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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에서 결혼 의사는 어떻게 표현할까
[제천시민교양대학] ‘러시아 고전 발레 미학’
2019년 10월 12일 (토) 07:49:18 김정민 박두호 기자 dooh5@naver.com

‘발레’ 하면 독특한 의상과 <백조의 호수> 정도만 떠오른다. 주변에는 발레 공연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많은 이들은 발레를 어렵고, 지루하고, 일부 관심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제천시립도서관 시민교양대학에서 신혜조 중앙대 교수는 지난 2일 발레 영상을 소개하며 발레를 즐겁게 감상하는 방법을 강연했다. 신 교수는 5살부터 대학입학 전까지 발레를 전공했고 러시아에서 발레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 러시아 고전주의와 발레미학을 강연하는 신혜조 교수. ⓒ 김정민

몸짓 언어로 주고받는 대화 

“발레는 두가지로 정의할 수 있어요. 첫째는 추상적인 감정이나 인간 삶의 여러 요소들을 몸짓 언어로 구체화해 나타내는 예술장르. 두번째는 음악, 의상, 장치 등을 갖추어서 이야기 주제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무용예술입니다.” 

신혜조 교수는 발레를 이렇게 정의한다. 발레는 무용수의 몸짓 언어를 가진 예술이다. 무용수의 몸짓을 읽을 줄 알면 세계 어느 발레 공연을 가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왼손 약손가락을 가리키면 결혼하자는 의미다. 한 손은 가슴에 대고,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동작은 하늘에 맹세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동작이 나오면 청혼을 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전 발레는 스토리가 단순해 동작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몇 가지 동작만 이해하면 우리는 무용수와 소통이 가능하다.

   
▲ 발레리나가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왼손 약손가락을 가리키며 결혼 의사를 밝히고 있다. ⓒ The Royal Ballet

발레가 다른 무용과 가장 구별되는 부분은 서사다.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은 동작은 있으나 스토리가 없다. 반면 발레는 명확한 스토리 구조가 있다. 또한 발레는 의상과 장치로 형상을 그려내는 회화적 요소가 있다. 음악은 발레에서 빼놓을 수 없다. 발레는 서사, 회화,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발레를 다른 무용보다는 오페라와 많이 비교한다.

러시아는 어떻게 발레 예술을 꽃피웠나

러시아에 발레가 수입된 건 17세기 중반이다. 당시 러시아 황제(차르)였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대제가 낙후된 러시아 사회를 바꾸기 위해 유럽 문물을 수입하면서 발레를 들여왔다. 그러나 18세기 중반까지 러시아 발레는 별다른 성취를 보이지 못한다. 신 교수는 “하나의 예술장르가 본격적으로 정착해 발전하려면 예술단체와 예술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도 발레가 본격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발레학교가 설립되고 발레단이 창설되면서부터다. 1740년대 페테르부르그의 황실발레학교(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와 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단), 1780년대 모스크바의 페트로프스키 발레 아카데미(현 볼쇼이 발레 아카데미)와 발레단(현 볼쇼이 발레단)이 설립된다. 두 발레단은 러시아 발레의 양대 산맥이 되어 러시아 발레 장르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낸다.

러시아 발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고전 발레의 창시자로 알려진 마리우스 프티파다. 그는 러시아 황실 발레학교 교사로 50년 이상 재직하면서 60편 이상 작품을 만든 발레의 대가다. 오늘날 우리가 극장에서 만나는 발레 공연들은 프티파가 만들거나 개작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지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미녀> <돈키호테> 등이 그가 만든 작품들이다. 

고전 발레는 낭만주의 성향이 강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사를 그려 나간다. <백조의 호수>는 주인공이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마법적 존재다. <지젤>에서도 2막부터는 유령의 세계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잠자는 미녀>의 주인공인 오로라 공주도 백년 동안 깊은 잠에 빠진다. 이처럼 고전 발레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소재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전설이 된 무용수들

러시아 고전 발레 무용수 중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이가 <백조의 호수> 주인공을 맡았던 안나 파블로바다. <백조의 호수>는 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저주로 낮에는 백조로 살아가게 된 오데트 공주가 호수에서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공주는 왕자의 진정한 사랑의 맹세가 있어야 마법에서 풀려날 수 있지만, 왕자가 로트바르트의 딸인 마녀 오딜을 오데트로 오해하고 사랑을 맹세하자 좌절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마린스키 발레단 출신의 안나 파블로바는 이 백조를 연기한 무용수 중 가장 세계적인 스타이다. 

   
▲ 백조와 함께 사진을 찍은 안나 파블로바. ⓒ Lafayette

안나 파블로바가 활동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는 높은 도약이 가능하고 턴을 잘 돌 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체형의 무용수가 주목을 받았다. 가냘프고 마른 체형이던 안나 파블로바는 신체적 조건이 불리했지만 스승의 지도 덕분에 그런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다. 그는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력에 승부를 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그는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망라한 전세계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스타가 된다. 안나는 <백조의 호수> 무용수로서 정체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임종 순간에도 백조 의상을 끌어안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조의 호수>에 안나 파블로바가 있다면 <지젤>에는 누가 있을까? <지젤>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인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 지젤은 뒤늦게 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슬픔에 빠져 자살한다. 지젤은 유령(윌리)이 되지만 다른 윌리들이 알브레히트를 해치려고 하는 것을 막아내고 그를 구해준다는 점에서 순애보를 드러내는 여성상으로 조명받는다. <지젤>은 무용수의 테크닉뿐 아니라 연기력도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지젤>의 무용수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과 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인의 슬픔을 서정적이고도 아름답게 표현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젤>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용수로 회자되는 발레리나는 마린스키 발레단을 거쳐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한 갈리나 울라노바다.

   
▲ <지젤>을 연기하는 현역 러시아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지젤>의 무용수에게는 뛰어난 연기력이 요구된다. ⓒ Brescia Amisano

해외 공연을 많이 다닌 안나 파블로바와 달리 갈리나 울라노바는 러시아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스탈린이 가장 좋아한 무용수로도 유명하다. 갈리나 울라노바는 볼쇼이 극장에서 <에스메랄다>의 다이애나를 연기할 때 실수로 스탈린을 향해 활을 겨냥하는 동작을 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스탈린의 눈에 들어 그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갈리나는 소련 무용수로서 네 차례 스탈린상과 두 차례 레닌상을 수상하는 최고의 영예를 얻는다.

발레의 볼거리는 무엇일까?

한 작품에서 나오는 무용수는 적게는 50명, 많게는 70명 정도다. 그중 주연 무용수는 하나 또는 둘이다. 나머지 무용수는 군무를 형성해 통일된 스텝을 연기한다. 무용수의 통일성은 군무에서 나온다. 군무에서 무용수들은 동작 하나하나 각도까지 서로 맞아야 한다. 고전 발레는 엄청난 연습량이 필요하다. 

발레 중간에 들어가는 민속춤을 디베르티스망이라 부르는데 프랑스어로는 기분전환의 의미로 스토리와 관계없이 무용수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들어간 춤이다. 스토리와 연결이 안 되도 볼거리를 제공해 관객들은 흥미롭게 발레를 감상한다. 유명한 발레 공연은 군무와 디베르티스망이 예술의 경지다. 신혜조 교수는 백조의 호수에서 ‘네 마리 백조’가 가장 유명하다며 “크게 난이도 있는 동작은 아니지만 양손 묶어서 네 명이 동시에 춤을 추는데 상당히 힘들고 어렵다”고 말했다. 

   
▲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군무, ‘네 마리 백조’. ⓒ 국립발레단

“볼쇼이 발레단 군무를 위에서 보면 다리 각도, 머리 각도 하나 하나가 다 맞아요.” 

그랑파드되는 발레리나와 남자 무용수의 2인무다. 그랑파드되는 아다지오, 바리아시옹, 코다, 세 형식으로 이어진다. 아다지오(adagio, 느리게)는 느린 음악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바리아시옹(variation, 변화)에서는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준다. 코다(coda,마지막)는 군무진을 다 데리고 나와 마지막을 웅장하게 끝낸다. 고전 발레는 초반부는 연기로 시작해서 클라이맥스에는 그랑파드되로 즐길거리를 제공해준다. 무용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 테크닉을 이 부분에서 보여준다. 그랑파드되를 보러 발레 공연에 가는 사람도 많다.

   
▲ 발레 공연 중간에 헝가리 민속춤이 들어간 그랑파드되 장면. ⓒ the royal ballet

편집 : 최유진 기자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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