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와 혁신] ⑬ 기득권 강화 대입제도의 그늘

“지금 정시와 수시의 황금 비율을 찾으려고 난리잖아요. 그런데 비율이 어떻게 정해지든지 돈이 있거나 공부 잘하는 학생이 그에 맞게 준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하든 환경이 부족하든 결국 실패를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저 같은 사람은 대학서열이나 입시제도 자체가 극단적으로 확 바뀌지 않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충북의 일반고를 졸업하고 같은 지역 사립대 행정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박형준(22·가명)씨는 “고등학교 시절 일부 상위권 학생 말고는 입시제도를 제대로 분석해 알고 있는 애들이 없었다”며 “지금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입시제도의 변화를 겪어도 그저 ‘아 그렇게 되는구나’하고 순응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대입제도 변화에도 중하위권은 ‘시큰둥’

▲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교육부의 ‘대입 정시확대’ 발표 이후 수능 준비에 유리한 대치동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지만 대다수 중하위권 고교생과 지방대생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 © 장은미

대구의 일반고 2학년인 고은비(17·가명)양도 정부의 수능 정시 확대 방침에 대해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성적이 하위권이라는 고양은 “학교에서 정시든 수시든 서울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에게만 지원을 몰아주기 때문에 입시제도가 어떻게 변하든 나와 별 상관없는 일로 느낀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전교 20등 안에 드는 애들은 따로 모아서 입시전문가를 초청해 입시전략을 알려주고 면접 준비를 도와주는 등 티 나게 밀어 줘요. 이런 데서 중하위권 애들은 뭔가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끼고 학교의 관심과 지원조차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입시제도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고요. 하위권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뭐라고 하지 않는 선생님이 들어오면 무조건 자고요, 아니면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봐요.”

최근 대입 정시(수학능력시험)와 수시(학생부종합전형)를 둘러싼 ‘입시 공정성’ 논란이 한창이지만, 수험생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하위권 성적의 고등학생과 지방대생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입시공정에 대한 논의가 이른바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져 ‘그들만의 전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교육부 ‘수능확대 방안’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 대상

지난달 28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을 대상으로 2023학년도까지 수능위주 전형 비율을 40%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대상이 된 곳은 스카이를 포함한 서울 지역 최상위권 대학들이다. 정시전형 확대를 통해 추가로 입학할 수 있는 학생 수는 5625명으로, 2023학년도 수험생 38만8천 명 중 1.4%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 나온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도 정시 수능을 30% 이상으로 올린다는 내용인데, 대상이 된 곳은 역시 상위권 대학 17곳이다. 이에 따라 늘어나는 정시 신입생 수는 3300명 정도로, 2022학년도 수험생 43만명 중 0.76%밖에 되지 않는다. 대입제도 개편을 두고 교육계와 언론 등이 벌인 논란이 결국 소수 상위권 학생들이 명문대를 가기 위한 규칙의 공정성을 따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교육부가 지난해와 올해 발표한 대입 정시 확대 방안. 정시 인원을 확대하는 곳은 대부분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이며, 늘어나는 정시 인원도 전체 수험생 중 1% 내외에 불과하다. © 강찬구

애초에 입시공정 논란이 ‘정시 수능 대 수시 학종’의 대립으로 좁혀진 것도 학종을 중시하는 서울 상위권 대학의 입시 특성 때문이다. 한국대학학회 ‘사회 불평등구조와 대학정책 방향’ 자료집(2019)을 보면 2020학년도 입시에서 전국 198개 4년제 대학은 전체 모집인원 중 학생부교과 42%, 학생부종합 24%, 수능 20%, 실기 6%, 논술 4%, 기타 4% 등으로 뽑지만, 서울 상위권 15개 대학은 학생부종합 47%, 수능 24%, 논술 13%, 학생부교과 6%, 실기 6%, 기타 4% 등으로 뽑는다. 명문대일수록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높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학종’ 비중 높아

▲ 서울대·연대·고대를 포함한 서울 상위권 15개 대학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비율이 전국 평균의 2배 정도로 높다. © 강찬구

특히 스카이 3개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이 59%로 전국 평균의 2.5배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크고, 학생부 교과전형은 고려대 3% 외엔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 이들 대학이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을 주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선호하고, 내신 중심이라 특목고•자사고 학생들의 경쟁력이 낮아지는 학생부 교과전형은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동진(46)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입전형연구원은 지난 11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수능과 학종을 둘러싼 입시공정 논란 속에서 정부가 발표한 정시전형 확대는 어차피 상위 10% 내의 학생들에게만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이라며 “성적이 중하위권인 학생, 대학서열이 낮은 지방대에 들어갈 학생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 관심도 갖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원(64)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입학생을 유치하기 어려운 지방대는 이제껏 수시로 학생들을 선점해 살아남는 방법을 써왔는데, 서울 인기대학의 정시 인원이 늘어나면 연쇄적으로 지방대에 영향을 미쳐 학생을 확보하는 데 굉장히 불리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정의 공정’에만 집착하는 한국 사회

최근의 입시공정 논란은 한국사회에서 ‘공정 개념’의 한계를 드러낸다. 공정은 보상을 위해 선별하는 기준과 절차가 합리적인가를 따지는 ‘과정의 공정’과 출신•배경에 따른 차이를 고려해서 사후 보정을 해야 한다는 ‘결과의 정의’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전자에 집착하고 후자를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시 수능 확대정책이 대표적이다. 수능은 5지선다형 문제를 통해 수험생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변별한다는 점 때문에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 9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리터가 대입 제도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정시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63.2%로 수시(22.5%)를 크게 앞질렀다. 이런 여론을 반영,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시 확대를 요청했고, 교육부는 11월에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지난달 28일 상위권 대학의 정시 수능 비율 40% 이상 확대를 골자로 하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교육부

그러나 결과의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수능은 부유층과 수도권 학생에게 유리하고 학종이 경제적•지역적으로 소외된 학생들에게 덜 불리한 전형이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지난달 교육부가 13개 주요 대학을 대상으로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이들 대학에서 지난 4년 간 소득 8구간(평균소득 월 468만원) 이하만 받을 수 있는 국가장학금 Ⅰ유형 수혜자 비율이 학종 입학생은 35.1%였지만 수능 입학생은 25%로 더 적었다.

특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저소득 0~3구간 비율이 학종은 16.2%였지만 수능은 10.7%에 불과했다. 학종에서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기회균형전형’을 제외해도 학종이 수능보다 저소득층 학생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또 입학생의 지역별 현황을 봐도 서울지역 고교 출신 학생 비중은 수능이 37.8%, 학종은 27.4%인 반면 읍면 소재 고교출신 학생 비중은 학종이 15%, 수능이 8.6%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 학생은 수능으로, 읍면지역 학생은 학종으로 입학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 국가장학금 수혜자를 통해 분석한 입학전형별 소득 현황을 보면, 학종으로 입학한 학생이 수능 입학생보다 저소득층 출신인 경우가 많다. © 강찬구

‘학종’ 악용하는 고소득층 탓 여론은 ‘수능’ 지지

수능이 부유층에게 더 유리한데도 여론이 학종보다 수능을 더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원 상지대 교수는 “학종은 원래 수능이 지닌 암기•주입식 학습의 폐해를 없애고 학생의 다양한 역량을 봄으로써 공교육을 활성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시행됐는데, 이를 일부 대학과 고소득층 학부모들이 악용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시를 주도하는 15개 정도의 서울 상위권 대학들이 공교육 정상화의 책임을 회피한 채 일반고나 지역고교에 보다 유리한 학생부교과를 무시하고 특목고•자사고에 유리한 학종으로 인재를 독과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사정을 자녀 교육을 위해 적극 투자할 능력이 충분한 고소득층이 적극 활용했고 국민들이 이를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하면서 학종이 더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로 비춰졌다”고 분석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최근 온라인미디어 <피렌체의 식탁> 칼럼에서 “국민들이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대중은 ‘결과의 격차’가 큰 만큼 ‘과정의 공정’을 더 크게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중이 수능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한 제도를 좋아해서’라든가 ‘특권층의 행태에 분노해서’가 아니라, 수시전형이 모두 수능만큼의 공정함(비례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입에서 유난히 ‘변별력’이 중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서 (대학별 1인당 교육비를 기준으로) 1년에 4300만원어치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고 1500만원어치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의대를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생애소득과 안정성에 큰 격차가 발생하지 않는가? 따라서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합격•불합격의 기준을 요구하게 된다. ‘결과의 격차’가 큰 만큼 날카롭고 객관적인 변별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진정한 공정 위해 ‘평등’에 더 관심 기울여야”

대학교육과 일자리 등에서 ‘결과의 격차’가 극심하기 때문에 ‘과정의 공정’에 더욱 집착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입시 공정에 관한 논의를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까? 김종엽(56)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공정은 상위 20% 집단을 위한 것으로, 결과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빈약하고 납작한 개념이 되어 버렸다”며 “공정이 정의의 원칙으로 넓게 확장되기 위해서는 평등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학교 간 서열을 완화하거나 없애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학교 간 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9월 20일 서울 덕성여대에서 열린 한국대학학회 ‘사회 불평등구조와 대학정책 방향’에서 발표하는 김종엽 교수. 그는 한국 사회가 보다 깊은 수준의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학 간의 평등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종엽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로 잘난 사람을 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특정 대학을 장남 키우듯이 지원해왔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조건의 평등 없이는 공정을 얘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의 여러 가지 교육 조건을 형평성 있게 맞춰줘야 합니다. 대학서열이라는 게 사람들 생각하기에 이름값이 좋아서 그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학별로 교수, 학생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교육비 차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국가가 재정 지원을 상위권 대학에 집중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재정 지원을 균등하게 하거나 열등한 학교에 더 많은 지원을 해서 대학들의 조건이 평등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현(55) 우리교육연구소 소장은 지난 11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수능이든 학종이든 모든 경쟁을 통한 선발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의 자녀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고 사회적 약자의 자녀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며 “상대적으로 상위 계층의 유리함을 완화시키고 약자의 불리함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회적 약자 계층에게는 적극적으로 고등교육의 기회를 열어주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소위 기회균형전형, 사회배려전형, 사회통합전형 등 소외 계층에게 고른 기회를 주는 특별전형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회균형전형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을 배려해 뽑는 제도이고 사회배려전형은 국가유공자, 군인 등 특정직업 종사자 자녀를 배려하는 제도이며 사회통합전형은 비평준화 고교 등에서 저소득층과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계층을 배려하는 제도다.

전대원(49) 실천교육교사모임 대변인은 지난 12일 전화인터뷰에서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한 상황에서 기계적 공정을 강요하는 것은 불평등한 상황을 영구히 존속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을 점수 1~2점 차이로 변별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열심히 하려 하지만 미처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하지 못한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오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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