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서울 성수동 도시 재활성화

지난 9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내려 한강 변 쪽으로 꺾어 들자 골목 도로를 따라 소규모 영세 공장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잿빛 공장 건물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오가고 몇몇은 공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일부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고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공장 외벽의 시멘트는 듬성듬성 떨어져 나갔고, 공장 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공장 문 앞에 ‘COFFEE’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들을 개조한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 바뀌고 있다.

공장 창고 나간 자리에 인더스트리얼 카페

성수동은 1970년대 자영업 중심의 인쇄, 자동차부품, 철공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소규모 공장들이 줄지어 자리 잡은 공장지대였다. 수제화 제조업체들도 몰려들어 1980년대에는 900여 개 업체가 모여 있던 국내 최대 수제화 산업 지역이었다. 1990년대에는 금강제화, 에스콰이어, 엘칸토 등 우리나라 3대 구두 상표 생산 공장이 이곳에 들어섰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수입명품과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성수동 수제화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쇄소들은 컴퓨터 프린터 등장으로 점차 사라지고 철공소들도 하나둘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문을 닫고 있다. 그렇게 비어가는 공장이나 창고들이 커피향으로 채워지고 있다.

▲ 성수동 한 인더스트리얼 카페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강도림

지금 이곳에는 계속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프리미엄 커피전문점 블루보틀이 한국 1호점을 낸 곳도 성수동이다. 성수역에서 작은 블록 하나를 지나 작은 골목 도로로 들어서자 유난히 사람이 많이 들락날락하는 공장이 눈에 띄었다. 1970년대 벽돌벽으로 지어진 허름한 공장 문 위에 ‘onion’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그동안 슈퍼, 식당, 정비소, 공장 등을 거쳐 지금은 카페로 변신했다. 옛 건물이나 공장 창고 등을 개조해 카페로 탈바꿈한 곳을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공장형) 카페’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하나의 유행이 됐다.

▲ 성수동 인더스트리얼 카페 ‘onion’ 내부에 커피를 주문하려는 사람들과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 강도림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로 북적댔다. 평일인데도 커피를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고,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과 달리 진동벨이 없어 주문한 커피를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줄지어 서 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카페 내부는 새로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공장 내부 그대로 살려 두어 벽에는 덕지덕지 시멘트가 발려 있고, 바닥에는 페인트 자국이 선명하다. 콘크리트, 배관, 벽돌들을 그대로 노출한 인테리어가 인더스트리얼 카페의 특징이다. 젊은 사람들의 ‘힙(hip)한’(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 유행에 밝고 신선한) 취향을 겨냥한 것으로, 그런 분위기가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성수역에서 한강 변 쪽으로 한 블록 더 내려가면 ‘대림창고 갤러리 컬럼’이란 카페가 있다. 빨간 벽돌 건물에 ‘대림창고’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겉모습만으로는 전형적인 소규모 창고다. 성수동 카페거리에서 가장 큰 규모 카페로 성수동 인더스트리얼 카페의 원조로 알려진 곳이다. 1970년대 초 정미소로 시작해 중간에 창고로 쓰던 곳이 2011년에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대림창고’. 정미소와 창고였던 곳이 갤러리 카페로 바뀌었다. © 강도림

이곳 역시 창고 내부를 그대로 살려 두고 카페로 사용하면서 한쪽에는 미술 작품을 전시해 놓은 갤러리가 이어진다. 카페 중간중간 오래된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벽난로도 여러 개 있고 높은 천장의 유리창을 통해 파란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그림 전시와 함께 넓은 공간을 활용해 각종 패션쇼와 전시회도 연다. 

▲ 성수동에서 가장 넓은 카페로 알려진 ‘대림창고’ 내부 모습. © 강도림

성수동의 인더스트리얼 카페들은 세부적인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어두운 조명에 넓고 탁 트인 공간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안락의자보다는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들이 놓여 있다. 공장이나 창고 자체 분위기와 함께 커피향을 음미하는 곳이다. 

▲ 성수동의 '자그마치' 카페.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 넓은 공간, 겉으로 드러난 배관 등은 성수 인더스트리얼 카페의 특징이다. © 강도림

문화예술인 유입 늘며 카페는 ‘성업중’

처음에는 이처럼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형태로 카페들이 등장했다가 지난 2014년 서울시가 성수동을 ‘도시재생 시범 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젊은 문화·예술인 들이 모여 작은 카페나 식당, 공방 등을 열면서 성수동은 급속히 문화 카페 거리로 변모했다. 성수동에는 성수역을 중심으로 가로세로 1km 정도 되는 지역 안에 이런 인더스트리얼 카페를 포함해 모두 35개가 넘는 카페가 들어섰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지난달 펴낸 ‘커피전문점 현황과 시장 여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성수동에는 작년에 27개이던 카페가 35개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지역 카페들이 대체로 매출이 감소하는 추세인 데 반해 성수동 카페들은 월평균 매출이 28.7%나 늘었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카페거리로 이름난 제주시 용두암 해변 도로와 강릉시 안목해변이 각각 36.6%, 13.1% 감소한 것과 비교해 보면, 성수동 카페거리가 얼마나 ‘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성수동이 새로운 문화 카페 중심지로 뜨는 것은 전시장과 복합문화공간들이 함께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화공간이 ‘에스팩토리(SFACTORY)’다. 1980년대 지어진 3,000평 규모 3층 공장 건물을 리뉴얼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전시실을 비롯해 여러 공방과 브랜드숍, 음식점,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그동안 ‘클림트 인사이드’ 등 각종 전시회와 콘퍼런스가 열렸다. 지금은 ‘뮤지엄 오브 컬러’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성수동의 대표적 문화공간인 에스팩토리. © 강도림
▲ 에스팩토리에서 전시중인 ‘뮤지엄오브컬러’ 전시작품들. © 강도림

‘뮤지엄오브컬러’ 전시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빛과 색을 주제로 한 다채롭고 화려한 작품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 에스팩토리에서 전시중인 ‘뮤지엄오브컬러’ 관람객이 천장에 달린 조형물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다. © 강도림

성수동 공장거리가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데는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공방도 한몫하고 있다. 장인의 솜씨가 진하게 배어 있는 전통 공방들과 달리 이곳 성수동에는 젊은 예술가들의 톡톡 튀는 재능들이 돋보이는 공방들이 들어섰다. 종전에는 수제화, 가죽 위주의 공방들이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주얼리, 스트리트패션 등 품목들이 다양해졌다. 공방은 빈 창고나 공장을 개조한 곳도 있고 아예 깔끔한 새 건물에 입주한 곳도 있다. 

▲ 성수동 외곽 공장건물을 개조해 문을 연 의류, 신발 편집숍. © 강도림
▲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성수동 한 가죽 공방 © 강도림

성수동에서 주얼리 개인 공방을 운영하는 김희정 씨는 “성수동이 변화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 공방을 열었다”며 “젊은층뿐 아니라 3,40대도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다양한 연령의 직장인들이 모빌, 주얼리 수업을 듣거나 제품을 사기 위해 공방을 찾아온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으로만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그의 말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성수동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직접 모빌과 주얼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성수동 한 공방 © 강도림

이처럼 카페, 전시장, 공방 등이 들어서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났고 자연히 집값과 임대료도 올랐다. 몇 년 전만 해도 성수동을 찾는 외부인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지하철 성수역에서 내리면 출구가 혼잡해 줄을 서서 나올 때가 많다고 한다.

▲ 성수역 바로 앞에 있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 기념물과 안내판. 한때 전국 최대 수제화산업단지였던 흔적은 이제 기념물로만 남아있다. © 강도림

성수동에 새로 들어서고 있는 인더스트리얼 카페거리가 ‘빛’이라면 그 사이사이에 있는 진짜 공장들은 ‘그늘’이라 할까? 아직도 금속, 제지, 기계 등 다양한 소형 공장들이 가동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카페와 달리 공장에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주로 자리를 지킨다. 

▲ 성수동 인더스트리얼(공장형) 카페들과 겉모습은 똑같은 진짜 공장들. © 강도림

“땅값∙집값 다 올라 공장은 다 나갔어”

“카페와 우리랑은 상관없어요.”

20년째 성수동에서 가죽 제품을 만들고 있는 양아무개 씨는 성수동의 변화에 관해 묻자 남일인 듯 말했다. 

“우린 가죽 만들어 파는 공장인데 관계 없지. 여기가 거품이 많이 끼어서 비싸기만 해. 땅값, 집값 다 올라 공장 유지하기 힘드니까 외곽으로 다 뜨고. 예전보다 일도 줄었어요. 경기가 어둡죠 뭐.”

왜 아직 여기서 일하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나이는 들고 오라는 데는 없어서 그냥 일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30년 넘게 성수동 금속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 씨도 양 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카페가 들어서니까 집세가 계속 올라. 집세를 감당 못해. 집세가 비싸니까 공장들이 자꾸만 경기도로 나가고. 여기 공장은 비고. 요즘 장사 안 돼. 여기 카페하는 곳도 다 돈 많은 회사 땅일거야. 우리한테는 뭐 도움되는 거 없어.”

성수동 공장거리는 오래전부터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다. 이런 성수동을 살리겠다고 서울시가 내놓은 것이 ‘도시재생시범구역’ 지정이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성수동 카페거리다. 

하지만 그 혜택은 성수동 토박이나 제조업자들에게는 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성수동 바깥으로 내몰리고 그 자리에는 밖에서 온 사람들이 들어섰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해 중산층 이상이 유입됨으로써 기존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런던 서부 햄프스테드 등 저소득층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유입으로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하지만 한편으로 치솟은 주거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기존 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설명했다.

이 현상은 대도시의 교외화와 관련이 있다. 도시 발전에 따라 도심에서 외곽으로 거주 인구가 확산되는 교외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교외지역은 자본이 집중 투입돼 발전하는 반면 도심은 교외이주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낙후지역으로 전락한다. 낙후된 도심을 재활성화 하기 위해 지자체 등이 재개발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고, 값싼 작업공간을 찾아 낙후지역에 찾아 들어온 예술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활성화하는 경우도 있다. 도심 재활성화의 결과로 그 지역은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자산가치가 높아지지만 주거비용도 함께 높아지면서 저소득층 주민들은 거주지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예상한 성동구청에서는 지난 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지만 쇠퇴하는 성수동 공장들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시와 성동구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성수동 서울숲 북쪽 일대 ‘붉은 벽돌마을’도 리모델링 이후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원래 있던 공방이나 봉제공장 등은 사라지고 카페와 음식점 등이 들어섰다.  

소규모 공장이 밀집해 있던 곳에서 문화 카페 거리로 변신하고 있는 성수동. 많은 이들은 성수동 카페거리를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색다른 문화공간이라 말한다. 하지만 기자가 찾아 가본 성수동은 ‘새로움’이 ‘낡음’을 밖으로 내모는 ‘성수피케이션’(성수+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눈에 밟혔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의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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