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가꾸는 정진야학] ③ 매튜 위더스푼

<지난이야기>

정진야학은 1986년 충북 제천 대명상호신용금고 지하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제천 유일의 검정고시 야간학교인 정진야학은 지난 37년 동안 오롯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운영됐다. 지난 2회에서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정진야학에서 과학과 영어를 가르친 장진모 교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등학교 교사인 그는 낮에는 정규학교에서, 밤에는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번에는 정진야학 개교 이래 유일한 원어민 교사 매튜 위더스푼의 이야기를 싣는다.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정진야학 학생들은 각자 학습 진도에 따라 중등반이나 고등반에서 공부한다. 중등반 학생들은 검정고시 필수 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5개 과목에 더해, 기술·가정, 음악, 미술, 체육, 도덕 중 한 과목을 골라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한다. 모든 과목 총점 평균이 60점을 넘으면 중등 졸업 자격을 얻는다. 총점 평균 60점을 넘지 못했더라도 60점 이상인 과목에 대해서는 합격이 인정돼 다음 검정고시에서는 그 과목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중등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에 고등반으로 진급하면 필수 과목에 국사 과목이 추가돼 총 7개 과목을 공부한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정진야학 학생들에게 유독 어려운 과목 중 하나는 영어다. 알파벳을 익히면 발음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고, 발음을 익히면 단어 암기와 독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2004년 당시 정진야학에 다니던 학생들도 그랬다. 낮 동안 생업으로 바빴던 그들은 늦은 밤 야학에서 외국어와 씨름했다.

2004년 겨울 어느 밤, 정진야학 교실에 처음 보는 외국인이 들어왔다. 파란 눈을 가진 그 외국인은 낯선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물었다. “왓 이즈 유어 네임(What is your name)?”. 정진야학 학생들의 첫 원어민 선생님 매튜 위더스푼(Matthew Witherspoon·57)이었다.

한국에 스며든 미국 청년

매튜 위더스푼은 정진야학이 개교한 1986년 이래 지금까지 유일한 원어민 교사였다. 미국 워싱턴주 남쪽에 자리한 리치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매튜는 1996년 한국에 처음 왔다.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찾던 중 한국에서 영어 원어민 강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재미있는 모험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서울 여의도에서 학원 강사로 일했다. 학원에서 일한 지 2년이 될 즈음 강사 일에 흥미를 잃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친구와 함께 앉아있는 24살의 매튜(사진 왼쪽). 매튜 위더스푼 제공
친구와 함께 앉아있는 24살의 매튜(사진 왼쪽). 매튜 위더스푼 제공

고향에 돌아간 후에도 매튜는 한국 생활을 그리워했다. 마침 세명대학교에서 일하던 지인이 좋은 제안을 해왔다.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다시 가르쳐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2000년 2월 매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면접을 치른 후 세명대학교 영어 강사 일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13년 6개월 동안 그는 제천에서 살았다. 고향 리치랜드처럼 제천에는 숲과 녹지가 많았다. 그는 <단비뉴스> 화상 인터뷰에서 “제천에는 의림지와 청풍호같이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많다. 대도시에 비해 여유롭기도 하고 교통 체증도 없어 마음에 들었다. 서울과도 그리 멀지 않아 살기 아주 좋은 도시라고 생각했다”며 제천에 오래 머무른 이유를 설명했다.

제천은 매튜가 가정을 꾸린 곳이기도 하다. 친구를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서울에 살던 그녀는 매튜를 만나러 제천에 자주 놀러 왔다. 결혼한 후에는 아예 제천에 내려와 터를 잡았다. 매튜 부부는 아내를 꼭 닮은 딸을 낳았다.

대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면 하이킹을 가거나 낚시를 즐겼다. 산악자전거를 취미로 삼아 동호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겨울이면 강원도 원주를 찾아 스키를 탔다. 미국에 돌아간 후로 점점 체중이 늘고 있다는 매튜는 “한국에 살 때 건강이 훨씬 좋았다”며 웃음을 지었다.

매튜는 제천에 머무는 동안 가족과 함께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다. 매튜 위더스푼 제공
매튜는 제천에 머무는 동안 가족과 함께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다. 매튜 위더스푼 제공

파란 눈의 야학 선생님

2004년 겨울 어느 날, 세명대학교에서 매튜의 수업을 듣던 한 여학생이 그를 찾아왔다. 학생은 매튜에게 “제천에 야학이란 곳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이들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던 그 학생은 평소 활달하고 시민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학생이었어요. 그 학생은 당시 정진야학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저에게도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쳐 보지 않겠냐고 물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같아 야학에 가보기로 했죠. 퇴근한 후에는 특별히 할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 학생이 집요하게 저를 설득했거든요.”

처음 야학을 찾은 날, 정진야학의 학생들은 낯선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중에는 미국인을 난생처음 만난 이들도 있었다. 한국말이 서툰 매튜와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수업 때마다 통역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알던 젊은 야학 선생님과 매튜를 소개해 준 세명대 학생이 매튜와 야학 학생들의 대화를 도왔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학생들은 금세 긴장을 풀고 매튜에게 다가갔다.

“학생들은 질문이 정말 많았어요. 처음 만난 외국인 선생님이 궁금했는지 제 가족과 사생활에 관해 계속 물어봤죠. 당시 아이가 없던 제게 학생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았냐’ ‘내가 당신의 어머니였으면 이렇게 먼 타국으로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했을 거다’ 같은 이야기도 했어요.”

매튜 위더스푼이 화상으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매튜 위더스푼이 화상으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매튜는 야학에서 수업을 하며 학생들의 열의에 놀랐다. 영어 실력은 부족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려는 열정이 가득했다. 야학 학생들은 외국인 선생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대학교 강의 시간에는 수업 시간에 억지로 앉아있거나 딴짓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야학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의욕이 넘쳐서 보기 좋았어요. 비록 서로 소통은 원활하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매튜는 2004년 겨울 방학 기간 동안 매주 이틀씩 정진야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 교재를 이용해 수업했다.

“학생들 중에는 기초적인 발음조차 서툰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쉬운 알파벳부터 시작한 다음, 단어와 간단한 문장으로 넘어갔죠.”

정진야학 중등반 교실 책상 위에 영어교재가 놓여있다. 김은송 기자
정진야학 중등반 교실 책상 위에 영어교재가 놓여있다. 김은송 기자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가르치는 일

당시 대부분 야학 학생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했다. 일을 마치고 어둑어둑해지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야학 교실에 왔다. 난방이 허술한 교실에는 겨울의 한기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매튜와 15명 안팎의 학생들이 공부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이 있어요. 중년의 여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절에 다녀온 뒤 출근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야학에 와서 밤 9시, 10시가 될 때까지 공부했죠. 그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는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학생들도 생계를 챙기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야학을 찾았다. 아침 6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장사를 하다가 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힘들게 일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배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정진야학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출처 정진야학
2000년대 초반 정진야학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출처 정진야학

낮 시간에 시내에 나가면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튜의 학생 중에는 약국을 운영하는 학생도 있었다. 매튜는 약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 학생의 약국을 찾았다. 매튜는 “도시 이곳저곳에서 학생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경험들이 나에게 제천을 더 ‘집’ 같이 느끼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저는 대학교보다 야학에서 가르치는 일이 더 즐거웠어요. 영어를 잘 하지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보다 영어를 잘 못해도 열정 넘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더 좋았죠. 야학 학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사회 경험도 많아서 가족이나 아이들, 직장 같은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하.”

그들을 가르치면서 매튜는 진정한 보람을 느꼈다. 열정 가득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힘들지 않았다. 다만 평소 아침 일찍 일어나는 매튜가 늘 아쉽게 생각하는 일이 있었다. “아침 9시나 10시에 수업을 했다면 더 에너지 넘치게 수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진야학 학생들은 부지런히 공부하는 와중에도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크고 작은 행사들을 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조그마한 파티를 열어, 매튜를 초대했다. 자신을 초대한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넥타이 여러 개를 샀던 일을 매튜는 기억한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세명대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되던 2005년 봄부터 매튜는 야학에 나가지 못했다. 저녁에도 수업 일정이 생겨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 두세 달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진야학은 매튜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생들의 열정과 친절함은 제천의 추운 겨울에 온기를 더했다.

매튜는 2013년 8월까지 세명대에서 가르치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고향인 리치랜드로 돌아간 후 7년여 동안 아버지의 농장 일을 도왔다. 몇 년 전부터는 거주 지역 인근에 위치한 핵 시설에서 작업자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기술자 겸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을 떠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한국과 제천, 그리고 정진야학이 남아있다고 매튜는 말했다. 가까운 미래에 다시 제천을 방문할 수 있기를 그는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매튜와 그의 가족. 매튜 위더스푼 제공.
미국에 머물고 있는 매튜와 그의 가족. 매튜 위더스푼 제공.

※ 정진야학은 신입생을 상시적으로 모집하고 있습니다. 연령제한 없이 중고교 졸업학력을 원하는 누구나 공부할 수 있습니다. 관련 문의는 정진야학(043-643-7102)이나 김창순 교장(010-9147-2829).

평일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제천시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2층 곳곳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제천 유일의 검정고시 야간학교 ‘정진야학’의 수업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1986년 이래 지금까지 1980여 명이 정진야학에서 배웠다. 그 가운데 860여 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난 37년 동안 오직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봉사로 학교를 운영해왔다. 공무원, 교수, 교사, 학생, 직장인, 주부, 외국인 등이 이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웠다. 빛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정진야학을 만들고 가꾸고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싣는다. (편집자)

① 지역 주민 가르치는 청년 공무원

야학에서 교사의 참맛을 느끼다

④ 학생들에게 청춘을 바친 평생 야학교사

⑤  한글을 모르니까 평생 막일만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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