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⑥ 부산 영도 신기산업

부산은 항구 치고는 높은 산이 많은 도시다.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는 해발 500~600m를 넘는 산들이 둥그렇게 항만을 둘러 싸고 있다. 높은 산자락이 가파르게 바다로 이어져, 해변에 평지가 별로 없었던 곳이다. 그래서 부산역에서 남포동까지 구 중심가는 바다를 메꾼 매립지였다. 평지가 없으니 집들이 산중턱을 거쳐 9부 능선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산복(山腹) 도시다.

6.25 때 파병된 유엔군 병사들이 밤에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해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외항으로 들어서면서 불야성을 이룬 고층빌딩군을 보고 “아니 이렇게 발전한 나라가 어쩌다 침략을 당한 거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아침에 보니 그 많던 빌딩들은 간데 없고 산중턱에서 꼭대기까지 판자집만 빼곡한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부산은 산복동네가 많고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산복도로가 발달해 있다. 버스로 산복도로를 타고 올라가 어디든 내리면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 온다. 유엔군 병사들이 고층빌딩이라 착각할 정도로 높고 전망 좋은 ‘루프탑’과 ‘마천루’가 곳곳에 있다.

▲ 부산시 영도구 봉래산(396.2m) 7부 능선쯤 있는 카페 신기산업. 바닷가에서 300m쯤 떨어져 있어 50~60층 이상 되는 고층빌딩에 오른 느낌을 준다. © 박서정

‘마천루’ 카페로 변신한 방울 공장

부산역에서 508번 시내버스를 타고 영도여고 앞에 내려 ‘영도구 5번’ 마을 버스를 타고 산복도로를 따라 아홉 정거장째 내리면 롯데 낙천대 아파트 입구다. 버스에서 내리면 산동네 끝부분에 우뚝 선 3층 건물이 한눈에 들어 온다. 카페 ‘신기산업’.

건물 바깥에 붙여 놓은 ‘신기산업’이란 간판만 보면 무슨 공장처럼 보인다. 카페 이름이 다채롭고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 ‘산업’이라니! 낯설고 이색적이다.

신기산업은 1987년 이곳에서 방울을 만들어 수출하기 시작해 지금은 사무용품과 인테리어용품, 장식용품 등을 생산하는 철제 용품 회사다. ‘철두철미(徹頭徹尾)’곧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고 완벽하게 한다는 뜻과 함께 ‘鐵頭鐵尾’(철의 시작과 끝)를 모토로, 선물용품과 사무용품을 제작∙판매한다. 나무, 실리콘, 플라스틱 제품도 만드는데 주력 상품은 무민 캐릭터 문구용품이다.

방울을 만들어 팔기 시작해 45개국에 수출하는 규모로 성장한 신기산업은 2016년 5월 지금 사옥을 지으면서 카페로 변신했다. 신사옥 1-3층은 카페, 펍, 기념품샵으로 바꾸고, 4층은 회사 사무실로 사용한다. 공장이던 아래 건물은 몇 가지 제조 기계를 남겨놓고 작년에 신기잡화점을 만들어 문을 열었다.

▲ 카페 신기산업 홀 내부. 안으로 들어서면 수십 층 빌딩 전망대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 박서정

부산항과 북항대교가 한눈에

▲ 카페 신기산업 홀에서 보이는 부산 북항과 북항대교의 파노라마. © 박서정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시원하게 뚫린 창문 밖으로 부산 북항이 한눈에 들어 온다. 마치 수십층 빌딩 스카이라운지에 올라온 느낌이다. 다른 분위기 다 제쳐 두고 이런 기분이 카페 신기산업의 핵심이다. 부산시내와 영도로 둘러 쌓인 북항과 항만을 가로 질러 해운대 방향으로 건너가는 북항대교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창에서 눈을 돌려 카페 안을 둘러보면 미용실 퍼머기계 같은 전등갓과 조경 식물이 철근 사이사이에 매달려 있다. 90년대 아포칼립스 영화 같기도 하다. 1층은 환하고, 2층은 천장이 가까우며, 3층은 암실처럼 붉은 빛이 잔잔하게 새나온다. 층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 탐색하는 재미가 있다.

▲ 카페 내부는 철제 기둥과 보, 철제 갓을 씌운 조명등이 모두 철제로 꾸며져 이색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 박서정

철구조물과 철제품들이 빛을 만나면…

카페 4층을 지나 더 올라가면 옥상에 루프탑 카페가 있다. 봄∙여름∙가을에는 시원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확 스쳐 가는 것 같다. 카페 내부에서는 벽체 등으로 막혀 있어 보이지 않던 부산항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멀리 부산 시내가 아득하게 보이고 아래로 북항대교가 솟아 있다. 부산 남항을 지나 영도를 거쳐 해운대로 건너가는 다리다. 대형 유람선이 드나들 수 있게 선박 통과 높이가 60m나 되고 다이아몬드형 주탑은 190m에 이른다. 밤이 되면 반짝이는 야경과 건물 전등, 철제 구조물로 온통 철과 빛이 조화를 빚어낸다.

▲ 루프탑에 세워진 신기산업 철제 간판. 방울을 단순화한 아이콘이 눈에 띈다. © 박서정
▲ 70~8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신기잡화점 나무 문패(왼쪽)와 구사옥에 걸려 있던 것을 떼내 카페 안에 걸어둔 신기산업 문패(오른쪽). © 박서정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기잡화점

신기산업에서 과거와 현재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 보존해둔 과거도 있지만, 지어낸 과거도 있다. 신기잡화점 문패는 만들어 낸 과거다. 지난해 문을 연 신기잡화점 문패는 굳이 나무로 만들 필요 없이 현대적 디자인으로 하면 되는데 굳이 나무로 문패를 만들었다. 향수를 자극하려는 듯 70~80년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빈티지한 분위기를 풍긴다. 카페 건물과 별도로 지층에 있는 신기잡화점은 원래 방울을 만들던 공간이다. 신기산업이 만들어 내는 사무용품과 문방구들이 전시돼 있다.

▲ 방울공장에서 사용하던 기계(왼쪽)와 무민 캐릭터의 판넬, 문구용품 등이 신기잡화점에 전시돼 있다. © 박서정

잡화점 입구부터 오밀조밀 진열된 문구용품을 구경하다 보면 가운데 방울공장 기계가 전시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색 콘크리트벽을 등지고 서있는 커다란 기계와 그 앞에 줄지어 서있는 아기자기한 잡화가 기시감을 준다.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박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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