 자각한 대중의 대리인, 안철수

“딸 셋을 둔 강남부자의 사위들은 이렇습니다. 검사, 의사, 교수. 이렇게 사위를 고르면 집안이 완벽하게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게 한국의 연줄 문화입니다. 어떤 문제를 합리적 절차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아는 사람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런 구조 속에 비평적 사고는 쓸데없는 것이 돼버립니다.”

▲ 문화비평가로 활약하는 이택광 교수. ⓒ 윤지원

문화비평가로 활약하는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자기 목소리’가 사라진 한국 사회를 비판하면서 강의 주제인 ‘대중의 시대란 무엇인가’에 접근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근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탈근대’에 들어섰다. ‘자유’에 대한 담론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의 본질은 전체주의와 권력뿐 아니라 시장을 포함한 모든 이데올로기에 저항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단 현실 때문에 진정한 자유주의가 뿌리내리지도 못한 채 신자유주의를 맞았다. 국민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버린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한국의 자유주의를 ‘절름발이 자유주의’라고 표현했다.

그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안풍’ 또한 아직도 자유주의가 뿌리내리지 않아 생긴 바람으로 설명했다. 진정한 자유가 발전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은 주체성과 주권 없이 타자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별 볼 일 없는 정치인들과 사회구조 속에서 방황하다 안철수라는 탁월한 대리인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까지 나온 어떤 인물과 달리 의지할만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자 국민들은 그를 폭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는 이런 모습을 ‘대중의 시대’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품 백 사려고 장학금 신청

그가 말하는 대중의 시대란 무엇일까? 바로 ‘문화’가 다른 경제학, 법학, 자연과학과 같은 순수학문을 압도하는 시대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의 법칙보다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요소가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일어난 정전사태에 대한 대응책은 순수학문 법칙에 따르면 전기를 아껴 쓰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기소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당위적인 순수학문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해하기 쉽게 한 가지 예를 더 들었다.

▲ 이택광 교수 강의를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  ⓒ 윤지원

“대학생 중에는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품 백을 사려고 장학금을 신청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죠. 이런 모습을 나이 드신 교수님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너무 갑자기 문화에 정복당한 대중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겁니다.”

오늘날 ‘대중’은 과거 ‘국민’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다. 국민은 근대국가가 출현한 뒤 군중을 한 이데올로기 속에 포함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정치적인 세력화를 통해 군중을 규제하려고 국가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그들을 집어넣은 거죠. 이게 국민입니다. 국가권력과 국민의 계약관계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사회에 이미 들어오는 순간 자연인이 아니다’라고 루소가 말했듯이 대중은 국민과 엄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그가 말하는 대중은 국가에 속한 국민처럼 어떤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질서화하고 명령화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사람,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 쇼핑몰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처럼 어떤 조직이나 규범으로 규정 되지 않은 사람도 대중이다.

부르주아가 겁내는 건 대중이 주인처럼 행동하는 것

대중은 프랑스 혁명 때 출몰했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은 곱추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 그리고 노트르담의 부주교 프롤로를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교수는 이 소설에서 흉측한 곱추 콰지모도가 프랑스 혁명의 대중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외모는 끔찍하지만 괴력을 갖고 있는 존재가 곧 대중이라는 말이다.

▲ 이택광 교수는 <파리의 노트르담>에 등장하는 "곱추 콰지모도가 프랑스혁명의 대중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모네의 <파리의 카푸친대로>(오른쪽)는 부르주아의 시선으로 그린 그림이다.

또 다른 예로 <프랑켄슈타인>이 있다. 많이 알려진 바와 다르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박사 이름이다. 소설 속에는 괴물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씨는 이 괴물 또한 대중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름도 없는 이 괴물은 처음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나중엔 박사에게 아내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까지 하게 되죠. 대중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은 무지하지만 스스로 배우고 공부하죠. 대중의 위력이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배워서 주인처럼 행동하게 되는 거죠. 바로 이게 부르주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일입니다.”

그는 모네가 그린 <파리의 카푸친 대로>를 스크린에 띄웠다. 발코니에서 군중을 내려다보는 부르주아의 시선을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1850년대에 나폴레옹 3세는 중산층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파리의 도시계획을 허가했다. 도시가 발전하며 중산층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빈민층은 외곽으로 쫓겨났고, 그 자리에 높은 빌딩과 대로가 생겼다. 프랑스 혁명 이후 파리에는 폭동이 매일같이 일어났기 때문에 폭동꾼들을 격리하기 위해 대로를 만든 것이다. 대로로 만들면 폭동꾼이 모여도 100명 정도밖에 안 되니 폭동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러나 군주는 군중들을 모으고 제 능력을 과시하는 일이 필요했기에 광장을 만들었다. 그때 나폴레옹 3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 자리를 군중 스스로 모여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바로 대중의 탄생, 근대의 탄생이었다.

미디어, 주체성을 갖게 하다

 ▲ 이택광 교수. ⓒ 윤지원
산업혁명 이후 대중들은 억압받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시골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와 자본주의 노동자가 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려면 자식들을 맡겨둘 곳이 필요해 학교와 보육원이 생겼다. 필요에 따라 병원, 공중목욕탕 등이 생겨났다. 이렇게 점점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 도시화•산업화 과정 속에서 대중은 주체성을 상실했다. 상품과 소비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시는 소비주의와 상품이 판치는 하나의 ‘환등상’(판타스마고리아)이 되었다. 이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TV 스크린 같은 것이다. ‘스펙터클’한 화면을 즐기고, ‘뉴요커’와 같은 낯선 삶을 꿈꾸고, 명품을 몸에 두르는 문화, 이 속에서 개인은 자유와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대중을 ‘인터넷 잉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쓸모없고 남아돈다는 부정적 의미가 아닌 ‘surplus’라는 뜻의 ‘잉여’이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대중의 역할이 확대됐다. 과거에 사람들이 정의한 것처럼 미디어는 사회를 지배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디어는 대중의 통제를 받기도 하고 대중을 이끌기도 하는 쌍방향성이 있다. 이 쌍방향성 때문에 대중은 미디어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의 쌍방향성과 더불어 대중은 인터넷 잉여로써 주체성을 강화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스마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작된 편재하는 주체성이다. 디지털 사회가 지향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산업인력으로서가 아닌 자기 성찰적 주체로 작동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강재호, 이택광, 심보선, 이현우, 정희진, 오동진, 고미숙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