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마지막 비상구 ⑧ 독일의 경험 (중)

독일 서남쪽에는 ‘검은 숲’이라는 뜻의 ‘슈바르츠발트’ 삼림지대가 있습니다. 이 삼림지대 근처에 인구 22만 명의 유서 깊은 도시, 프라이부르크가 있습니다. 마르틴 하이데거, 막스 베버 등 저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프라이부르크대학교가 있는 곳입니다. 여러 대학이 둥지를 틀고 있어 7명 중 1명이 대학생인 교육도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유럽의 환경수도’ ‘태양의 도시’로 더 유명합니다. 환경보호를 최우선 가치 중 하나로 여기는 시민의식과 일관성 있는 자치행정이 오늘날 프라이부르크를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연간 300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로 만들었습니다.

햇빛 발전소로 가득한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경관은 태양광 패널이 반짝이는 건물입니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에 연결된, 높이 60미터(m)의 ‘솔라타워’는 유리창을 제외한 건물 외벽 전체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습니다. 프라이부르크에서는 관공서와 주택 등 건물 1000여 채가 태양광 발전기로 전력 수요 상당 부분을 충당합니다. 유럽 최대 태양에너지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1954년 설립된 비영리 연구기관 ‘국제태양에너지학회’도 프라이부르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프라이부르크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생태주거단지 보봉 마을입니다. 도심에서 노면전차, 즉 트램으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프랑스군이 주둔하던 군사기지였습니다. 통일 2년 뒤인 1992년 프랑스군이 떠나자, 프라이부르크시는 독일 연방정부로부터 이 마을 토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주민 5천여 명이 결성한 ‘포럼 보봉 협동조합’과 친환경 마을을 건설해 나갔습니다.

친환경 마을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도록 지어졌습니다. 바로 ‘제로에너지주택’입니다. 모든 건물이 단열을 개선했고, 전력은 태양광으로 해결, 난방은 열병합발전으로 보완했습니다. 열병합발전은 발전소에서 나온 열을 버리지 않고 난방에 사용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쓰고 남은 전기를 팔아 가구당 연평균 4천 유로, 우리 돈으로 5백만 원 정도 소득을 올리는, ‘플러스에너지주택’도 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출신 건축가 롤프 디쉬가 1994년 자기 집으로 지은 ‘헬리오트롭’이 대표적인 플러스에너지주택입니다. 햇빛을 따라 회전하는 원통형 태양광 주택인데, 사용량의 5배나 되는 전기를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러 건축상을 받은 이 주택은 보봉 마을의 명소입니다.

프라이부르크가 이렇게 태양광을 활용한 생태도시 건설에 앞장설 수 있었던 건 독일 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연간 1800시간 햇볕이 내리쬐는데, 이는 1제곱미터(㎡)당 전력 1100킬로와트시(kWh)를 생산할 수 있는 일조량입니다. 놀라운 건 이것이 평균 1400에서 1600kWh 정도 되는 한국의 일조량보다는 적다는 사실입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태양광의 절대량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덕분에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환경원조재단이 ‘연방 환경수도’로 선정한 1992년 뒤 20년 만인 2012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퍼센트 줄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오염 피해 직접 겪으며 친환경 정책 시작

프라이부르크가 환경 정책을 펼친 배경에는 1970년대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에 내린 산성비 피해가 있었습니다. 숲이 너무 울창한 나머지 검게 보이는 검은 숲은 이 지역의 중요한 관광자원입니다. 하지만 산성비로 빽빽했던 나무가 죽으면서 환경오염이 불러오는 피해를 자각하게 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도시 인근 ‘비일’ 지역에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논란도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포도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원자력발전소 건설로 포도 생산에 차질을 겪을 것이라 우려한 주민들이 저항했습니다. 결국 시민들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소비생활 자체를 반성하게 됐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진 1986년에는 독일의 지방정부 중 처음으로 환경보호과를 설치했고, 시 의회가 연방정부보다 14년이나 빨리 탈원전을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그 사이 석유파동까지 겹쳤습니다. 프라이부르크시는 대중교통 확충 정책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프라이부르크시에 따르면 보봉 주민의 자가용 보유율은 20%에 불과합니다. 마을 구석구석을 연결해주는 트램과 자전거가 교통 수요를 해결합니다. 자가용을 억제하고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 도시교통정책을 설계한 건 1970년대 독일에서 프라이부르크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차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연스럽게 친환경 생활과 문화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02년 당선된 디터 잘로몬 시장은 생태와 친환경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환경 정책을 일관되게 펼쳤습니다. 독일에서 녹색당 소속 시장이 나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기도 합니다. 2017년 새로 뽑힌 마르틴 호른 시장도 무소속이었지만 전임자의 친환경 정책을 지속했습니다. 재생에너지 전환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화, 폐기물처리, 생태계 보호, 환경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현재도 녹색당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프라이부르크가 유럽의 ‘환경수도’로 불리게 된 건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세계 도시의 모범이 됐기 때문입니다. 2016년 프라이부르크시 조사에 따르면 보봉 주민의 거주 만족도는 90%에 이릅니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에서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납니다.

에너지전환으로 탄탄한 성장 지속

‘아고라 에네르기벤데’는 독일의 대표적인 에너지 전환정책 연구기관입니다. 이곳 언론 대응 담당 프리츠 포어 홀츠 박사는 독일 에너지 전환정책 목표에 ‘성장 보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에너지전환과 함께 정책적으로 기술, 산업, 고용증진을 유도하면 얼마든지 경제성장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홀츠 박사는 2018년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독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해 답했습니다. 

“에너지전환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는 유럽에서 가장 강합니다!”

실제 독일 경제는 30여 년 동안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탄탄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2018년 독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5만 달러입니다. 독일의 경제 규모는 2018년 기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였고, 유럽연합 28개국 가운데 1위로 EU의 명실상부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 재생에너지 관련 시장은 날로 팽창하고 있습니다. 다국적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 하우스쿠퍼스(PWC)가 2014년 발표한 ‘독일 에너지전환 투자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독일 재생에너지 산업에 몰린 투자금액은 총 2200억 유로, 한화 약 290조 원에 이릅니다. PWC는 앞으로도 10년간 연평균 100억 유로, 약 13조 원이 재생에너지 투자에 쓰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투자 확대는 곧 해당 산업의 고용증가로 이어져, 연간 수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태양광·풍력 발전비용 이미 원전보다 낮아져

물론 에너지전환에는 비용도 따릅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가격은 (세계적으로) 다른 발전방식보다는 아직 비쌉니다. 그래서 독일은 2000년 재생에너지법을 제정했습니다.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을 의무적으로 일부 부담하게 한 법입니다. 매달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 가정마다 재생에너지 부담금을 함께 청구하는 방식입니다. 이 부담금이 반영된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8년 유럽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합니다. 세계 94개국 3000여 개 에너지 관련 단체가 모인 세계에너지협의회(WEC)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 전기가격은 덴마크에 이은 2위였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면서 이 부담금도 계속 늘었다가 2018년부터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규모의 경제가 구현됐기 때문입니다. 당장 발전설비 비용부터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2016년 독일 태양광 발전용량은 41기가와트(GW)로, 같은 시기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전 23기 설비용량의 2배에 가까웠는데, 발전설비 비용은 1킬로와트피크(kWp)당 한국 돈 167만 원 정도로, 10년 전 660만 원에서 75%가 낮아졌습니다. 킬로와트피크는 태양 빛이 가장 강할 때 얻을 수 있는 전력량을 말합니다. 

기회비용까지 따진 경제비용은 이미 화석연료와 원전보다 훨씬 낮아졌습니다. 여러 발전 방법의 경제성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평가해야 합니다. 균등화발전비용은 발전설비의 건설, 운영, 유지, 폐기 비용과 대기오염, 사고위험 비용 등 모든 비용을 고려해 산출한 값입니다. 에너지 전환정책 연구기관 아고라 에네르기벤데가 산출한 독일 육상풍력과 태양광의 균등화발전비용은 2016년 기준 kWh당 최대 0.09유로입니다. 최대 0.13유로까지 올라간 원전보다 낮았고, 석탄, 가스와 비교해도 낮습니다. 

단순히 전기요금 자체가 아니라, 가정에서 지출하는 전기요금 비중을 따져볼 필요도 있습니다. 독일 시민들이 지출하는 전기요금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게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포어 홀츠 박사의 설명입니다. 독일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전력 수요량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가정이 연간 내는 전력 요금은 2014년 기준 28만 원 정도로, 미국보다 낮고 일본,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일본과 스페인 등 다른 국가는 독일보다 kWh당 전력 요금이 낮더라도, 소비량은 많습니다. 특히 미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kWh당 118원으로 독일의 30% 수준이지만, 실제 전력소비량을 따져보면 독일보다 3.7배 많습니다. 포어 홀츠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너지전환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이 독일 국민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일반 가정의 소득이나 지출 규모에서 전력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이죠.”

시민 참여 성패는 '경제적 유인'에 달렸다

독일이 에너지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였습니다. 그리고 시민 참여를 끌어낸 데에는 바로 ‘경제적 유인’이 있었습니다. 2017년 정책연구를 위해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한 신지예 당시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라이부르크는 ‘자동차를 줄이자’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같은 구호 대신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설계하고 주택에서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유인을 제공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 전환·플라스틱 오염 문제 등 환경 이슈가 부상하고 있지만, 개인의 윤리적 선택에만 기대고 있습니다. 정책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유인(인센티브) 시스템을 고민해야 합니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포어 홀츠 박사는 독일에서 재생에너지전환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인센티브’가 잘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제적 유인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지구온난화에 맞서 뭔가 해야 한다’는 자각보다 훨씬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지자체 건축물 규정에 따라 발전시설을 설치한 뒤 온라인으로 간단한 등록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해당 지역 전력망 사업자에게 전기를 판매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대규모 발전사업자가 전력거래소에 전기를 도매로 팔면 이후 송전·배전·판매까지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구조여서 개인과 마을협동조합이 시장에 참여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독점 판매구조를 깨고 소규모 발전사업자에게 전력생산과 판매를 동시에 허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 시민사회에서도 재생에너지 전력 거래가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2022년 현재는 전기사업법이 개정돼 전력의 일부 직접거래가 가능해졌습니다.

출연: 김지윤 박성동 이강원 이예진 기자
영상편집: 김지윤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편집: 현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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