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회사의 물동량이 준 걸 보면 제조업 위기라는 말이 확실히 와 닿아요. 5년 전이랑 비교하면 회식을 가도 식당에 사람이 없고, 특히 공단으로 출퇴근할 때 움직이는 차량 숫자가 확 줄었어요. 활력을 잃었죠. 저는 여기서 진짜 위기를 실감했습니다.”지난 8월 24일 경북 구미의 국가산업3단지에서 만난 엘에스(LS)전선의 한 30대 노동자는 구미의 제조업 위기가 심각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직원끼리 앞으로 구미로 유입되는 기업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곤 한다”며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대기업 빠져나간
추석 명절을 엿새 앞둔 지난 25일 오후 한 시쯤, 서울 종로구 통인동 통인시장. 작년 이맘때만 해도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제수 장을 보러 온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대던 시장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200m쯤 되는 시장 골목에 장을 보러 나온 이는 열댓 명뿐이었다. 그나마 구경만 하고 지나가거나 물건값만 물어보고 가는 이가 대부분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은 고작 서너 명이었다. 코로나19 이후 관광객들 발길이 뜸해지면서 악세서리 공방을 하던 가게에는 문을 닫고 임대 공고가 붙어 있었다. 시장 입구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시장내 취
한낮의 강화터미널은 “힘들어서 어디 나가질 못해”라며 푸념하는 친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 한산하고 풀이 죽어 있는 듯하다. 리모델링한 승강장만 시끌벅적할 뿐 주변 상가는 적막하다. 그냥 틀어 놓은 슈퍼마켓의 텔레비전에서 트롯 노래소리만 조그맣게 들릴 뿐이다. 70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카페 ‘조양방직’서울 지하철 9호선 김포공항역에서 김포골드라인으로 갈아타고 구래역에서 내려 800번 버스로 한 시간이 채 안 돼 닿는 강화터미널의 평일 인상은 늘 그렇다. 터미널을 빠져나오면 보도블록
“우리 하청노동자는 직영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는데도 근속 5년이 넘도록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일체의 상여금‧수당도 없었습니다. 설‧추석 때 명절 보너스도 직영은 통상임금의 50%를 받지만, 하청은 근속연수에 따라 50만 원 미만으로 차등 지급받았어요. 직영노동자가 휴가 기간이라 일거리가 없으면 하청노동자는 무급 휴업을 가야 했고요. 심지어 현장에서 위험한 석면해체 작업을 할 때 직영은 휴업하고, 하청이 전부 떠맡아 일하기도 했습니다.” 현대건설기계 사내 하청업체인 서진이엔지에서 용접일을 하다 지난달 24일 사측의 폐업으로
빼앗긴 땅이 돌아왔다. 누구나 마음대로 누리는 공원으로.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부산‘시민’공원일까? 부산광역시 진구 부전동(옛 범전리) 일대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1910년 일본 수중에 들어갔다가, 광복 후에는 미군 부대에 수용됐다. 뺏긴 땅은 100년만인 2010년 1월 시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2014년 5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시민’ 두 글자를 이름에 새겨 넣은 것은 다시는 이 땅을 남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다. 부산 지하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똥’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본다. 한 음절 안에 똥이 만들어지고 배설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치경 파열음 ‘ㄸ’과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발음하는 ‘ㅗ’. 연구개에서 공기의 흐름을 차단해 만드는 받침 ‘ㅇ’까지. 입의 가장 앞부분에서 이(齒) 사이를 경쾌하게 때리고, 동그란 동굴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가장 여린 부분에서 파열하는 모습이 꼭 똥이 생겨나고 배출되는 것만 같다. 스스로를 ‘기똥차게’ 나타내는 똥은 그야말로 똥 취급을 받는다. 똥차, 똥개, 똥물, 똥걸레…. 똥이 접두사로 붙으면 그 단어는 놀림말이 되거나, 낮잡아 이르거나,
농사지어 10남매를 길러낸 할머니는 내게 시골에 내려와 농사짓고 살라 했다. 요즘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밥을 굶진 않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아무리 취업이 어렵대도 시골에 내려와 산다는 건 달갑지 않았다.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거의 절반에 이르고 농가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가의 미래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농’(農)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미국과 유럽 등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국가에서 발생한 식료품 사재기 현상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9인 이하 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ㄱ요양원에 사는 김광수(가명·81) 씨는 작년 7월 30일 아픈 곳도 없는데 ‘병원에 입원하라’는 요양원장의 지시에 따라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병원에 들어가서도 특별한 처치나 치료도 없이 병실에서 열흘을 지내고 퇴원해서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요양원으로 돌아와서 보니 못 보던 노인이 새로 들어와 있어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더니 자신이 입원하면서 생긴 빈자리에 들어온 특례입원자라고 했다. 노인복지법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제46조는 ‘수급자(요양원 입
“한국의 농촌이나 농업 또는 농민이 당면한 위기들, 즉 농의 위기는 먹거리 위기와 연결돼 있고 그 위기의 연결고리가 대안의 연결 고리라고 생각해요.“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의 위기는 먹거리의 위기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라고 지적하며 ‘한국의 먹거리 위기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두 번째 특강을 진행했다. 설탕 소비 증가···가공식품 중심으로 변한 우리 식탁 시대가 흐르면서 한국인의 식품 소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목할 것은 설탕 소비 증가이다. 1965년에는 1인당 평균 1.3kg의 설탕을 소비했지
“우리나라 대학들은 지금까지 수요자인 학생이 교육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높은 등록금을 정당화해 왔습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하며 강의의 질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당연히 대학이 학생들에게 보상을 해야 합니다.”지난 5월부터 대학등록금 반환운동을 펼쳐온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의 권연수(24·이화여대) 활동가는 6월 10일 <단비뉴스> 이메일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로 부실해진 대학교육은 ‘부당이득’ ‘불완전이행’ ‘학습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등록금 일
"도시 중심, 산업 중심의 발전전략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온 국민이 일종의 발전 드라이브와 기획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했고 때로는 강요당했고 설득당하면서 달려온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발전, 지속가능성 그리고 개인·조직 차원의 행복 등에 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죠."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업구조 변화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농업·농촌·농민의 지속가능성이 한국사회 지속가능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1592년 5월 23일, 해 질 무렵, 부산 황령산 봉수대 봉수군 배돌이는 다급하게 산꼭대기로 뛰어 올라갔다. 바다를 내려다보니 적선들이 부산포를 향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 1만8700명이 배 7백 척에 나눠 타고 부산포로 쳐들어온 것, 즉 7년을 끈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임진왜란 첫 보고 올린 황령산 봉수대봉수군 배돌이는 바로 봉수대로 올라가 다섯 연대(煙臺) 중 네 곳에 불을 지펴 연기를 피웠다. 적이 침입하면 네 개의 연기나 횃불을 올리게 돼
국도변에 찰옥수수를 파는 노점상들이 등장한 걸 보면 할머니와 함께 쌓은 추억이 떠오른다. 평생을 충청도에서 산 할머니는 옥수수를 ‘옥수꾸’라 불렀다. 평생 옥수꾸 농사를 지어 아들 다섯을 다 키워냈다는 게 할머니의 자부심이었다. 시골 집에 손주들이 모이면 삶은 옥수꾸를 한 쟁반 쌓아놓고 수십번도 넘게 한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처음처럼 하곤 했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지겹도록 먹은 옥수꾸가 물리지도 않는지, 아버지와 삼촌들은 어릴 적 먹을 때보다는 맛이 덜하다고 투덜대면서도 알알이 꽉 찬 하모니카를 불었다.한여름 더위를 고소하게
오늘날 사람들은 서울의 지리를 대개 한강을 경계 삼아 강북과 강남으로 구분한다. ‘강남불패’의 부동산 신화가 지역 구분에도 기여한 듯하다. 서울은 본래 내사산에 둘러싸인 분지에 가까웠다. 김정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수선전도>를 보면, 한양 도성을 중앙에 두고 사방에 내사산인 북악산∙타락산∙목멱산(남산)∙인왕산을 두르고 있다.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조선 왕조’를 개창한 뒤 계룡산과 무악을 거쳐 마침내 도읍지로 결정한 곳이 한양이다. 왕권의 기틀을 닦고자 태조는 곧장 축성에 나섰다. 태조 5년인 1396년, 1~2월 두 달 동안
우리나라 동(洞) 이름에는 교동(校洞)이 유독 많다. 강릉 경주 공주 김제 김천 나주 대구 밀양 삼척 속초 양산 여주 제천 춘천 등 유서 깊은 동네에는 대개 교동이 있다. 교동은 향교(鄕校)가 있는 동네라는 뜻인데, ‘향교마을’ ‘교촌’(校村) ‘교리’(校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향교가 있던 마을에 붙여진 또 하나 이름은 ‘명륜동(明倫洞)’이다. 교동만큼 많지 않지만 명륜동이 있는 곳도 서울 부산 안성 안동 원주 목포 등 6곳이나 된다. 명륜동은 ‘명륜당(明倫堂)’에서 따온 이름이다. 국가가 유교 교육을 위해 서울에 성균관, 지
지난해 여름, 엄마가 아팠다. 내가 엄마를 아프게 한 거 같아 죄책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엄마 곁에서 간호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내 일상은 무너져갔지만 내 삶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고 엄마의 병환이 회복되면서 차츰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전히 일상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후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명예와 돈 등 사회적 성공보다 행복과 건강, 일상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정의, 자유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을 자주 입에 담던 예전과 다르게 구체적인 언어로 내 생각과 삶을 표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