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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시민'이 식탁과 농업을 바꾼다
[지역∙농업이슈]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주제 ② 한국의 먹거리 위기와 대안
2020년 08월 28일 (금) 21:00:33 최유진 김계범 신지인 이동민 기자 gksmf2333@gmail.com

“한국의 농촌이나 농업 또는 농민이 당면한 위기들, 즉 농의 위기는 먹거리 위기와 연결돼 있고 그 위기의 연결고리가 대안의 연결 고리라고 생각해요.“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의 위기는 먹거리의 위기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라고 지적하며 ‘한국의 먹거리 위기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두 번째 특강을 진행했다. 

   
▲ 한국인의 연간 식품 소비 변화 추이 (kg/인) ⓒ 김철규

설탕 소비 증가···가공식품 중심으로 변한 우리 식탁 

시대가 흐르면서 한국인의 식품 소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목할 것은 설탕 소비 증가이다. 1965년에는 1인당 평균 1.3kg의 설탕을 소비했지만 2015년에는 22.4kg로 무려 17배 넘게 늘었다. 김 교수는 설탕을 직접 섭취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탄산음료, 두유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통해 설탕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이 우리 인체에 줄 수 있는 폐해와 건강상의 위해 요인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마트에 가도 설탕뿐 아니라 올리고당 등 당류가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찾기 어렵다. 설탕 소비량 변화는 우리나라 식품가공산업의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밥과 반찬이 식탁을 채웠지만 이제는 탄산음료를 비롯한 가공식품들이 우리 식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 1인당 연간 140kg에 이르던 쌀 소비량은 이후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59.2kg까지 감소했다. 세계화한 식량 체제 속에서 쌀 소비가 감소하고 벼농사를 짓는 농민도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화, 역사, 경제적 측면에서 쌀 중심성은 여전하다. 국제 자료를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쌀 소비량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많다. 쌀은 단순한 경제·문화적 의미의 작물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 사이 체제 경쟁의 상징과도 같다. 김일성과 박정희는 1963년과 1977년 각각 서로에게 식량 원조를 제안하면서 쌀을 두고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 지난 5월 28일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화상회의 서비스를 통해 진행된 김철규 교수(좌측 상단 노란박스) 비대면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 모습이다. ⓒ ZOOM 캡처

박정희 정부는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1965년에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하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 당시 ‘삼양라면’의 성공은 정부의 분식장려운동 덕분에 가능했다. 김 교수는 먹거리의 선택은 개인 선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부 정책이라든지 여러가지 사회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말했다. 국가주의적 관리 체제가 한국인 먹거리를 지배했고 이에 따라 쌀 소비 욕망이 분산됐다. 미국 농산물 원조로 들어온 밀은 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측면도 있었지만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에 의해 쌀보다는 밀이 적극 권유되면서 개인의 음식 선호를 변화시켰고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현대 식품은 산업적 가공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옥수수와 밀, 설탕 등으로 이루어진다. 김 교수는 현대 식품은 사람만 탈농화, 곧 농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음식도 농으로부터 멀어진다고 말했다. 옥수수, 밀, 설탕 등을 우리가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상품의 원재료, 식재료로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식품 등에 이용돼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초국적 농식품 기업에서 시작되는 기업식량체제

“이제는 사람들이 뭘 먹는가를 관리하는 것이 국가나 시민이 아니라 기업입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 시장 메커니즘이 내가 뭘 먹는지를 결정하는 거죠. 가령 돈이 많으면 값비싼 유기농, 돈이 없으면 라면이나 삼각김밥을 먹는 거죠. 시장 기제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보는 거예요.”

   
▲ 초국적 농식품 기업과 계열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 김 교수는 먹거리 유통체계가 초국적 식품 기업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 김철규

식량체제론자들은 WTO체제 출범 후 1995년 농업협정이 통과되면서 기업식량체제가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이 체제는 초국적 농식품 기업이 지배하는 시장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코카콜라나 켈로그와 같은 거대 기업들은 생수에서 즉석 요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모든 식료품을 생산에서 가공 및 유통, 국제교역, 대규모 소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개입하는 과정을 통해 먹거리 시장을 장악한다. 농민의 경제적 역할이 축소되고 정치적 입지가 약해져 농업이 생산한 가치에서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감소한다. 우리의 먹거리 소비는 농민과는 거의 무관한 시장 기제로 맺어진다. 

김 교수는 초국적 농식품 기업이 주도하는 먹거리 유통체계에 관해 소비자는 먹거리 주권의 시각과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먹거리가 가진 본질적 의미는 퇴색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만 규정된다. 사회적으로 복잡해진 식품체계에서 현대인들은 값싼 먹거리만 찾는 수동적 소비패턴으로 살아간다. 음식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음식 소비자의 소외와 객체화가 이루어진다. 결국 소비자들은 스스로 먹거리 결정권을 방기하고 먹거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먹거리 구조의 현실이다. 

먹거리 위기에 대항할 힘은 ‘사회학적 상상력’

“당신이 라면밖에 먹지 못하는 건 당신 문제야!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미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것입니다. 배곯고 있는 타인, 그 너머 먹거리 전반의 구조와 체계를 봐야 합니다. 그 능력이 바로 사회학적 상상력이죠”

사회학적 상상력은 먹거리 위기를 풀어나가는 해결책 중 하나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개인의 문제를 공공의 문제로, 공공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전환할 수 있는 사고 역량을 가리킨다. 김 교수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먹거리 문제에 대입했다. 먹거리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생산부터 유통, 소비, 폐기, 전 과정에 해당하는 생애주기를 지속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진 ‘개인’을 먹거리 시민이라 부른다. 현대 농식품 체계는 시간을 추상화(Fast Food)하고 공간을 없애며(Global Food) 관계를 배제(Market Food)한다. 먹거리를 둘러싸고 다양한 행위자들이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저 돈을 받고 사고파는 관계로 단순해졌다. 먹거리 시민은 이렇게 가려지고 배제된 속성들을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끌어내는 이를 말한다. 김 교수는 먹거리 시민이라면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지식’을 쌓고 ‘실천’을 통해 ‘연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산 소비체계를 위한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동체’가 실현한 사례 중 하나가 로컬푸드다. 식품 공급망은 기업이나 중개상들이 개입하면서 복잡해졌다. 이에 따라 식품의 안전성은 물론 지역사회가 파괴되고 경제적 독점이 일어난다. 로컬푸드는 지역 내 농식품을 이용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가시화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 실현방안으로 대형마트보다는 생활협동조합 등의 관계적 유통망을 선택하고,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도록 한다. 한마디로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몫을,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공정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로컬푸드다.

   
▲ 김철규 교수는 지난 2월 책 <음식과 사회: 사회학적으로 먹기>를 출간해 먹기와 먹거리의 사회학적 의미를 이야기했다. ⓒ 세창출판사

먹거리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고령화가 빨라지는 시대다. 이런 인구사회학적 변화와 더불어 먹거리 관련 주요 지표가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영양섭취 부족자 비율은 2013년 8.4%에서 2017년 13.4%로 나타났다. 비만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2016년 기준 약 11조5천억원이다. 식량자급율도 90년대 70%대에 이르렀지만, 2015년 들어 50%로 급감했다. 곡물자급률도 세계 평균 101.5%에 훨씬 못 미치는 23%(2015~2017년 평균치)로 조사됐다. 먹거리에도 ‘전략’이 중요한 이유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로 ‘2018년 국가 및 지역의 푸드플랜 수립’을 채택했다. 푸드플랜은 먹거리를 중심으로 환경의 지속가능성, 사회·경제적 형평성, 인권에 기반한 정의를 핵심가치로 추구한다. 

사실 김 교수는 전략 이전에 ‘좋은 음식’을 먼저 고민했다. 영국 런던, 미국 버몬트 등 해외 연구 사례를 분석했다. 건강한 음식과 문화, 공정함, 경제적 지속가능성, 친생태계,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 등이 요건이다. 특히, 스웨덴 말뫼 시는 좋은 음식을 위해 공공급식에 육류 줄이기를 실천했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국민 모두의 문제로 인식했다. 국제사회는 이미 국가와 도시 차원에서 먹거리시스템 전체 순환에 관한 푸드플랜을 추진해왔다.    

우리나라도 푸드플랜의 일환으로 서울시 등 약 50여개 지자체가 먹거리 전략을 수립하는 단계에 있다. 하지만 전략이 실천되려면 시민사회와 거버넌스를 통해야 하고,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필수다. 이에 서울시는 먹거리시민위원회를 통해 정책 기반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에 접근성을 높이고자 시민 역량을 키우는 게 하나다. 또, 공공조달체계를 확장하거나 산지 연대 강화, 먹거리 안전감시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 조성을 하고 있다. 먹거리 전략 2030의 핵심가치는 ‘건강, 보장, 상생, 공동체, 생태, 행복’이다.  

김 교수는 캠퍼스 안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생들과 ‘레알텃밭학교’ 활동을 한 것이다. 도시농업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온 학생들이 함께 했다. 씨앗들협동조합으로 거듭나면서 도시농부를 키우기 위한 사이버 강의도 진행했다. 그는 먹거리 시민을 중심으로 새로운 먹거리 체계를 만드는 일에 애쓰고 있다. 이를 ‘먹거리 정치’로 말한다. 두 가지 수준의 시민적 개임과 참여를 뜻한다. 하나는 음식을 살 때 산지와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형태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정부 농업 및 식품 정책에 개입하는 행위다. 이런 일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먹거리 체계가 마련될 수 있다.  

   
▲ 김 교수는 ‘2030 서울 먹거리 마스터 플랜’이 시민참여와 정책을 동력 삼아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을 변화시키면 핵심가치가 달성된다고 설명했다. ⓒ 김철규

[지역∙농업이슈]와 [농촌불패]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의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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