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 cursor:hand;}“지금 정시와 수시의 황금 비율을 찾으려고 난리잖아요. 그런데 비율이 어떻게 정해지든지 돈이 있거나 공부 잘하는 학생이 그에 맞게 준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하든 환경이 부족하든 결국 실패를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저 같은 사람은 대학서열이나 입시제도 자체가 극단적으로 확 바뀌지 않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충북의 일반고를 졸업하고 같은 지역 사립대 행정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박형준(22·가명)씨는 “고등학교 시절 일부 상위권 학생 말고는
img { cursor:hand;}“서울대는 조국의 학교라서, 고려대는 조국 딸의 학교라서, 부산대는 조국 딸이 입학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라서 재학생들이 (촛불시위와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전남지역 국립대 신문방송학과 졸업반인 김원기(25‧가명)씨는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이 ‘금수저’ 배경을 활용해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해서 벌어진 최근 논란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방대생 입장에서는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 ‘의전원’ 등 엘리트 교육기관 입시를 위해 논문‧인턴과 같은 고급 ‘스펙(세부조건
항구도시 부산 사람들에게, 일본은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가까운 나라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가 보이고, 일본 라디오 방송 전파와 텔레비전 영상이 잡힌다. 가까운 거리 때문일까? 임진왜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일본이 조선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던 부산에는 일제강점기 때 흔적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남아 있다. 이전에는 그 흔적을 지우려 했지만, 십여년 전부터 근대를 기억하기 위해 보존하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야만과 침탈을 두둔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을 구별하자는 취지다.적산가옥 ‘정란각’ 개조한 카페부산항 배후지역인 동구 수정동과 초량동은
꼭 2년 전인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주민 서민희(50) 씨는 남편과 해외여행을 갔다가 오후 1시쯤 집에 돌아왔다. 짐 정리를 마치고 잠깐 누워 쉬고 있던 오후 2시30분쯤 방바닥이 왔다 갔다 하고 천정 전등이 금방 떨어질 듯 흔들렸다. 일어나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휘청거렸고, 냉장고와 찬장에 들어있던 접시 들이 떨어져 부서졌다. 리히터 규모 5.4 포항지진이 그의 집을 덮친 것이다.급하게 집에서 나온 서 씨는 가족과 함께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갔지만 사람들로 넘쳐나 들어가지 못했다.
제주도는 머리와 꼬리가 있는 섬이다. 서쪽 끝에 있는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頭毛里)가 섬의 머리라면, 동쪽 끝에 있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終達里)는 꼬리다.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마을’인 종달리는 가로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모양이 꼬리처럼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땅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제주도의 꼬리 종달리 포구길게 뻗은 종달리 바닷가 쪽 끝머리에는 해발 165m 지미봉(地尾峰)이 있다. 지미봉에 오르면 동쪽으로 종달리 포구가 한눈에 들어 온다. 종달리는 일제강점기에 제주도내 최대 소금 생산지였다. 그래서 소금을 생산하는 이곳
“대학과 회사인턴 생활을 서울에서 하다 보니 항상 (전철)1호선으로 (하루)왕복 3시간 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20대 중반까지는 인천보다 서울이 제게 익숙한 생활권이었죠. 그런데 제 삶의 너무 많은 시간이 출퇴근에 허비되고 있더라고요.”9일 오후 1시 인천시 가좌동 복합문화공간 ‘코스모(COSMO)40’ 4층에서 지역문화기획자 이종범(28)씨가 ‘인천크리에이티브마켓 서멀장’의 행사책임자로서 토크쇼를 열었다. ‘서멀장’은 열(thermal)과 장(場)을 합친 ‘따뜻한 시장’이란 말로, ‘서울까지 가지 않고 인천에서 즐길 수 있는 축제
부산은 항구 치고는 높은 산이 많은 도시다.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는 해발 500~600m를 넘는 산들이 둥그렇게 항만을 둘러 싸고 있다. 높은 산자락이 가파르게 바다로 이어져, 해변에 평지가 별로 없었던 곳이다. 그래서 부산역에서 남포동까지 구 중심가는 바다를 메꾼 매립지였다. 평지가 없으니 집들이 산중턱을 거쳐 9부 능선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산복(山腹) 도시다.6.25 때 파병된 유엔군 병사들이 밤에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해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외항으로 들어서면서 불야성을 이룬 고층빌딩군을 보고 “아니 이렇게 발전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이은상 시, 김동진 곡으로 유명한 ‘가고파’의 고장 마산의 어시장에서 국화축제가 열렸다. ‘어시장에서 국화축제라니?’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에겐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마산은 국내 최초로 국화를 상업재배한 곳이다. 축제의 연륜도 19살이 됐다.1961년 마산 회원동 일대에서 여섯 농가가 시작한 국화 상업재배가 번창해 1972년부터 일본에 수출까지 하게 된다. 지금도 마산은 전국 국화 재배면적의 13%를 차지하고 연간 40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다. 국
찬 바람이 단풍을 재촉하는 10월 끝자락, 성수대교 북단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인데 성수대교가 보이는 언덕 위 나무들은 아직 가을을 맞을 준비가 안 된 걸까? 조금만 더 푸르름으로 남아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어렸던 나무들은 25년의 세월 속에 어른이 돼 희생자 유가족의 현수막을 들고 서있는데, 그때 희생자 중에서도 어린 학생들은 삶과 꿈 모든 것을 멈췄다.‘엄마는 여전히 기억하고… 아직도 사랑해’‘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연수’(무학여고 2학년)
“농업에 희망이 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전쟁에 승산이 있냐고 물으면, 장군은 이길 수 있는 전쟁에서만 싸우냐고 반문합니다. 농업도 희망을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농민을 ‘동지’로 여긴다는 농업연구사가 말했다.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안철근 경상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는 새로운 씨앗을 만들고 거두며 하루를 연다. 반평생을 파프리카 연구에 매달려 국산 종자 ‘라온’을 키워냈다. 그는 “길고 지루한 연구 길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농민 덕분”이라며 “오늘도 동지와 길을 나선다”고 말했다.
“미술은 모든 문제를 시각적으로 표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술 작품은 현실을 어떠한 정책이나 어떠한 문헌보다도 한 방에, 한 번에 이미지로 보여 줍니다.” 16일 제천의병도서관에서 열린 ‘시민교양대학’에서 박영태 경기대 교수는 ‘미술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미술의 포괄적인 개념부터 현대미술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자리잡았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미술작품이 포착한 이미지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읽어나갔다. 박 교수는 임응식의
‘발레’ 하면 독특한 의상과 <백조의 호수> 정도만 떠오른다. 주변에는 발레 공연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많은 이들은 발레를 어렵고, 지루하고, 일부 관심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제천시립도서관 시민교양대학에서 신혜조 중앙대 교수는 지난 2일 발레 영상을 소개하며 발레를 즐겁게 감상하는 방법을 강연했다. 신 교수는 5살부터 대학입학 전까지 발레를 전공했고 러시아에서 발레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몸짓 언어로 주고받는 대화 “발레는 두가지로 정의할 수 있어요. 첫째는 추상적인 감정이나 인간 삶의 여러 요소들을 몸짓 언
“부산과 마산 시민들이 자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화석화 하지 말고 현실 속에서 살리면 좋겠습니다. 부마항쟁의 정신을 되살려 앞으로의 민주주의, 내일의 민주주의에 부산 마산이 중심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중심지가 됐냐고 하면 ‘과거 부마 민주항쟁 덕분이다’, ‘역사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자연스레 나오지 않을까요? 부마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10일 저녁 7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비롯한
“농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와 소비자들의 취향을 디자인하는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하고자 합니다."날씨는 흐렸지만 시민들은 주말을 맞아 가족,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와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광장 방향으로 쭉 뻗은 엑스포다리를 건너니 양쪽으로 흰 천막들이 세워져 있다.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다리 앞 광장에서 지난달 28일 열린 직거래장터 ‘농부쌀롱’은 13일까지 계속된다. 태풍 영향으로 예정보다 한 주 늦춰 열린 이번 행사는 대전광역시가 주최하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후원하며, 대전시 청년들이 만든 ‘대
‘제주어의 미래’가 된 합창단원들제주시 옛 제주대학병원에 자리잡은 ‘예술공간 이아’ 지하 연습실에는 주말마다 제주 문화를 제주 언어로 노래하는 어린이들이 온다. 4년 전인 2015년 9월에 창단한 ‘어린이 문화외교관’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이다. 만 7~13세로 구성된 이들은 제주어로 해녀문화, 4.3 등 제주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가 알려주면 돼요. 중요하고 사라지면 안 되는 소중한 언어니까요. 친구한테도, 서울에서 놀러 온 어른에게도 제가 노래로 알려줄 거예요.”지난달 28일
경기도 여주시 시청에서 남쪽으로 37번 국도를 따라 9km쯤 가면 오른쪽으로 회색 콘크리트 공장이 보인다. 국도에서 내려 지방도로 들어서면 여주시 점동면 처리(處里) 도봉콘크리트공장 앞길에 나뭇잎에 반쯤 가려진 유적 안내판이 서있다. ‘선사 유적 처리 선돌’. 이름표만 있고 보이지 않는 선돌선돌(立石)이란 이름이 흔치 않은데다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은 선사유적이라 차를 세우고 공장 담벼락을 한바퀴 돌아 봐도 선돌을 찾을 수 없다. 안내판에는 유적 이름과 화살표 하나만 덩그러니 표시돼 있고 유래나
“제주여성영화제는 제주 영화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영화를 통해 문화다양성을 확보하고 소수자 입장에서 인권 지평을 확장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제주여성영화제 20주년을 맞아 28일 제주 메가박스에서 열린 집담회에서 김정숙 홍보대사는 제주여성영화제 의의를 이렇게 강조했다. 윤홍경숙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발제를 맡고, 강유가람 감독,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정숙 제주여성영화제 홍보대사, 이민경 제주여성영화제 기획팀, 고미 <제민일보> 기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회는 ‘제주여성영화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