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마지막 비상구 ⑩ 덴마크의 경험 (상)

유럽 대륙에서 북부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북해 쪽으로 툭 튀어나온 반도와 몇 개의 큰 섬으로 이뤄진 해양국가 덴마크. 이 나라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약 120킬로미터(km), 차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칼룬버그항에 도착한 뒤 다시 카페리로 1시간 30분을 가면 삼쇠(Samsø)섬이 나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 섬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땅 면적이 114제곱킬로미터(㎢), 한국 강화도의 3분의 1 정도 되는 삼쇠섬엔 약 4000명이 삽니다. 이 작은 섬이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곳에서 쓰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원에서 얻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섬 바깥에서 전기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 ‘100% 자립’을 2006년 세계 최초로 달성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100% 전력 자립’ 기적의 섬 삼쇠

이 섬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삼쇠에너지아카데미(Samsø Energy Academy)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기적’은 1997년에 시작됐습니다. 덴마크 정부의 ‘재생에너지 자립 프로젝트’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당시 덴마크 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과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의 청사진을 담은 ‘에너지21’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이 목표를 구체화하기 위한 시범지역으로 5개 후보지와 경쟁을 벌인 끝에 삼쇠가 선정됐습니다. 목표는 10년 안에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삼쇠는 풍력을 선택했습니다. 섬 전역과 인근 바다에 하루 종일 부는 바람을 활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1메가와트(MW)급 육상 풍력터빈 11기를 세워 22개 마을에 전기를 공급했습니다. 2002년에는 2.3MW급 해상 풍력터빈 10기를 추가로 설치해 전기자동차와 버스, 농업용 트랙터 등에 활용했습니다. 2018년 기준 삼쇠섬의 차량 중 절반가량이 전기차고, 모든 전기는 풍력발전기에서 공급됩니다.

삼쇠처럼 전력의 100%까지는 아니어도 풍력혁명은 덴마크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덴마크에너지청이 펴낸 <에너지 통계 2016>에 따르면 1980년 단 68기였던 덴마크의 풍력터빈은 10년 후인 1990년 약 40배인 2664기로 늘었습니다. 이후 2016년에는 육상과 해상을 모두 합쳐 6119기가 됐습니다. 4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약 90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이 터빈들의 발전용량은 5245MW로 덴마크 전체 전력공급의 37.5%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전력 설비는 열병합발전 34%, 태양열 5.9%, 수력 0.06%, 소규모발전 등 기타가 22.5%를 차지했습니다. 또 실제 전력소비량에서 풍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기준 43%에 이르렀습니다.

풍차 발전 전통 살려 ‘탈석유’ 돌파구로

“덴마크의 풍력은 주로 지역 개척자들에 의해 개발됐습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덴마크 정부는 석유를 대신할 모든 종류의 대체에너지 자원을 장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풍력이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후 구체적인 풍력 장려 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에너지정책 전문가인 클라우스 스구트 덴마크공과대학(DTU) 에너지경제규제본부장은 2018년 7월 19일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덴마크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바람이 풍부한 덴마크에서는 1891년 학교 교사였던 폴 라 쿠르(Poul la Cour)가 최초로 발전용 풍차를 개발한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날개를 개량하는 등 각 지역에서 실험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석유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대안으로 풍력이 재빨리 부상했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덴마크도 70년대에 두 차례 세계적인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전환을 시작했습니다. 덴마크 에너지청에 따르면 1972년 덴마크의 총 에너지소비 중 92%는 석유였습니다. 산유국인 덴마크는 2016년을 기준으로 하루에 14만 9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98개국 중 38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석유에 의존했다면 여전히 많은 양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였을 것입니다. 스구트 교수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는 1976년 최초의 국가에너지계획을 수립해, 석탄과 원자력을 중심으로 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스구트 교수는 “당시만 해도 재생에너지의 역할은 한정적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 이끌어 낸 시민의 힘  

그런데 덴마크 시민들은 정부의 원자력발전 계획에 반발했습니다. 핵발전의 잠재적 위험에 주목한 시민단체 ‘원자력정보기구’는 정부 공식계획에서 원자력을 빼고 재생에너지를 넣은 ‘대체에너지 시나리오’(AE 76)를 발표해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당시 덴마크는 스웨덴과 달리 건설 중인 원전이 없었습니다. 스구트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덴마크도 1973년부터 원자력 도입을 검토했고, 국립 에너지연구기관인 리소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무산됐습니다.”

덴마크 의회는 1985년 원전건설 계획의 공식 폐기를 결의했습니다. 스구트 교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1988년 수립된 세 번째 에너지계획(Energi 2000)은 세계 최초로 원자력이 빠진 공식 에너지 계획이었습니다. 200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줄이고 풍력발전으로 전기 공급량의 1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이후 풍력발전 육성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리소연구소는 베스타스(Vestas Wind Systems)같은 풍력발전기 제조사와 함께 발전기 개량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정부는 1990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의 판매가격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습니다. 석유, 석탄 등 다른 에너지에 비해 아직 경제성이 낮은 풍력발전을 파격적인 보조금으로 지원해 주는 정책이었습니다. 스구트 교수는 “풍력은 이런 ‘FIT 프리미엄’ 정책 덕분에 전기 가격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풍력발전이 급성장하면서 1898년 동네 대장간으로 시작했던 베스타스는 해당 업계 세계 1위로 도약했습니다. 베스타스는 한동안 창틀, 주방기구, 냉각기, 크레인 등 다양한 공산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1978년 풍력터빈 실험을 계기로 80년대 대량생산을 시작했고, 2007년에는 세계 풍력터빈시장의 28%를 점유하는 압도적 1위 기업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독일, 중국 등의 추격으로 시장점유율이 낮아지고 있지만 세계 1위는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베스타스의 2017년 매출액은 99억 5300만 유로, 원화로 약 13조 291억 원이었고, 이자 및 세전이익(EBIT)은 12억 3000만 유로, 원화로 약 1조 6101억 원을 보였습니다. 베스타스의 풍력터빈은 제주 행원 풍력발전소, 군산 새만금 풍력발전소 등 우리나라에서도 총 165기가 돌고 있습니다.

주민 참여 협동조합이 풍력터빈 75% 소유 

덴마크에서 풍력발전이 급성장한 데는 FIT 등 보조금의 힘이 컸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꼽힙니다. 삼쇠에너지아카데미는 삼쇠섬의 성공 비결을 ‘지역 소유’로 꼽았습니다. 삼쇠에너지아카데미의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이 섬의 육상풍력터빈 11개 중 9개, 해상터빈 10개 중 5개가 농부 등 개인과 주민협동조합 소유입니다. 삼쇠시가 소유한 나머지 터빈에서 나오는 이익도 모두 시 운영비와 재생에너지 투자비용으로 쓰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풍력협동조합은 전국적인 운동이 됐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토니 세바 교수가 쓴 <에너지 혁명 2030>에 따르면 덴마크에서는 2001년 기준 10만 가구, 2005년에는 15만 가구 이상이 풍력협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이런 협동조합이 덴마크 전체 풍력터빈의 75%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7년 기준 인구가 5백60만 명 남짓인 나라에서 매우 높은 참여율입니다. 스구트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풍력협동조합은 소수 농민들이 함께 모여 작은 풍력터빈을 건설하던 70~80년대에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보다 더 큰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3.5km 떨어진 바다에 조성된 미들그룬덴(Middelgrunden) 해상풍력발전소를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스구트 교수에 따르면 2001년 2MW급 터빈 20기로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가 된 이곳은 코펜하겐시 소유 전력회사와 ‘코펜하겐 에너지·환경협회’라는 풍력협동조합이 각각 절반의 소유권을 가졌습니다. 협동조합에는 코펜하겐과 인근 지역 주민 8650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코펜하겐시 전력 수요의 4%를 담당합니다. 소규모 풍력발전기를 주민이 소유하는 형태로 시작한 풍력협동조합 모델이 대규모 단지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정밀한 예측으로 ‘공급 안정성 99.9%’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묻습니다. ‘햇볕이 약하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전력을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러나 2018년 10월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2018 대한민국 에너지전환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나선 크리스토퍼 붓짜우 덴마크 에너지청장은 이런 의문을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으면 전력 공급이 불안정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덴마크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음에도 전력 공급이 99.996% 안정적입니다.”

붓짜우 청장은 태양광이나 풍력이 날씨 변화에 민감한 만큼, 날씨를 정밀하게 예측해 에너지 수요공급 관리를 유연하고 정교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덴마크의 청정에너지 전환은 외국인 투자 유치, 연구개발(R&D) 분야 인센티브 제공 및 녹색 일자리 창출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최근 덴마크의 비보르와 오벤로에 100% 재생에너지로 가동하는 데이터 센터를 짓기로 하고 약 2조 원을 투자했습니다. 붓짜우 청장은 이 배경에 덴마크 재생에너지의 가격 경쟁력과 안정적인 공급 안보가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붓짜우 청장은 이와 함께 덴마크가 2018년 6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기 생산’ ‘2050년까지 화석연료에서 완전 탈출’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출연: 유지인 정승현 최은솔 기자
영상편집: 정승현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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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현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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