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⑪ 덴마크의 경험 (하)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이자 1인당 국민소득(GDP) 세계 9위(2017년)의 부자나라인 덴마크는 ‘자전거 천국’으로도 유명합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자전거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 코펜하겐은 국제사이클연맹(UCI)이 2007년부터 매년 선정하는 ‘자전거의 도시’에 첫 번째로 뽑혔을 만큼 ‘두 바퀴의 탈것’이 물결을 이루는 곳입니다. 코펜하겐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코펜하겐과 프레데릭스베르시, 보른홀름섬 등 덴마크 수도권에서 주민들이 통근·통학 운송수단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 자전거(41%)였습니다. 버스·기차 등 대중교통은 27%, 자가용 승용차가 26%, 도보가 6% 등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통근 수단 자전거 41% 대 자가용 승용차 26%

코펜하겐에는 갓돌 등으로 차선과 구분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고, 교차로에서 최대한 신호에 걸리지 않고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전거 신호등이 있습니다. 또 교통신호를 최소화해 고속주행이 가능한 ‘자전거 고속도로’(Cycle Superhighways)도 있습니다. 코펜하겐과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자전거 고속도로는 8개 노선이 있으며, 교차로 등에서 멈췄을 때 한 발을 올리고 기다릴 수 있는 발판과 전용 공기펌프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

덴마크 외교부가 관리하는 국가 홈페이지(https://denmark.dk)에 따르면 자전거는 덴마크에 처음 소개된 1880년 이후 대표적인 운송 수단이 됐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가 늘면서 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중심으로 도시 계획을 짰습니다.

1970년대 두 차례 몰아닥친 석유 파동은 이런 흐름을 바꿨습니다. 널뛰기하는 국제원유 가격에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는 처지에 이르자 수입 에너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국가적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전력생산 분야에서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늘려나가는 노력과 함께 ‘석유 먹는 하마’인 자동차를 줄이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코펜하겐시는 ‘차 없는 일요일’ 제도를 도입했고, 시민들은 ‘자동차 없는 도시를 만들자’고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1982년에는 시민단체인 덴마크 사이클리스트연맹(Cyklistforbundet) 회원 수십 명이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서 자동차를 망치로 부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가 일으키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이런 운동은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자동차엔 높은 세금, 자전거엔 인프라 확충

정부는 조세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이런 흐름이 대세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자동차에 높은 세금을 매겼습니다. 1977년에는 자동차 등록세(motor vehicle registration tax)를 도입, 차량 가격의 최고 180%를 세금으로 물렸습니다. 이 세금은 지금도 최고 150%의 세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자동차 연비 구간별로 세금을 매겨 1년에 두 번씩 걷는 승용차 그린세(green tax on passenger cars), 트럭·버스 등 그린세 대상이 아닌 모든 자동차 소유자에게 걷는 자동차 중량세(weight tax on motor vehicles)도 도입했습니다. 적재중량 12톤(t) 이상 차량이 도로를 이용할 때 물리는 도로사용자 부담금(road user charge)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세금을 통해 자동차 보유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대신 자전거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장려책을 폈습니다. 코펜하겐의 경우 2006년부터 10년간 새 자전거도로 46킬로미터(km)와 자전거·보행자 전용 다리 17개를 건설했습니다. 자동차도로의 폭은 좁히고 자전거도로의 폭은 넓혔습니다. 자전거 주차장과 공용자전거도 크게 늘렸습니다. 여기에 쓴 돈만 10억 크로네(약 1742억 원)입니다.

이렇게 꾸준한 투자의 결과로 2016년에는 코펜하겐 시내 중심부의 하루 평균 자전거 통행량(26만 5700대)이 자동차(25만 2600대)를 앞지르게 됐습니다. 집계를 시작한 1970년의 통행량이 자전거 10만 대, 자동차 34만 대였던 것에 비해 엄청난 변화입니다. 코펜하겐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전거를 통근·통학 수단으로 타는 주민 비율을 2025년까지 50% 이상으로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예산 26억 크로네, 한국 돈으로 4530억 원을 더 쓰겠다는 계획을 2017년 2월에 발표했습니다.

두바퀴족, 덜 아프고 비만·과체중도 적고

덴마크가 이렇게 자전거 장려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자동차 운행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고 공기가 맑아지는 등의 환경개선과 함께 국민 건강증진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정부에 따르면 2016년 수도권 주민 18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약 110만 명이 ‘자전거를 타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1년 중 아픈 날 수가 줄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런 조사결과에는 의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영국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공중보건대학 연구팀이 2013년 영국 직장인 2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출퇴근 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자동차 이용자에 비해 당뇨병 발병률이 절반 정도로 낮았습니다. 또 비만율은 자전거 이용자가 13%로 가장 낮았고, 도보는 15%, 자동차 이용자는 19%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덴마크는 세계 주요국 중 네덜란드에 이어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건강통계’를 보면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높은 나라의 ‘과체중 또는 비만인구 비율’은 46~48%로 자전거를 많이 타지 않는 미국, 영국, 그리스, 캐나다 등의 52~64%에 비해 상당히 낮습니다.

북미와 유럽 국가들은 기름진 식생활 등의 요인 때문에 ‘비만과의 전쟁’을 벌일 만큼 과체중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식습관이 비슷한 국가들 중에서도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날씬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는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낮지만 식습관 등 다른 요소의 차이로 과체중·비만 인구 비율도 서구에 비해 매우 낮은(25%) 특수한 사례에 속합니다.

전기는 풍력·태양광, 난방은 바이오매스로

덴마크는 자전거 중심의 교통·수송 분야 친환경 혁신, 풍력·태양광 중심의 발전분야 혁신과 함께 난방 부문의 바이오매스(동·식물 등 생물체의 부산물에서 나오는 에너지) 활용으로 탄소배출 감축에서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됐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바이오에너지 국가별 보고서 2016>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덴마크의 총 1차에너지 공급량(TPES)의 76%가 바이오연료와 폐기물입니다.

덴마크가 주로 활용하는 바이오에너지는 밀짚, 목재 펠릿 등 고체 바이오연료입니다. 이를 활용해 열병합발전소에서 전기와 난방용 열을 생산합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덴마크 지역난방산업의 역할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4년 기준 덴마크 인구의 60% 이상이 석유나 가스보일러 대신 지역난방으로 난방과 온수를 공급받는데, 여기 쓰이는 연료의 절반이 바이오매스입니다.

덴마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79년 65.91메가이산화탄소톤(MtCO2)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보였고, 2016년에는 39.92MtCO2로 37년 동안 약 39%가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덴마크 1인당 국민소득(GDP)은 1만 3752달러에서 5만 3579달러로 약 290% 증가했습니다. 1인당 소득이 거의 4배가 되는 동안 탄소배출은 3분의 2 이하로 줄어든 것입니다. 탄소배출 감축 정책이 경제성장에 전혀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스웨덴, 독일과 함께 덴마크도 증명한 셈입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덴마크 기후변화위원회는 2011년 2월 수립한 ‘에너지 전략 2050’에서 오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제로’(0)로 만든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수입의존도 98%’에서 ‘에너지 완전자립’ 실현

덴마크의 에너지전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은 ‘에너지 안보’를 확보한 것입니다. IEA와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는 석유 소비 비중이 높았던 1970년에 1차 에너지(석유·석탄·풍력 등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공급되는 에너지) 사용량의 98%를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에는 수입량이 마이너스 1.8%를 기록, 총 에너지 사용량보다 자체 생산량이 많은 에너지 자급자족 국가가 됐습니다. 에너지 사용량 대비 수입 비율은 2005년 –65%로 정점을 찍었고, 2015년에는 1.7%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입량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해당 연도에 국내에서 쓰고 남는 에너지를 수출했다는 뜻입니다.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국산 재생에너지 사업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덴마크 에너지청이 펴낸 ‘에너지부문 고용 2016’ 보고서를 보면 2016년 덴마크의 재생에너지분야 고용자 수는 3만 1200명으로, 전체 에너지산업 종사자 7만 3400명의 43%를 차지했습니다. 2년 전인 2014년의 39%에서 4%포인트 늘어난 수치입니다. 특히 2년 간 에너지분야 종사자 수가 총 1800명 증가할 동안 재생에너지 분야는 3300명이 늘었습니다. 화석연료 등 기존 에너지산업에서는 일자리가 줄고 있으며, 대신 그보다 많은 수의 일자리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연: 강훈 이주연 기자
영상편집: 강훈 이주연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⑧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유럽 최강 경제

⑨ 태양광·풍력으로 프랑스에 전기 수출

⑩ 석유파동 후 세계 1위 풍력기업 탄생

편집: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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