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유전자 조작

▲ 이예슬 기자

국도변에 찰옥수수를 파는 노점상들이 등장한 걸 보면 할머니와 함께 쌓은 추억이 떠오른다. 평생을 충청도에서 산 할머니는 옥수수를 ‘옥수꾸’라 불렀다. 평생 옥수꾸 농사를 지어 아들 다섯을 다 키워냈다는 게 할머니의 자부심이었다. 시골 집에 손주들이 모이면 삶은 옥수꾸를 한 쟁반 쌓아놓고 수십번도 넘게 한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처음처럼 하곤 했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지겹도록 먹은 옥수꾸가 물리지도 않는지, 아버지와 삼촌들은 어릴 적 먹을 때보다는 맛이 덜하다고 투덜대면서도 알알이 꽉 찬 하모니카를 불었다.

한여름 더위를 고소하게 달래주는 옥수수. 친근한 만큼 일컫는 말도 여러 가지다. 옥수수, 옥시기, 옥수꾸, 강냉이, 강내미 등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한국전쟁 이후 식량이 부족한 시절 옥수수는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비상식량이었다. 옥수수는 벼·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이다. 벼나 밀과 달리 재배 역사가 500여 년 정도로 짧지만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매우 크다.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려 수분과 비료를 잘 흡수하고 토양 적응성이 높아 아무 데나 잘 자란다. 생장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생산성이 높은 데다, 재배 전 과정을 기계화해 적은 비용으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 옥수수는 지구의 기아 문제 해결에 많이 기여했고 유용한 작물이지만, 이제는 유전자 조작 곡물의 대표가 되어 우리 건강을 위협한다. ⓒ Pixabay

원산지인 중남미에서는 ‘옥수수 신’이 존재할 만큼 옥수수를 주요 작물로 대우한다. 옥수수는 줄기부터 수꽃까지 모든 부위가 식품, 에너지, 산업소재, 제약원료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이삭 부위를 끼니 대용이나 간식으로 먹고, 전분은 당 형태로 변환해 대부분 가공식품에 첨가물로 활용한다. 사료용으로 이삭과 줄기, 잎을 사용하고, 수염과 수술 부위 성분을 추출해 약 원료로 쓴다. 최근에는 바이오에탄올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떠오르면서 원료인 옥수수 수요가 증가했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옥수수로 만든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사용도 늘었다. 친환경 산업소재로서 가치도 높아진 것이다.

미국 환경운동가 마이클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우리 몸의 대부분은 옥수수’라고 썼다. 인간의 과도한 옥수수 의존을 경고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옥수수 수입국이다. 옥수수는 국내 곡물 수입량의 49%를 차지할 정도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작물이다. 문제는 옥수수 전체 수입량 가운데 80% 이상이 GMO, 곧 유전자변형 작물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다국적 농업생물공학 기업 몬산토는 1990년대 말 옥수수를 더 싸게 생산하려고 유전자를 조작했다. 곰팡이 유전자를 옥수수에 넣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결과는 해충의 피해가 줄어든 것이었다. 제왕나비 같은 해충이 GM 옥수수를 먹으면 성장이 억제되거나 죽는다. 하지만 나방뿐 아니라 잠자리, 개구리, 쥐 등 먹이사슬로 연결된 다른 종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값싼 옥수수 가루로 만든 액상과당은 설탕 값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대부분 청량음료와 가공음식에는 설탕 대신 액상과당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500개 상품 중 옥수수 첨가제품은 372개로, 약 74%를 차지한다. GMO 옥수수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 옥수수를 먹고 있어, 가격상승이나 유통에 문제가 생기면 고스란히 우리 생활에 부담으로 닥쳐올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악의 식량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전문가들 경고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세계 식량가격은 코로나로 급락했지만 수급 차질로 올해 안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옥수수 가격은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으며 미·중 무역분쟁, 기상이변 등 다른 변수들과 함께 시장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옥수수는 지구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이 기여했고 어느 부분 하나 버릴 것 없는 작물이지만, 이제는 유전자 조작 곡물의 대표가 되어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옥수수의 계절이다. 이번 여름 추억에도 옥수수의 고소함이 더해지겠지만, 어릴 적 할머니 품에 안겨 먹던 옥수꾸와는 다를 것이다.


[지역∙농업이슈]와 [농촌불패]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의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편집 :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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