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마지막 비상구 ③ 국제사회 기후위기 대응

“기후변화는 경제, 일자리, 범죄, 전쟁이 들어차 있는 걱정의 웅덩이 가장자리에 놓아둘 수 있는 사치스러운 걱정거리가 됐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심각한데도 대중의 경각심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국의 비영리단체 ‘기후지원정보네트워크’의 공동창립자인 조지 마셜은 저서 <기후변화의 심리학>에서 그 이유로 ‘지나친 환경담론화’를 꼽았습니다. 기후변화 논의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 행위를 저지해야 하는’ 환경 논란으로 비치다 보니, 경제·일자리·범죄·전쟁 등 좀 더 긴급해 보이는 사안에 밀려나 버린다는 겁니다.

기후변화 재난으로 매년 40만 명 사망

마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일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탓에, 현재보다는 미래 세대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상재난이 닥치더라도 이는 자연적인 현상이며 불가항력이라고 치부하기 쉽다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후변화는 이미 경제, 건강, 사회권 등 인류의 생존과 인권을 위협하는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2016년 기후취약포럼과 유엔개발계획이 함께 발간한 <저탄소 모니터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2050년까지 지구의 경제 손실이 75조 달러, 한국 돈으로 약 8경 4000조 원까지 누적될 전망입니다. 폭염·홍수·가뭄 등 자연재해로 생활 터전이 파괴되고 전염병이 증가하며, 흉작으로 식량 가격이 오르는 등의 피해를 경제적 비용으로 추산한 수치입니다.

지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 때 몰디브와 키리바시,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온난화 타격에 직접 노출된 48개국이 만든 국제조직이 기후취약포럼입니다. 이 기구는 2010년부터 매년 기후변화로 인한 온열질환, 전염병, 식량난, 기상재난 등으로 전 세계에서 평균 4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추정했습니다. 또 지금처럼 탄소에너지에 계속 의존하면 이 수치는 2030년 70만 명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018년 5월에는 미국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논문 하나가 실렸습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 출신의 기후과학자 3명이 쓴 이 논문의 제목은 ‘기후모델은 가난한 나라에서 기온변동이 증가한다고 예상한다’입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 배출에 주된 책임이 있는 쪽은 선진국이지만 우선적인 피해는 적도 주변과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에 집중됩니다. 이들은 2014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 자료를 토대로 2100년까지의 지역별 기온변동 폭을 예측해서 이런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개발도상국에 쏠린 온난화 피해, 가속화 땐 인류 멸종

IPCC는 전 세계 197개국 관료와 과학자 대표 등이 모여 기후변화 추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유엔(UN) 산하 국제기구입니다. 이 기구는 인류가 2018년부터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서더라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7년 이미 400피피엠(ppm)을 넘었기 때문에 이번 세기 중반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지금보다 최소 섭씨 0.4도(℃) 이상 올라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만일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태워 2100년쯤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시기보다 4.8℃ 오르면 뉴욕·런던·상하이·시드니 등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인간 주거지의 5퍼센트(%)가 물에 잠기고, 탄소 약 5000억 톤(t)이 묻힌 시베리아·알래스카 등 영구동토층이 녹아 온난화 속도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지난 2014년 <6도의 멸종>을 쓴 영국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 등 기후전문가들은 이런 악순환 때문에 온난화가 시작된 산업혁명 때보다 지구 온도가 6℃까지 오르면 전체 동식물의 95% 이상이 멸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18년 3월 세계은행이 발간한 ‘기후 이주를 위한 준비’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까지 아프리카·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 지역 주민 1억 4300만 명 이상이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식량난, 해수면 상승, 폭풍 해일 때문에 거주지를 떠나야 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197개국 탄소감축 합의에도 2017년 배출량 증가

2015년 12월 ‘지구온난화의 역사적 전환점’이라 평가받는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됐습니다. 하지만 2017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6년보다 4억 6000만t이 늘어 역대 최고치인 325억t을 기록했습니다. 늘어난 4억 6000만t은 무려 자동차 1억 7000만 대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량과 같습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유지되거나 약간 감소했는데 2017년에 다시 급등한 겁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그 이유를 석유 등의 화석연료 가격 하락과 각국의 에너지 효율화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세계 에너지 수요 중 화석연료 비중이 여전히 81%를 차지하고 있어, 재생에너지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영국 에너지기업 비피(BP)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가장 큰 나라는 50%가 오른 터키고, 2위는 24.6%가 오른 한국입니다. 지난 10년 사이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평균 11.2%인데, 24.6% 오른 한국의 증가율은 평균의 두 배 이상인 겁니다. 

반면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가 큰 미국, 일본, 독일은 탄소배출 감축에 성공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미국은 –15.3%, 일본 –7.1%, 독일 –5.4%를 기록했습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탄소 감축에 앞장서는 나라가 많은 OECD의 평균 증가율은 –8.7%로, 역시 감소세였습니다.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되, ‘가급적 1.5℃ 이하’로 제한할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미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 온도가 1℃가량 올랐고, 앞으로도 0.5℃ 상승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 지구적으로 신속하고도 전면적인 대응을 해야 합니다. 기후학자들은 2℃ 이상의 온난화로 가지 않으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pp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파리협정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선진국들에만 떠안긴 1997년 교토의정서와 다릅니다. 파리협정에는 개발도상국과 극빈국을 포함한 197개 당사국 전체가 참여하고, UN에 제출하는 감축 목표를 5년마다 상향 조정해 이행 여부를 검증한다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한 기후협정’으로 평가됩니다. 2016년 11월에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55%를 차지하는 55개국 이상이 비준 절차를 완료하면서 기후협정 최초로 국제법적 효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IPCC는 파리협정 체결 이후 당사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1.5℃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2050년까지 화석연료 소비를 현재의 30% 수준으로 줄이고, 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50% 이상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게 IPCC의 진단입니다.

트럼프, 파리협정 탈퇴 선언 등 '역주행' 

이렇게 갈 길이 바쁜데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6월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다며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2025년까지 2005년 배출량 대비 26~28%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녹색기후기금’이 불공정하고 자국민에 경제적 손해를 입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순위가 중국에 이어 2위인 미국이 파리협정을 이탈하면서, ‘신기후체제’는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당초 내기로 한 녹색기후기금 분담금 30억 달러, 한화로 약 3조 3000억 원 가운데, 3분의 2가량인 2조 2000억 원을 미납했습니다. 약 1조1000억 원은 오바마 정부가 냈었습니다. 당시 녹색기후기금은 2013년 12월 출범 뒤 2020년까지 1000억 달러, 약 112조 원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으나 ‘큰손’인 미국이 이탈해 개도국 기후변화 대응지원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현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녹색기후기금 복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사실이 아니라 중국의 음모’라고 말하기도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6년 12월 기후변화 회의론자인 스콧 프루이트를 환경보호청장에 지명하는 등 온난화 대응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프루이트는 오클라호마주 법무장관 시절 화석연료업계로부터 꾸준히 정치후원금을 받았는데, 화력발전소 온실가스감축 의무화에 반대하는 집단소송을 주도하는 등 오바마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줄곧 대항했습니다. 환경보호청장에 취임한 뒤에는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을 폐기하기도 했습니다.

프루이트는 취임 1년 만인 2018년 부정 청탁 의혹으로 환경보호청장직을 물러났지만 청장 대행을 맡은 앤드루 휠러 부청장 역시 미국 최대 민간석탄회사 머레이에너지 로비스트 출신입니다. 휠러 대행은 2018년 8월 21일 석탄발전소의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완화하는 ‘적정 청정에너지법'(ACE)을 발표해 2020년까지 미국의 ‘환경 역주행’을 이어갔습니다.

미국 대신 '지구 구하기' 나선 유럽과 중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낙담하긴 이릅니다. 국가 간 다른 의견이 많았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은 197개 당사국 만장일치로 체결됐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겁니다. 손민우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2018년 6월 18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하나의) 변수에 불과해요.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정도는 아닙니다.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과 선진국들이 모여있는 유럽이 미국 대신 기후변화 리더 역할을 함께 하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미국에도 트럼프 노선을 따르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을 열심히 하는 지방정부와 기업이 많아요.”

실제로 워싱턴과 뉴욕, 캘리포니아 등 미국 13개 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직후 ‘미국기후동맹’(US Climate Alliance)을 결성해 주 정부 차원에서 탄소저감정책을 강화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LA)·시카고 등 200여 개 도시 역시 ‘기후시장’(the Climate Mayors)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파리협정 실현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2018년 4월 미국 정부가 파리협정 이행을 위해 내야 할 분담금 45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50억 원을 본인 개인 돈으로 내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파리협정 목표 달성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연합은 2018년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40%’를 ‘45%’로 강화하는 안을 추진했습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당초 2020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20%를 줄이겠다고 했던 목표를 예상보다 6년 빠른 2014년에 이미 달성했습니다. 또 파리협정 체결 이후에는 프랑스·영국·독일 등 기후변화대응 선도국을 중심으로 화석연료 퇴출과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효율화 정책을 유럽연합 전체에 확산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중국도 오는 203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0~65% 줄이겠다는 과감한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중국은 특히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계기로 국제적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탈석탄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나서고 있습니다. 손민우 캠페이너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금보다 상향 조정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각 나라가 제출한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만으로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할 수 없다는 게 유엔환경계획의 분석입니다. 파리협정이 국제법적 효력을 얻긴 했지만, 여전히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부과할 수 있는 페널티가 없죠. 목표를 확실히 달성할 수 있게 국제사회의 추가 합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연: 김지윤 박성동 최은솔 기자 나종인 PD

영상편집: 김지윤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편집: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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