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마지막 비상구 ⑫ 스페인의 경험 (상)

유럽의 남서쪽, 북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에 자리한 스페인은 1년에 300일 이상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입니다. 연평균 기온은 20도(℃), 여름에는 40도를 훌쩍 넘기는 지역도 있습니다. 건조해서 목초가 잘 자라지 않는 고원지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바람도 많이 불어 ‘태양과 바람의 나라’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단순히 이런 기후조건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닙니다.

낮에 남아도는 햇볕에너지를 용융염에 저장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는 ‘집시들의 춤과 노래’에 뿌리를 둔 플라멩코의 발상지입니다. 이곳에는 일찌감치 태양에너지 투자에 나선 스페인의 상징적 시설들이 모여 있습니다.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시에서 48킬로미터(km)쯤 떨어진 안다솔 태양열발전소가 그중 하나입니다.

축구경기장 210개 넓이에 태양열 패널 60만 개를 갖춘 이 발전소는 지난 2009년 완공됐습니다. 발전소 뒤편 빈 땅에는 수십 대의 풍력발전기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약 150메가와트(MW) 설비 규모로 전력을 생산하며 무려 15만 가구의 전기수요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특히 낮에 남아도는 태양열 에너지를 소금 저장고에 열에너지 형태로 모아 뒀다가 햇볕이 없는 밤에 전기를 만드는 ‘축열식 발전소’로 유명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습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사용해 열펌프를 작동시킵니다. 열펌프가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 2가지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뜨거운 공기는 녹은 소금(용융염)으로 가득 찬 탱크로 보내져 소금을 뜨겁게 달굽니다. 소금은 녹는 점이 높아서 많은 열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차가운 공기는 냉각제를 채운 탱크로 보내져 냉각제 온도를 낮게 유지합니다. 

이렇게 낮 동안 생산한 에너지를 열에너지 형태로 저장해둔 뒤, 밤이 되면 다시 전기 생산을 시작합니다. 각각의 탱크에서 뜨겁고 찬 공기를 방출시키면 두 공기가 충돌하면서 터빈을 돌리고, 전기가 만들어지는 방식입니다. 에이씨에스(ACS)그룹 등 스페인과 독일에 있는 회사 4곳이 합작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 태양열 타워 상용화, 미주·중동에도 진출

안다솔에서 서쪽으로 350여km를 달리면 산루카르 라 마요르시의 태양열 탑, 솔라타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2007년 아벵고아가 건설한 산루카르 발전소의 피에스텐(PS10)과 피에스투엔티(PS20)입니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솔라타워들입니다. 햇빛을 모으는 거대한 타워의 높이는 피에스텐이 115미터(m), 피에스투엔티는 165m나 됩니다.

이 두 개 타워를 둘러싼 높이 10m의 반사판 1900여 개는 낮 동안 햇빛을 모아 일제히 탑 꼭대기로 쏘아 줍니다. 그러면 유리판이 열을 모아 물이나 기름을 끓이고, 이때 발생하는 증기압력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듭니다. 반사거울은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회사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이 발전소는 낮에 모아둔 수증기를 압축해 탱크에 저장합니다. 밤에는 탱크 밸브를 열어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듭니다. 두 솔라타워를 포함한 산루카르 발전소의 설비용량은 300메가와트로, 세비야의 18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합니다. 산루카르 발전소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아벵고아는 미국의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멕시코 등에 차례로 진출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덕분에 스페인의 태양에너지 설비량도 세계 2위를 기록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태양열뿐 아니라 풍력 회사들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에 힘입어 성장했습니다. 2008년 무렵에는 풍력 관련 기업이 600여 개가 될 정도로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2009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스페인 마드리드 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은 2008년 기준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계 3위의 풍력발전 설비량을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스페인의 풍력발전 설비량은 원전 16기 설비량과 맞먹습니다. 풍력발전 설비가 가장 많이 들어선 곳은 남부에 있는 카스티야-라만차 자치주로 2009년 누적 설치량이 3400MW, 풍력단지 수는 107개였습니다. 2014년에는 풍력 발전이 전체 전기생산량의 21%로 원전 20%를 앞서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태양‧풍력 산업의 추락,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세계 정상에서 경쟁하던 스페인의 태양에너지와 풍력산업이 요즘은 영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 국제에너지기구(IEA), 그리고 세계풍력협회(GWEC) 등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스페인의 태양광 설비용량은 세계 10위, 풍력은 5위로 떨어졌습니다.

스페인의 태양에너지와 풍력산업을 이끌던 대기업도 줄줄이 비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 80개국에 직원 2만 4000여 명을 두고 한국 돈으로 매년 9조 원의 매출을 올리던 아벵고아는 2015년 11월 일시적인 자금부족으로 위기를 맞아 스페인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아벵고아가 국제유가 하락과 정부 인센티브 삭감에 타격을 입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행히 아벵고아는 2017년 3월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 중입니다. 류재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마드리드 무역관장은 2018년 10월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큰 회사라 살리려는 정부 의지가 강했지만, 법정관리 중에 직원이 1만 2000여 명으로 줄어드는 등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한때 풍력발전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퉜던 악시오나도 지금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풍력터빈 제조사로 2015년 세계 5위를 기록했던 가메사는 경영난 끝에 2017년 지분 59%를 독일 지멘스에 넘기고 ‘지멘스-가메사’로 합병됐습니다. 스페인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스페인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출연: 김지윤 박성동 나종인 기자
영상편집: 김지윤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⑧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유럽 최강 경제

⑨ 태양광·풍력으로 프랑스에 전기 수출

⑩ 석유파동 후 세계 1위 풍력기업 탄생

거리엔 자전거 물결, 국민 건강은 '쑥쑥'

편집: 현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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