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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 ‘농촌’에서 찾자
[지역·농업이슈]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주제 ① 농업구조 변화와 농촌의 지속가능성
2020년 08월 22일 (토) 20:15:07 이정헌 신수용 김태형 이예슬 기자 93jhun@gmail.com

"도시 중심, 산업 중심의 발전전략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온 국민이 일종의 발전 드라이브와 기획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했고 때로는 강요당했고 설득당하면서 달려온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발전, 지속가능성 그리고 개인·조직 차원의 행복 등에 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죠."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업구조 변화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농업·농촌·농민의 지속가능성이 한국사회 지속가능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 김철규 교수는 지난 5월 28일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화상회의 서비스를 통해 비대면 강의를 진행했다. ⓒ ZOOM 캡처

물음표 찍힌 한국 농촌의 지속가능성

한국 농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농촌 고령화가 단적인 사례다. 통계청 '2019년 농림어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농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6.6%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유엔은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7%를 넘기면, 그 사회를 고령화 사회로 분류한다. 통계청 ‘2019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14.9%이다. 한국 농촌은 65세 인구 비중이 20%를 넘기 시작한 1999년부터 초고령 사회였다. 김 교수는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고령 인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한국 농촌 인구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졌다.

농촌의 저소득 문제도 미래를 어둡게 한다. 농촌 가계수입 전체를 말하는 ‘농가소득’은 증가했지만, 순수 농업소득과 농업보조금(쌀 변동 직불금)의 비중은 급감했다. 농사 지어서 버는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농업소득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 47%에서 2018년 31%로 감소했다. 김 교수는 “농사 지어서 4200만원 가운데 1200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한다”며 ”다른 일을 해서 농가소득을 보충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소득도 올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실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가 호당 경지면적(1.56ha∙2018년 기준)’을 미국(183ha)과 호주(800ha)와 비교하면 미래는 훨씬 더 암울해진다. 김 교수는 “세계화, 농업의 개방 같은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며 결론은 간단하다”며 “한국은 (미국과 호주에) 경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효율성과 경쟁력만으로 농촌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람직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간이란 오직 효율성과 경쟁력을 좇는 존재인지, 그게 아니면 영혼과 살아있는 육체를 가지고 먹고 일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존재인지, 근본적인 질문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농촌의 인구 고령화와 저소득 문제는 한국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 김철규

농촌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기화를 통한 이해

‘농민의 생존권’을 요구하다 세상을 떠난 두 인물이 있다. 농부 이경해 씨는 2003년 9월 4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장 밖에서 WTO의 농업 협상을 반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한국의 열악한 농업 현실 속에서 곡물 메이저 기업과 거대 농산물 수출국에게만 유리한 ‘세계 농산물 시장의 개방’을 반대해온 인물이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농민 백남기 씨도 한국 정부에 쌀 수입 중단을 요구했고, 정부 수매량 확대를 촉구했다. 이들의 죽음은 한국 농촌의 위기의식과 맞닿아 있다.

김철규 교수는 농촌의 위기를 “역사적 결과물”로 평가한다. 그는 "농업의 여러 가지 위기와 농가 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1960년대 이후에 한국의 사회 변동인 경제발전계획, 근대화 프로젝트 그리고 세계화 정책 등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시기화(Periodization)’라는 개념은 사회 변화를 시기별로 분석하는 사회학적 분석 도구다. 그는 농촌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주요 시기를 식량 원조 체제와 개발주의 농업 체제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농업 체제로 구분한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과 친일 지주들이 대부분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소작제였습니다. 그 다음에 많은 농민들은 소작인으로 있었죠. 해방이 됐을 때 민족주의가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농지를 통한 경제 체제 전환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 초∙중반까지를 ‘식량 원조 체제’라 부른다.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농지개혁과 식량원조다. 김 교수는 ‘농지개혁’을 오늘날 농가 구조가 이어져올 수 있었던 토대로 본다. 농지개혁은 이 시기에 농민들에게 경작할 땅을 나눠줬던 토지 분배 정책을 뜻한다. 지주 세력의 반발을 억누르고 분배된 토지는 소규모 가족농을 형성했고, 사유재산의 기반과 농민층의 보수적 정치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이 6~7명에 이르는데 땅은 1ha 미만이어서 가계를 꾸릴 수 없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무작정 상경’을 시작한다. 여기에 미국의 식량 원조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촌을 이탈하는 대오는 더욱 확산된다. 농촌은 축소되고 도시는 비대해진다. 이들은 산업화하는 한국 사회에 ‘노동력의 저수지’를 이루게 된다. 김 교수는 "농촌이 한국의 경제 발전과 산업화의 패러다임 속에서 일정 기능을 담당하고 재편되는 과정”이라며 “농지개혁이 제도적 토대”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 미국은 식량원조를 통해 과잉 생산된 농산물을 해소하고 제3세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안정화하면서 미국 농작물의 미래 시장을 미리 닦아 놓고자 했다. Ⓒ KBS

수출 주도의 산업화를 본격화한 ‘개발주의 농업 체제’ 시기, 박정희 정부는 그간 경시해온 농촌과 농민을 근대화와 산업화의 일원으로 포섭하는 정책을 펼친다. 근면, 자조, 협동의 3대 정신을 강조한 ‘새마을 운동’과 미국의 산업형 농업 모델을 한국 농업에 적용한 ‘녹색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4절: 우리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후렴: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새마을 노래: 박정희 작사∙작곡)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온 농민들은 ‘새마을운동’의 시작과 함께 ‘개발주의적 시민’으로 호명됐다. 김철규 교수는 “새마을운동 이면에는 ‘농민들은 게으르고 전근대적이므로 뜯어 고쳐야한다’는 관념이 있다”며 “교육이 농민들로 하여금 박정희라고 할 수 있는 나라에 충성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학계에서는 새마을운동이 1971년 4월 7대 대통령 선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표와의 경합에서 90만표 차이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세력으로서 농민의 지지를 얻어낼 방안을 고심했는데, 그게 바로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한국의 농촌에 큰 영향을 줬던 것은 사실이다. 흙 길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였고,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을 뒤집어쓰게 됐다. 농업 구조의 실질적인 개선과는 거리가 있었다.

‘녹색혁명’은 모순적인 쌀 자급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식량 자급을 주장한 박정희 체제는 실제로 미국의 식량원조와 식량 프로그램 없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식량 자급을 쌀 자급으로 등치했다”며 “쌀 소비를 억제하면서 쌀 공급을 증가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식량 원조로 시급한 식량 부족은 해결했지만, 쌀 공급이 부족해 충분한 생산량이 확보될 때까지 소비를 억제하면서 생산을 늘려야 하는 것이 쌀이었다. 한국은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도움을 받아 ‘다수확 품종(통일벼, 유신벼 등)’을 개발해 보급했다. 김 교수는 “녹색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종자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필요로 하고 농기계를 활용해야 했다”면서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현대적 농업의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 ‘통일벼’라는 다수확 품종을 보급하고 추곡수매제도를 활용해 1970년대 중반 농가소득은 잠깐이지만 증가했다. 그러나 행정체계의 부담이 크고 밥맛이 없다는 소비자의 외면으로 ‘통일벼'와 '유신벼’는 오래가지 못했다. Ⓒ 농촌진흥청

“개발주의적 농업 체제 정책은 결과적으로 보면 거대한 해체를 더 추동하거나, 별다른 해법이 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탈농은 지속됐고, 농촌 사회의 지속불가능성은 심화했다. 김 교수는 탈농과 이농 현상에 ‘이중구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중반까지는 여성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여성노동계층을 이뤘다. 각 농가의 아들은 교육 이주를 통해 도시의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됐다. 농촌에는 붙박이로 지내거나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 남성들만 남게 됐다. 지역사회로서 농촌이 재생산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 ‘신자유주의 농업 체제’는 열악한 농촌 현실을 되살리는 데 힘쓰지 않았다. 무역 자유화 논란이 거듭될수록 ‘농업 부문이 희생해야 한다’는 국익 논리가 힘을 얻었다. 김 교수는 “거대 재벌과 개발지향적 보수언론 그리고 도시의 중산층이 결합한 산업개발동맹이 형성됐다”며 “농업 부문이 전체 정책 아젠다에서 완전히 주변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체제가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이경해∙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한국 농업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재농'(再農)의 필요성을 고민하다

농가인구 구조를 보면 ‘농촌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농촌이 지속되려면 젊은 층이 필요하다. 그러나 2020년 농촌의 인구 구조를 보면 44세 이하의 연령층은 거의 없고 60대 중반과 70대가 대다수다. 김철규 교수는 “높은 연령층의 농민들은 아직 농사를 짓고 있지만, 10~20년 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농촌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큰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 농가인구 구조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농촌이 지속되는 데 필요한 젊은 층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 김철규

“농촌, 농업, 농민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합니다. (이 세 요소는) 좋은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삶과 문화의 사회적 공간을 제공합니다. 농촌에는 효율성이나 경쟁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질적인 삶과 문화가 있어요.”

농촌의 위기는 도시에 공급할 먹거리의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 농촌 사회와 한국 사회 전체를 결코 떼놓고 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는 도시와 산업 중심의 발전 속에 매몰돼 있기 때문에 농촌과 농업 농민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무겁고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하루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 연애-결혼-출산까지 포기한 3포 세대와 저출산 문제가 지속되는 사회는 한국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말했다. 도시 중심적인 개발지상주의의 폐해가 압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것을 앞서 겪어온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곧 한국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농사를 짓고 농촌과 관계를 맺는 ‘재농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지역∙농업이슈]와 [농촌불패]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의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편집 : 김현균 기자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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