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㉑ 포항 동빈내항 운하
우리나라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신흥도시들이 많다. 주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펴면서 조성한 대규모 공단이나 공업도시들이 그렇다. 동해안 벨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울산과 포항이 자그마한 어촌에서 대규모 공업도시로 변천한 도시들이다. 그중 포항은 작은 어촌에서 세계 5위 규모 제철소와 인구 50만 도시로 변모한 만큼이나 그 땅의 역사도 심한 변천과 굴곡을 겪었다.
지금 포항은 형산강을 가운데 두고 그 위쪽으로 형성된 상업∙행정 중심지와 그 아래쪽으로 조성된 제철단지 등 크게 두 덩어리로 이뤄졌다. 그중 상업∙행정 중심지의 동네에는 특이하게도 모두 섬 이름이 들어가 있다. 외지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죽도시장이 있는 죽도동, 해도동, 송도동이 있고, 상대동도 원래는 상도동과 대도동이 통합된 곳이다.
다섯 개 섬을 매립한 포항 중심가
조선시대인 1872년에 해안지역 방어를 위해 작성한 ‘포항진지도(浦項鎭地圖)’에는 지금 포항 중심가가 다섯 개 섬으로 그려져 있다.
형산강 하구 삼각주에 모래 언덕으로 돼 있던 섬들은 상도, 하도, 분도, 죽도, 해도로 표기돼 있었다. 조선 초기까지는 경계가 뚜렷한 섬들이 1935년 형산강 제방공사 이후 섬들이 있던 지역은 대부분 시가지로 매립됐고, 지금 죽도동, 해도동, 송도동, 상도동, 대도동 등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동빈내항을 중심으로 작은 어항과 배후 농업지역으로 이뤄져 있던 포항은 1960년대 중후반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이 들어서면서 ‘벽해’(碧海)가 ‘철전’(鐵田)으로 천지개벽을 했다. 형산강 남쪽 바닷가에 2,080만㎡(630만평)의 엄청난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포항 중심가를 가로 질러 동빈내항으로 들어가 바다로 빠져나가던 형산강 물길도 바뀌었다. 포항제철소를 건설하면서 형산강 물줄기를 직선화해 바로 바다로 연결해 버리고 기존 물길은 메꾸어 상업지역으로 만들었다.
제철소 건설하며 형산강 메꿔…오염 심화
물길을 강제로 바꾸면서 동빈내항의 역할도 어선이나 공산품 수송 선박이 머무는 작은 항만이 됐다. 동빈내항으로 흘러 들어오던 형산강 물줄기가 차단되면서 환경오염도 심해졌다. 물길이 막힌 뒤 송도동에 있던 송도해수욕장은 주변 개발 등으로 모래가 휩쓸려 나가고 오염이 심해져 2007년에 폐장됐다. 포항시는 지난 2009년 연안정비기본계획에 송도해수욕장을 포함시켜 2021년 6월까지 모래를 쏟아 부어 해수욕장을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형산강 물길 차단으로 환경오염이 갈수록 심해지고 시민들 항의가 잇따르자 포항시는 영일만 오염해역 준설 등으로 대처해 오다 그것으로는 근본처방이 되지 않는다는 여론에 따라 본격적인 물길 복원에 나섰다. 포항시는 1,800억원을 들여 2011년 5월 운하 주변 주거지역을 철거하고, 2012년 5월 공사에 들어가 2014년 1월 형산강 입구에서 송도교까지 길이 1.3km 폭은 15m~26m, 수심 1.74m 규모 운하를 개통했다.
죽도시장에서 옛 형산강 물길 따라 송도해수욕장까지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입구 맞은편 정류장에서 207번 버스를 타고 7정거장을 지나 죽도시장 정류장에서 내리면 시장 입구가 보인다. 주부들이 장을 보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이고, 호떡가게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가장 큰 재래시장인 죽도시장을 구경하고 시장 뒤편에 있는 어시장으로 건너가 200여개가 넘는 회집 중 어느 곳이든 들어가면 겨울철 별미인 포항 특산품 과메기를 즐길 수 있다.
북적이는 어시장을 벗어날 때쯤 바다내음이 진하게 코끝을 스친다. 동빈내항은 신라 시대 초기부터 고기잡이배가 정박하던 어항이다. 조선 영조 때 동빈내항에 포항창(浦項倉)이 설치되면서 곡물 저장고 구실도 했다. 이곳에서 북쪽 끝 함경도까지 가뭄이 심해지면 양곡을 실어 보내 백성들을 구휼했다. 1831년 포항창이 포항창진(浦項倉鎭)으로 승격하면서 동빈내항은 포항의 어업과 물자교역의 중심항으로 발돋움했다.
수로와 산책로가 어우러진 문화 공간
동빈내항 옆에는 포항 운하로 연결되는 해양공원과 산책로 및 수로가 있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각양각색 조형물이 보인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조성한 24개의 다양한 조형물을 보면서 걸으면 무인 스마트 도서관이 나타난다. 연중무휴 야외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산책로를 걸으며 조형물과 도서관 등을 둘러본 뒤 크루즈를 타고 운하와 동빈내항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크루즈는 포항 운하관 앞에서 출발해 포항 운하와 동빈내항을 지나 영일대 해수욕장 근처 여객선터미널을 거쳐 송도해수욕장과 형산강을 돌아 다시 포항운하관으로 돌아오는 데 40분 정도 걸린다.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운하관으로 들어서면 이곳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기록돼 있다. 운하관 4층 옥상 전망대로 올라가면 폭이 거의 500m에 이르는 형산강 하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 너머로 거대한 포스코 제철단지가 보인다. 운하관 안에는 포항의 과거와 현재가 담긴 ‘포항의 역사, 근현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1950년대 6·25전쟁 직후 폐허로 변한 시가지부터 포스코 건설 시기, 2016년 포항공대(포스텍)에 설치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볼 수 있다. 이 가속기는 물질의 움직임을 분석해 세포와 단백질 등을 분석할 수 있는 초대형 시설이다.
물길 따라 함정 위로 올라가 보니
동빈내항에서 운하의 반대 방향으로 가서 포항함 체험관도 들러 보자. 포항함은 1984년에 실전배치돼 2009년에 퇴역한 1,200톤급 전투함이다. 2010년 3월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천안함과 동일한 규모다. 퇴역 후 2010년 포항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관람할 수 있는 체험관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함정 내부까지 들어갈 수는 없지만 어뢰발사관, 엑조세 미사일 발사기, 30mm 쌍열기관포 등 해군에서 사용하는 무기들을 볼 수 있다.
어민들의 생계를 이어가던 작은 어항에서 세계적인 제철단지와 인구 50만의 도시로 변신한 포항. 이곳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동빈내항과 포항운하를 돌아보며 산업화의 빛과 그늘을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
편집: 유희태 PD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환경부, 디지털뉴스부, 시사현안팀 이동민입니다.
막 쓰지 않겠습니다. 좀 알고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