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⑭ 국내 풍력발전 현황과 과제 (상)

2018년 5월 10일 오전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마을. 파란 하늘을 부드럽게 수놓은 새털구름 아래 하얀 풍력발전기들이 수평선을 따라 줄지어 서 있습니다. 화창한 날씨인데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 아침에 손질한 취재진의 머리는 사정없이 헝클어지고 말았습니다. 풍력발전기 날개는 덕분에 힘차게 돌았습니다. 발전기 소음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옛날엔 초가지붕이 날아갈까 봐 짚을 엮어 누름줄을 얹었다는 동네 집들이 지금은 하늘색, 벽돌색 등 깔끔한 지붕을 이고 오순도순 모여 있습니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는 115년 동안 해풍에 시달려 한쪽으로 휘었다는 팽나무가 산발한 여인네처럼 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주민 800여 명이 바람으로 연 4억 원 버는 동복리

바람이 많아 살기 힘들었던 제주 마을이 바람 덕에 돈을 벌고 있습니다. 동복리의 풍력발전기 중 15기는 지방공기업인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육상풍력단지 소속이고 나머지 1기는 마을 주민 807명이 공동으로 운영합니다. ‘풍력단지가 들어서는 지역에 주민들이 자체 운영하는 발전기를 세워 수익을 낼 수 있게 한다’는 정책에 따른 것입니다. 동복리 주민들은 마을에 광역 쓰레기매립장을 유치하는 대가로 제주시가 지원한 예산 중 48억 원을 투자해 2015년 8월부터 발전기를 가동했습니다. 동복리사무소 사무장에 따르면 2메가와트(MW) 용량의 이 발전기에서 연간 약 4억 원의 순수익이 나옵니다. 한국전력공사에 전기를 판매하는 대금과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적용대상인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에게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팔아서 얻는 수입입니다.

제주에서도 특히 바람 자원이 풍성한 구좌읍에는 동복리 외에도 ‘신재생에너지특성화마을’이 세 곳 더 있습니다. 2013년 3월 국내 최초로 마을 풍력발전기를 가동한 행원리는 연 8천만 원, 2015년 1월부터 가동한 월정리는 연 1억 원 내외의 수입을 올립니다. 2017년 10월 지정된 북촌리는 경관심의를 받았습니다. 마을 단위 풍력발전으로 주민소득을 창출하는 정책은 제주도가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제주도청 문용혁 과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민공동체가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하게 돼 건실한 지역사회가 조성되고, 풍력자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동복리 주민 김진현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바람이 많이 불어요. 풍력발전은 환경오염이 적고 자연 그대로의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좋죠.”

일본에 살다 귀국해 북촌리에서 라면가게를 하는 강창구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주도는 바람이 풍부하기 때문에 풍력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민가 근처에만 짓지 않는다면 소음피해도 별로 없을 거예요”

목장 부지 빌려주고 연 10억 원 버는 가시리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는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국산화 풍력발전단지와 에스케이디앤디(SK D&D)가 운영하는 풍력발전단지가 있습니다. 총 23대의 발전기는 마을 주거지에서 약 4킬로미터(km) 떨어져 있어 소음피해가 없습니다. 가시리 협업목장조합은 목장 부지 일부를 발전사업자에게 빌려주고 연 9~10억 원의 지원금을 받습니다. 이 돈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조합원 복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정 기간 마을에 거주한 주민이 가입대상인데, 2018년 당시 조합원이 250여 명이었습니다. 가시리마을회는 전체 555가구에 각각 한 달 2만 원을 전기요금으로, 1만 원을 TV시청료로 지원했습니다.

오창홍 가시리 협업목장조합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목표로 조합원들의 복지를 하고 있습니다”

주민 김은두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기료와 TV시청료를 지원해주고 (지원금으로) 노인회관이나 공연장 같은 마을 시설들이 새로 생기니 좋습니다.”

목장 부지에 풍력·태양광 시설이 들어섰지만 소와 말 수백 마리씩을 방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조합 측이 밝혔습니다.

동복리, 가시리 등 지역주민들이 이렇게 풍력발전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바람을 공공자원으로 인식하는 ‘공풍화(共風化)’ 개념이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제주특별법)에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개발과 보존 원칙을 담은 이 법에서 제주도는 풍력사업 도입단계부터 사업 주체가 개발 이익을 주민과 공유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이런 법제화 배경에는 환경운동이 있었습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등이 이끈 ‘풍력자원공유화운동’은 ‘제주의 바람은 주민 모두의 것이니 풍력발전으로 얻는 수익도 주민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풍력자원 공유화 운동과 에너지 정책 자율권

그 결과 김태환 도지사 시절인 2006년 제정된 제주특별법이 2011년 개정되면서 ‘풍력자원을 제주도의 공공자원으로 관리한다’는 조항이 명시됐습니다. 제주가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환하면서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자율권을 갖게 된 것도 제도 정비에 도움이 됐습니다. 제주도는 풍력발전을 추진하면서 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주민 피해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경관심의는 풍력단지가 제주의 자연유산인 오름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높이에 따라 경관이 침해되진 않는지 등을 심사합니다.

제주도는 2017년부터 대규모 발전사업자가 이익의 일부를 내놓는 ‘풍력자원 공유화기금’도 조성했습니다. 기부금은 당기 순이익의 17.5퍼센트(%) 수준인데, 제주도의 10개 풍력 지구 중 7개 지구사업자들이 약정을 체결해 기부금을 내고 있습니다. 제주에너지공사, SK D&D, 탐라해상풍력, 김녕풍력발전, 한국중부발전 등이 주요 사업자입니다. 제주도청 정창보 팀장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공유화기금은 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 취약계층 에너지 지원, 재생에너지 교육사업 등에 쓰이죠.”

2006년 정전사태 후 ‘에너지 자립’에 박차

제주도가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 데는 중대한 계기가 있습니다. 2006년 4월 1일, 제주도 전체가 무려 2시간 30분 동안 블랙아웃(동시정전)돼 큰 혼란을 빚었던 일입니다. 전남 진도와 해남에서 제주로 전력을 보내는 해저 초고압직류송전망(HVDC)이 지나가던 배에 손상돼 전기가 끊긴 것입니다. 제주도 자체 전기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대규모 정전을 막을 수 없었고 감귤 하우스 농사 등에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은 ‘육지에 의존하는 전기 수급 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각성에 힘을 실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제주의 바람을 전기 생산에 활용하자는 논의와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풍력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자립을 이루자는 합의가 어렵지 않게 도출됐습니다.

제주도청에 따르면 2018년 2월 제주도는 20개 단지에서 풍력발전기 117기를 가동, 약 266MW의 설비용량을 확보했습니다. 이어 2018년 추진한 남원읍 수망리 등 9개소 풍력단지가 완공돼 149기, 약 638MW의 설비용량을 갖췄습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7년 당시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전력은 제주도 전체 사용량 중 13.2%로 2011년의 5%에서 8.2%포인트 늘었습니다. 전력생산 설비 규모를 볼 때 아직은 기력(중유)이 35만킬로와트(kW)로 1위지만, 풍력 설비용량이 26만9000kW로 2위, 태양광이 12만kW로 3위 등 재생에너지가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에너지자립도를 높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2012년 우근민 제주도지사 시절 ‘탄소 없는 섬 제주 2030’ 계획을 공표했습니다. 2030년까지 풍력·태양광·연료전지·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만으로 도내의 전기수요를 100% 충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주도 안내책자 <탄소 없는 섬 제주>에 따르면 제주는 이렇게 에너지구조를 전환하는 동시에 모든 자동차를 전기차로 대체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또 풍력발전기와 전기차 충전기를 연계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상용화하고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를 확충해 명실상부한 ‘에너지 자립섬’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고립된 섬’, 재생에너지로 자립 이뤄야

제주도 풍력공유화운동을 이끈 주역 중의 하나인 제주특별자치도 제6차 지역에너지계획 수립 연구책임자 김동주 박사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제주도처럼 우리나라 전체도 풍력, 태양광 등으로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전환을 하루빨리 이뤄야 합니다.”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를 쓴 그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태풍으로 유류와 가스 공급이 끊기면 택시가 멈춰야 할 만큼 제주는 고립된 에너지섬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나라 전체도 위로 북한에 막혀있고 아래로 바다에 막힌 에너지섬이죠. 바람이 전국에서 가장 좋은 제주가 풍력발전에 집중한 것처럼, 우리나라 전체도 가까이에서 자체적인 에너지를 개발하는 일이 아주 중요해요.”

김 박사는 제주도의 풍력발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궁극적인 에너지 ‘대’전환을 위해서는 시민참여형으로 소규모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해야 해요. 동복리의 마을풍력발전소는 제도적으로 기존 풍력단지 인근 마을에만 허가를 내준 사례이기 때문에 에너지자립모델의 보편적이고 완전한 모델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현재 제주도는 일반 마을들도 풍력발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주도민 전체가 참여하는 주민 참여형 풍력발전으로 확장될 수 있어요.”

김 박사는 그 과정에서 자금 조달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업 풍력발전 사업자들도 대규모 단지를 지을 때 금융권으로부터 PF를 받는 것처럼 마을 풍력발전소도 금융권에서 발전기 운영수익을 담보로 장기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막대한 재원을 한 번에 조달하기 어려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경제적 유인’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만 시민 주도형 재생에너지 발전이 자유롭게 확산할 수 있습니다.”

출연: 양수호 유지인 최은솔 기자

영상편집: 유지인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⑧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유럽 최강 경제

⑨ 태양광·풍력으로 프랑스에 전기 수출

⑩ 석유파동 후 세계 1위 풍력기업 탄생

⑪ 거리엔 자전거 물결, 국민 건강은 '쑥쑥'

⑫ 태양열과 소금으로 밤에도 전기 생산

⑬ 금융위기에 흔들린 재생에너지 강국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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