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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삶을 차려내는 ‘배지근한’ 부엌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⑦ 제주 종달리 ‘해녀의 부엌’
2019년 11월 12일 (화) 12:00:22 오수진 기자 rainmaker-sj@daum.net

제주도는 머리와 꼬리가 있는 섬이다. 서쪽 끝에 있는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頭毛里)가 섬의 머리라면, 동쪽 끝에 있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終達里)는 꼬리다.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마을’인 종달리는 가로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모양이 꼬리처럼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땅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주도의 꼬리 종달리 포구

길게 뻗은 종달리 바닷가 쪽 끝머리에는 해발 165m 지미봉(地尾峰)이 있다. 지미봉에 오르면 동쪽으로 종달리 포구가 한눈에 들어 온다. 종달리는 일제강점기에 제주도내 최대 소금 생산지였다. 그래서 소금을 생산하는 이곳 주민들을 가리켜 ‘소금바치’라 불렀다. 지금은 염전들이 대부분 논밭으로 바뀌었고, 소금을 생산하던 이들도 고기잡이와 물질로 생계를 꾸린다.

   
▲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지미봉에 올라 바라본 종달리 포구의 모습이다. 저 멀리 왼쪽으로 우도와 오른쪽으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 VISIT JEJU

종달리 포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300m쯤 가면 오른쪽 바닷가에 해녀들의 고달픈 삶이 깃들어 있는 해신당 ‘생개납 돈짓당’이 있다. 갯가에 있는 용암과 나무를 신석과 신목으로 모신 해신당으로 어부가 고기를 잡고 해녀가 물질을 할 때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다.

생개납 돈짓당에서 북쪽으로 좀 올라가면 ‘고망난 돌 불턱’이 있다. 제주어로 ‘고망난’은 ‘구멍난’이고 ‘돌 불턱’은 돌로 나지막하게 턱을 쌓아 그 안에서 불을 피우는 곳으로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옷을 갈아 입거나 몸을 녹이던 장소다. 아이를 낳고 사흘 뒤면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해야 했던 해녀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 먼바다로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끝내 돌아오지 못하면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며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들의 눈물과 한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종달리 포구 근처에 있는 해신당 ‘생개납 돈짓당’과 ‘고망난 돌 불턱’. © 우창호 종달리 마을이장

한때 2만이 넘었다는 제주 해녀는 지난해 말까지 3800여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육칠십대 고령이 절반 이상이다. 바다에서 물질을 해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 왔던 해녀들의 삶은 2016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201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132호로 등재돼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해산물 위판장에 해녀 문화를 입히다

   
▲ 종달리 포구에 있는 해녀의 부엌 전경. 겉보기에는 그냥 부둣가에 있는 어민들 창고처럼 보인다. © 해녀의 부엌

나이 든 해녀들이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종달리에 해녀들의 억척스러운 삶과 애환, 손맛까지 담아낸 공간이 있다. 종달리 포구 부둣가에 있는 ‘해녀의 부엌’이다. 오래 전 해녀들의 탈의장과 해산물 위탁 판매 시장이던 위판장을 어획고 감소 등으로 기능이 없어지자 공간을 개조해 해녀들의 식당으로 만들었다.

‘해녀의 부엌’은 종달리 해녀들과 90년생 젊은 예술인들이 해녀의 삶과 생활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제주 출신으로 해녀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김하원(28) 대표와 고유나(29) 이사가 같이 창업했다. 김 대표는 해녀들의 주소득원으로 일본에 주로 수출하던 뿔소라 수요가 줄어 들자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뿔소라 국내 소비시장을 넓혀 보자는 생각으로 해녀 다이닝 창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식당 영업이나 판촉활동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해녀에 문화를 입혀 보자’고 뜻을 모아 2년 전부터 해녀 영화제와 축제 등을 개최하고 뿔소라 유통망 확보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하다 ‘해녀의 부엌’을 열었다. 종달리 해녀들과 어촌계 어민들이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고민에 나선 덕분이다. ‘해녀의 부엌’은 어머니들의 공간이자, 누군가의 어머니로 가족의 밥상을 차린다는 뜻을 담았다.

   
▲ ‘해녀의 부엌’ 현관 앞에서 바라본 종달리 포구. 가운데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 오수진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종달리 포구 부두 위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회색 창고에 아무런 장식도 간판도 없다. 창고 문 앞으로 다가서면 작은 입간판에 ‘제주 해녀 다이닝 해녀의 부엌’이라고 붙여 놓은 것이 전부다.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어 그냥 버려진 창고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점심 공연과 식사 시작 20분 전인 오전 11시 40분이 되면 철문이 열리고, 해녀 복장 여성이 나와 안내를 한다.

   
▲ ‘해녀의 부엌’은 위판장으로 사용하던 곳을 그대로 활용해 안으로 들어서면 어창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 해녀의 부엌
   
▲ ‘해녀의 부엌’ 한쪽 벽면에 해녀들이 물질할 때 사용하는 태왁과 망사리가 걸려 있다. © 오수진

내부는 특별한 인테리어 없이 생선 창고 그대로 분위기를 살렸다. 몇 가지 소품과 공연무대, 그리고 시멘트 바닥 위에 그대로 준비한 식탁들로만 꾸며져 있다. 벽면 한쪽에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사용하는 부유기구인 태왁과 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그물망인 망사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창고 바닥 한가운데는 현무암 돌과 나뭇가지들로 해녀들이 물질을 하다 나와 몸을 덥히는 불턱을 만들어 놓았다. 종달리 포구 근처에 있던 ‘고망난 돌 불턱’과 해녀들의 망사리, 태왁 등 물질 도구와 그들의 억척스러운 삶, 애환을 그대로 창고 공간안으로 옮겨 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무리 미워도 자식들 키워준 건 바다여”

낮 12시 정각이 되면 ‘이어도 사나’라는 제주민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어멍이 해녀>라는 공연이 시작된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던 남편을 잃은 해녀 금덕이가 친한 언니인 미자와 함께 물질을 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공연 배우는 ‘해녀의 부엌’ 창업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동기생인 김하원 대표와 고유나 이사다.

“욕심내멍 죽고 사는 건 사람일이라. 살리는 것 바다 몫이고.”
(욕심 내면서 죽고 사는 것은 사람 일이지만, 살리는 것은 바다 몫이다.)
“숨 있을 때 나와야 한다! 욕심내면 안 된다.”
“너만 서방 없냐, 우리 어멍도 옆집 삼촌도 다 없어. 아무리 바다가 미워도 자식들 키워준 건 바다여.”
“기운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들어 가야지. 눈물을 파도에 씻으면 그만. 자식들 생각하멍 버티라.”

   
▲ ‘해녀의 부엌’에서 해녀의 삶과 애환을 소재로 한 공연을 한다. © 해녀의 부엌
   
▲ 해녀의 부엌에서는 해녀의 삶과 애환을 소재로 한 공연을 한다. 사진에서 배우 앞에 있는 것이 불턱이다. ⓒ 오수진
   
▲ 해녀의 부엌에서는 해녀의 삶과 애환을 소재로 한 공연을 한다. ⓒ 오수진

남편을 바다에 빼앗겼지만 어쩔 수 없이 바다와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 가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해녀의 부엌’에서 열리는 공연들은 출연하는 4명의 해녀마다 각각 내용이 다르고 내용도 시즌마다 달라진다. 하지만 모두 해녀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을 담고 있다.

‘해녀의 부엌’은 공연을 시작으로 해산물 이야기, 식사, 인터뷰 순으로 진행된다. 공연 이후 물질 경력 50년이라는 고봉순 해녀가 나와 관객이 궁금해하는 해산물 이야기를 직접 들려 준다. 뿔소라와 군소라는 어패류를 갖고 나와 특징과 모양, 먹는 법 등을 설명한다. 뿔소라는 뿔이 달린 것처럼 보이는 소라 종류이고, 군소는 육지에 사는 껍질 없는 민달팽이 비슷하게 생긴 어패류로 바다 달팽이라고 불린다. 군소는 ‘배지근한 맛’이 난다면서 이 맛이 어떤 맛인지 알아 맞혀 보라는 퀴즈도 낸다. 대부분 제주에 온 관광객들이라 거의 답을 맞히지 못하는데, ‘배지근한 맛’은 ‘달고 적당하게 기름져서 감칠 맛이 나고 입맛이 도는 것’을 말한다.

   
▲ 물질 50년 경력의 고봉순 해녀가 출연해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을 들고 설명을 하고 있다. © 해녀의 부엌

해녀가 따온 해산물을 요리한 밥상

해산물 이야기가 끝나면 식사시간이다.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해서 따온 해산물을 직접 요리한 음식이 나온다. 이곳에서 많이 나는 뿔소라와 군소를 재료로 한 요리와 우뭇가사리 무침과 성게국 등 해산물 위주 식사가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제주만의, 그것도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해서 따온 해산물을 요리해서 내놓은 엄마의 밥상이다. 몇 가지 요리는 테이블마다 차려 주고 나머지 반찬들은 뷔페식으로 차려 놓고 무한리필을 해준다.

 
‘해녀의 부엌’에서는 뿔소라와 군소, 전복, 성게 등 해녀들이 잡아온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 해녀의 부엌

식사가 끝나면 식전 공연 주인공의 모델이 된 해녀할머니가 나와 공연한 배우와 인터뷰하면서 관객의 질문지를 받아 답변한다. 해녀들의 일상에서부터 위험은 없는지 등에 관한 궁금증이 사라진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수심 20m 아래 바다 속으로 내려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이야기와 해녀들에게도 등급이 있어 물질하는 깊이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 시간에는 올해 여든아홉 종달리 최고령 해녀도 나와 해녀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질 오가면서 불렀던 애창곡을 구성지게 불러 준다. ‘해녀의 부엌’은 매주 금∙토∙일요일 점심과 저녁에만 운영하며, 점심은 12시부터, 저녁은 오후 5시30분부터 1시간 30분 동안 두 번 진행한다. 인터넷 예약만 받는다.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이나경 기자

 
 
[오수진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팀, 지역농촌부 오수진입니다.
어둠은 이해 못할 빛이 있다는 걸 안다. 희망은 그 작은 불빛 하나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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