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마지막 비상구 ④ 국내외 기후정책 비교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채택한 배출전망치(BAU) 방식을 선진국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방식은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비해 겉으로만 효과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를 가져오니까요.”

2018년 5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보완, 쟁점을 논하다’ 토론회에서 박용신 환경정의포럼 운영위원장은 우리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 부족을 비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한국이 2009년부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기준으로 설정한 BAU(business as usual), 즉 ‘특별한 감축 노력이 없을 때 예상되는 배출량’ 방식을 선진국처럼 ‘절대량’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BAU는 장기적 경제성장률, 국제유가 등 여러 전망치를 바탕으로 산출되는데, 전문가 입장에 따라 이 숫자가 과대 추정돼 결과적으로 탄소배출 감축량이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국제기관 ‘한국 기후변화 대응 매우 불충분’ 지적

영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2018년 4월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은 매우 불충분하다(highly insufficient)”고 질타했습니다. 2016년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Climate Villain)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CAT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낮고 이행 방법도 소극적’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 기관은 “파리협정의 ‘지구온도상승 1.5도(℃) 억제’ 목표를 달성하려면 한국 정부가 약속한 2030년 배출량 5억 3600만톤(t)보다 3억t 이상 낮은 2억 400만t 이하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BAU 대비 37퍼센트(%)인 약 3억 1500만t을 줄이는 국가별자발적감축목표(INDC)를 2015년 유엔(UN)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 기준 세계 7위인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규모와 2017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 경제규모에 비추어 과연 적정한 목표치인지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같이 기후변화대응 선진국이 모여 있는 유럽연합(EU)은 1990년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2030년까지 특별한 감축 노력이 없을 때 늘어날 배출량을 가정한 뒤 그걸 기준으로 37% 감축하겠다고 공표한 것입니다. 이후 지난해 6월 유럽연합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는 법안에 합의했습니다. 한국은 같은 해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제시해 2015년보다는 나아졌으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고 환경단체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2015년 제시했던 2030년 목표배출량 5억 3600만t은 1990년 배출량 2억 9290만t보다 83% 많습니다. EU가 1990년 배출량에서 40%를 줄이겠다고 할 때, 우리는 거꾸로 80% 이상 늘어난 양을 배출목표치로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2018년 6월 18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BAU 대비 37% 목표치는 우리가 ‘감축해야 할 양’이 아니라 ‘감축할 수 있는 양’을 기준으로 설정한 소극적 수치입니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더 적극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히 미흡한 배출 목표치

문재인 정부는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감안해, 2016년 수립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을 수정·보완하고 2018년 7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전체 배출량 목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수정안의 핵심은 2016년 당시 37% 전체 감축분 가운데 25.7%, 즉 2억 1900만t인 국내 감축분을 2억 7700만t인 32.5% 수준까지 늘리는 것입니다. 국내 기업 등의 감축 노력 대신 손쉽게 해외에서 탄소배출권 구매 등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 부분을 줄인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4.5%는 해외 감축분으로 남아있고, 늘어난 국내 감축분에서 에너지전환 부문 감축량인 5800만t을 비롯해 산업·건물·수송 등 세부적인 감축 방식은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탄소 감축량 가운데 국외분이 상당량을 차지하고 감축 방향의 구체성이 떨어지는 건 지난해 8월 내놓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민우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내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도 된다’는 배출권 거래제는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37% 목표치 전부를 국내 감축분으로 전환하고, 배출권 살 돈으로 국내 기후변화 대응에 투자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산업계는 37% 전체를 국내에서 감축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습니다.

한 대기업 계열 연구원의 관계자는 2018년 8월 21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번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을 보면, 산업계의 감축 할당량은 11.7%에서 20.5%로 올랐는데, 실제 에너지 집약 산업인 철강산업은 생산단가 자체가 높아 수익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경쟁국인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탄소감축부담을 줄이기 위해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고, 일본 역시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탄소 감축 규제를 강화한다면 국제경쟁력이 약화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큰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기업은 어쨌든 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집단입니다. 정부는 산업계와 충분히 협의해 기업 부담을 줄이고 국제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속도조절에 나서야 합니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한국은 2030년에도 석탄발전 1위

유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퇴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덴마크 같은 유럽 주요국은 캐나다, 멕시코 등 20개국과 손잡고 오는 2030년 무렵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한다는 ‘탈석탄 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을 결성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는 2022년, 영국은 2024년, 이탈리아는 2025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할 계획입니다. 이들 국가는 늦어도 2040년에는 경유나 휘발유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까지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화석연료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28개 EU 회원국의 199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생산량 대비 12.5%에 불과했고, 이 중 95%를 수력이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에는 전체 발전량 중 30%가량을 재생에너지원이 담당하게 됐으며, 수력뿐 아니라 풍력·태양광·바이오 같은 다양한 에너지원이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1990년 전체 전력생산량 중 79.7%를 차지했던 석탄(40.5%)·석유(8.6%) 같은 화석연료와 원자력(30.6%) 비중은 2015년 54%로 줄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보면 화석연료는 38.7%, 원자력은 25.4%로 줄고 재생에너지는 34.2%로 늘었습니다.

반면 ‘탈화석연료, 탈원전’의 친환경 구호를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국의 에너지 전환은 속도를 크게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은 아직 모호한 상황입니다. 2017년 발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까지 올라가더라도 여전히 석탄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1%로 가장 높습니다. 석탄발전은 지구온난화뿐 아니라 미세먼지 때문에도 선진국에서 추방 대상이 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지난해 발전소 3개를 새로 지었고, 오는 2024년까지 4개의 발전소를 더 건설합니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 두 바퀴로 가야

전문가들은 한국이 화석연료와 원전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제와 함께 ‘에너지 다소비구조’를 바꾸는 정책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헌석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에너지 정책은 다분히 공급 중심으로 짜이고 있습니다. 석탄·원전 등 위험한 에너지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발전원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합니다.”

유럽의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등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한국도 석유화학·조선·철강·자동차 등 주요 산업구조 재편과 에너지 효율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영국의 에너지기업 비피(BP)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1차 에너지, 다시 말해 석탄·석유·천연가스·우라늄 등 천연자원 상태에서 공급되는 에너지 소비량은 286만석유환산톤(TOE)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높습니다. 나라별 인구 격차를 제외한 1인당 소비량은 5.6TOE를 보여 역시 노르웨이, 캐나다, 미국, 호주에 이은 5위입니다. 2015년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1만 558킬로와트시(kWh)로 미국(1만 2833kWh)보다는 낮지만 호주(9892kWh), 일본(7865kWh), 프랑스(7043kWh), 독일(7015kWh), 이탈리아(5099kWh), 영국(5082kWh)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습니다.

에너지 효율도 OECD 평균보다 떨어집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energy intensity)는 0.17로, 34개국 중 30위를 보였습니다. 에너지 원단위는 1차 에너지 소비량을 GDP로 나눈 값으로, GDP 1000달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양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숫자가 작을수록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했음을 의미합니다. 아일랜드, 스위스(이상 0.07), 영국(0.08), 덴마크(0.09), 독일(0.10) 등 유럽 선진국을 비롯해 일본(0.11), 미국(0.15) 등 세계 주요 나라는 우리보다 에너지 원단위가 낮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같은 GDP를 생산하더라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1.5~2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OECD 평균 에너지 원단위는 0.13으로 우리보다 30%가량 낮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전력소비량이 산업계에 편중돼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27만 8828메가와트시(MWh)로 총 전력소비량의 56%를 차지했습니다. 주택용은 13.7%에 그칩니다. 지난 10년간 증가폭을 살펴봐도 산업계의 전력소비량은 총 8만 3892MWh 늘어 연평균 4.1%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일반용은 연평균 증가율이 3.1%, 주택용은 2.3%였습니다. OECD 국가 대부분은 전력소비량이 산업, 상업, 주거 부문으로 비교적 균등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값싼 전기요금이 낳은 에너지 비효율 손봐야

한국 전반의 에너지 효율성이 낮은 데에는 값싼 전기요금이 큰 몫을 합니다. OECD 평균보다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이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주택용, 산업용 모두 OECD 평균보다 낮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OECD 평균 주택용 전력 판매단가는 kWh당 16.2센트(약 181원), 산업용은 10.1센트(약 114원)로, 각각 11.9센트(약 133원), 9.6센트(약 107원)인 한국보다 36%, 6.5% 높습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은 모두 OECD 평균보다 높은 전력단가를 책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주택용은 kWh당 22.3센트(약 250원)로 한국보다 두 배 가까이 높고, 산업용도 평균 16.3센트(약 183원)로 70% 가까이 더 비쌉니다.

이헌석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너지 전환에는 당연히 비용이 들어간다는 전제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재생에너지 20% 확대’라는 목표치만 제시해서는 아무것도 진척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오른다’ ‘오르지 않을 것이다’ 논쟁에 치우치기보다 에너지전환에 따라 ‘당연히’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야 화석연료·원전 중심의 발전 구조와 에너지 과소비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이행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손민우 캠페이너 역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발전뿐만 아니라 산업, 교통, 난방, 가정 등 사회 시스템 전체가 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2018년 8월 21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업계에는 낮은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고 에너지 효율화 관련 규제를 강화해서 기업이 에너지전환을 ‘부담’이 아니라 ‘의무’로 인식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수송 부문은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어떻게 하면 자가용 비중을 줄이고 대중교통으로 유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건물 부문 역시 2025년부터 신축 건물에 대해 제로에너지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정책을 최대한 앞당겨 시행하고, 기존 건물도 단열개선 같은 ‘그린 리모델링’을 통해 에너지를 효율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냉·난방 효율 역시 높아질 것입니다.”

출연: 남윤희 정승현 최은솔 기자 이예진 PD
영상편집: 정승현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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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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