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마지막 비상구 ⑦ 독일의 경험 (상)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Feldheim)은 주민 수가 130명 남짓인 농촌입니다. 통일 전 동독 지역이었던 이 마을은 수도 베를린에서 자동차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시골인데도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이 꽤 찾아옵니다. 펠트하임은 ‘에너지전환 모범마을’로, 주민들이 쓰는 모든 전기와 난방을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연료와 같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 때문입니다.

돼지와 양, 옥수수와 밀을 키워 생계를 꾸려온 이 마을에는 현재 55개의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연간 250기가와트시(GWh)만큼 전기를 만듭니다. 옛 군용부지에 조성한 태양광단지에서는 전력을 연간 2.75GWh 생산합니다. 또 농가의 돼지분뇨에서 추출한 바이오가스로 열병합발전기(CHP)를 돌려서 연간 전기 4.15GWh를 얻습니다. 1GWh는 4인 가족 기준으로 300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으로, 이 마을에서 생산한 전기는 1퍼센트(%) 정도만 주민들이 쓰고 나머지는 판매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또 폐목재에서 나온 우드칩을 태우는 바이오매스 시설과 열병합발전소에서 얻은 열에너지로 난방과 온수를 씁니다.

쓰고 남는 전기 팔아 농가소득 보전

주민들이 쓰고 남은 전기는 ‘에네르기크엘러’(Energiequelle)라는 지역에너지회사를 거쳐 독일 내 다른 도시에 판매됩니다. 지역에너지회사는 판매 수익을 마을 주민과 나눕니다. 주민들은 풍력·태양광 발전시설 부지 임대료도 받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이 얻는 수익은 2014년 기준 평균적인 독일 가정이 내는 연간 전력요금 978유로, 한국 돈 약 128만 원의 절반 수준입니다.

일부 주민은 지역에너지 회사에 고용돼 태양광설비 점검 같은 일을 맡고 있습니다. 옛 동독 지역은 통일 후 한때 30%까지 치솟은 실업률로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일자리 사정이 나쁜 편이지만, 이 마을은 펠트하임 재생에너지사업 덕에 실업률 0%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지난 1994년 주민과 지자체, 에너지회사, 중앙정부, 그리고 유럽연합(EU)이 자금을 분담해서 시작했습니다.

2018년 7월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i) 초청으로 펠트하임을 방문했습니다. 권 부소장은 2018년 8월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마을에서 쓰는 에너지를 모두 충당하고, 이익까지 얻을 수 있으니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더라고요.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정부의 꾸준한 정책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미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어요.”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2009년 설립된 신재생에너지 전문 비영리 연구기관입니다.

30여 년 꾸준히 추진해 온 '에네르기벤데'

독일에는 펠트하임처럼 ‘에너지 자립’과 ‘소득 보전’ ‘일자리 창출’에 두루 성공한 마을의 사례가 많습니다. 이런 마을과 도시들이 모여 독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이루고 있습니다. 석탄과 석유를 줄이는 ‘탈화석연료’,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산업경쟁력도 세계 최강수준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독일은 각국의 부러움을 삽니다.

독일은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를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는 탈핵일정을 2011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2050년까지 생산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원에서 얻는다는 목표로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오는 2030년까지 1990년도 탄소배출량 대비 55%를 감축하기로 하며 기후변화 대응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그러면서도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자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강국으로서 위상을 더욱 탄탄히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탈원전을 확정한 2011년 이후 6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47%를 기록해 EU 평균 1.38%를 웃도는 것으로 세계은행 통계자료가 밝혔습니다.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독일 에너지전환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일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전력의 80%를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얻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세계적 석유파동으로 충격을 받은 후 ‘에너지원 다양화’와 ‘에너지 효율화’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발전이 부상했지만 방사능의 위험성과 핵산업의 비민주적 의사결정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격렬한 반핵운동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지자 ‘원전 역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체르노빌 사고 후 독일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기후변화의 위협이 세계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규제하고 재생에너지에는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주된 방향을 잡았습니다. 독일 정부는 1991년 세계 최초로 재생에너지 판매가격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습니다. 또 화석연료·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는 규제를 만들었습니다.

1998년에는 전력시장이 자유화돼 발전과 송·배전 업무를 분리, 다시 말해 생산과 판매를 나눠 민간에 개방했습니다.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 판매해 공급하는 과정을 특정 회사가 독점하지 않도록 해 전력 도·소매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했다는 뜻입니다. 같은 해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회민주당(SPD)-녹색당 연정은 1999년 화석연료로 발전한 전기와 휘발유에 환경세를 도입했고, 2000년에는 기념비적인 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했습니다. 재생에너지법은 재생에너지 생산자가 향후 20년간 킬로와트시(kWh)당 고정된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관련 산업 발전에 기폭제가 됐습니다.

원전의 경우 사민당-녹색당 연정이 ‘2022년 무렵까지 100% 탈원전에 도달한다’는 합의를 이뤘지만, 2005년 사민당과 대연정을 통해 집권한 기독민주당(CDU)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0년 자민당(FDP)으로 연정 파트너를 바꾼 뒤 이 기조가 흔들렸습니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탈원전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원전 가동기간을 2036년까지 연장하는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1년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습니다. 독일 정부는 정계와 학계·산업계·종교계·시민사회 대표로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끝장토론’을 거쳐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확정했습니다. 2011년 당시 남아 있던 원자로 17기 중 10기가 2017년까지 폐쇄됐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을 기준으로 원자로는 단 3기만 남았으며, 이마저도 2022년 말에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독일 정부는 밝혔습니다.

'프로슈머'가 이끄는 에너지 민주주의

독일이 ‘탈화석연료’와 ‘탈원전’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게 된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지역자치와 민주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분산 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석연료나 원자력 같이 대규모 발전소를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보다 소규모 분산배치가 쉬운 재생에너지 시설의 특성상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던 에너지 생산과 공급 시스템이 지역 단위로 원활하게 나누어졌습니다. 독일 재생에너지기구(AEE)는 2001년 66개에 불과하던 지역에너지협동조합이 2015년 1000개로 급증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독일 전체 재생에너지 시설 중 42%가 지역에너지협동조합이나 농민, 일반가정 같은 시민이 소유했습니다. 독일의 4대 메이저 발전회사인 이온(E.ON), 에흐베에(RWE), 바텐팔(Vattenfall), 엔베베(EnBW)가 소유한 시설은 5.4%에 불과하고, 지역 군소회사 등으로 범위를 넓혀도 기업 소유 발전소 비중은 15.7%에 그칩니다.

자기가 사는 곳의 에너지 시설을 소유한 시민들은 에너지 사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역 여건에 맞는 시스템을 능동적으로 설계해 통제하고, 판매이익을 나눕니다. 일반 시민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에너지 프로슈머’가 되고,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과 생산해 전송하는 지역이 분리되지 않는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비민주주의’와 대조됩니다. 대규모 원전이 들어선 바닷가 마을 주민들이 생태환경 파괴와 방사능오염 같은 피해를 겪고, 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산골마을 같은 곳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갈등을 빚었습니다.

지역에서 쓰는 전력을 자급해 수익을 내는 분산형 시스템은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 기반이기도 합니다. 2016년 독일재생에너지기구(AEE) 조사를 보면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지지도는 93%에 달합니다. 권필석 부소장은 말합니다. 

"독일에서 풍력과 태양광 같은 발전시설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은 이유도 재생에너지의 경제적 이익을 (프로슈머인 주민들이) 함께 누리기 때문입니다."

205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전체 발전량의 80%

독일 정부는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 중 33.9%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 35%, 2030년 50%를 넘어 2050년에는 8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2018년 7월 12일 독일에너지·물산업협회(BDEW)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18년 상반기 수력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이미 36.3%까지 늘어나 35.1%를 차지한 석탄발전을 추월했습니다. 1990년 전체 재생에너지 전력생산 비중이 3.6%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세부 에너지원별로 보면 풍력이 17.6%, 태양광 7.3%, 바이오가스 7.1% 등을 기록했습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탈원전 정책이 확정된 2011년 당시 17.6%에서 7년 만에 11.3%로 줄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독일은 전체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을 43.2%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추진된 에너지전환정책의 결과, 독일은 2016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7%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5월 중순 독일 정부는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65%, 2040년까지 88%로 강화하고, 2045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독일 재생에너지산업은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일자리 창출에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 통계를 보면, 2015년 기준 재생에너지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약 33만 명으로, 2004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출연: 남윤희 정승현 기자
영상편집: 정승현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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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편집: 심미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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