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제천시 독서모임 ‘다독다독’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충북 제천 동네 카페에는 열 명 남짓한 청년들이 모인다. 청년들은 저마다 책을 한 권씩 들고 있다. 이들은 제천의 독서모임 ‘다독다독’의 회원들이다. 지난달 말 모임에서 회원들은 한 해 ‘시작’을 주제로 책을 정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책 <진화심리학>을 택한 회원, 소설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를 담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택한 회원도 있었다. 모임에서 읽는 책의 종류는 문학에서부터 사회과학, 과학, 경영·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다독다독 회원들은 주로 제천시내 카페에 모여서 책을 읽는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12월 회원들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져와서 촬영한 사진. 회원들은 모일 때마다 이른바 인증샷을 찍는다. 김지윤 씨 제공
다독다독 회원들은 주로 제천시내 카페에 모여서 책을 읽는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12월 회원들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져와서 촬영한 사진. 회원들은 모일 때마다 이른바 인증샷을 찍는다. 김지윤 씨 제공

다독다독 회원은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있는데, 대부분이 20~30대다. 회원들은 매주 두 번씩 모여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눈다. 책에 대한 애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책을 진지하게 읽는 것이 처음인 사람도 있고, 매일 책을 끼고 살 정도로 좋아해 나누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 다만 회원들 모두 문화생활을 할 여건이 부족한 지역 소도시에서 독서를 매개로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모였다.

지난해 11월 ‘다독다독’ 김지윤(30) 회장을 만나 독서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21년 11월 그녀는 지인과 함께 이 모임을 만들었다. 지난해 제천시립도서관에 동아리로 등록한 뒤 본격적으로 회원을 모집해 총 20여 명이 모인 동아리가 됐다. 지난달 말까지 벌써 42번째 독서모임을 마쳤다.

읽고 나눈 뒤 ‘문해력 고사’ 등 자체 이벤트도 열어

‘다독다독’은 ‘다양한 독서로 다정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뜻이다. 특정 장르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내는 모임이다. ‘다독다독’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회원을 모집했다. 원래 제천에 살던 회원도 있지만, 직장 때문에 제천에 왔다가 취미를 갖고 싶어서 참여한 회원들도 많다.

인스타그램 계정과 블로그를 통해 다독다독에 가입할 수 있다. 다독다독 인스타그램 계정 화면, 네이버 블로그 화면 갈무리
인스타그램 계정과 블로그를 통해 다독다독에 가입할 수 있다. 다독다독 인스타그램 계정 화면, 네이버 블로그 화면 갈무리

모임에서 읽을 책은 한 달에 한 번 정한다. 선정할 땐 그달의 국경일이나 기념일을 고려한다. 지난해 6월에는 한국전쟁을 기념해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읽었고, 9월에는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고전 명작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모임에서는 선정된 주제와 관련된 활동도 한다. 지난해 4월에는 ‘환경’을 주제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난 뒤 회원들이 일상 속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한 ‘종이컵 사용 줄이기’를 실천했다.

다독다독의 독서모임은 수요일과 토요일에 진행된다. ‘수요모임’에서는 한 달에 책 2권을 읽는 것이 목표다. 매달 첫 모임은 지정된 책과 저자를 소개하는 시간이다. 회원들끼리 가벼운 질문을 나누기도 한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지정 도서를 읽어와서 느낀 점을 공유한다. 세 번째 모임에서 회원들은 각자 지정 도서를 바탕으로 관련 있는 도서를 정해온 뒤 그 책을 고른 이유를 소개한다. 네 번째 모임은 그 책을 읽어오고 느낀 점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보낸다.

지난해 7월 모임에서 지정 도서를 다 함께 읽은 뒤 촬영한 기념사진. 김지윤 씨 제공
지난해 7월 모임에서 지정 도서를 다 함께 읽은 뒤 촬영한 기념사진. 김지윤 씨 제공

‘토요모임’은 한 달에 1권 읽기를 목표로 한다. 토요모임을 신청한 회원들은 대개 “강제로 책을 읽고 싶어서” 신청했다는 사람들이다. 아직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지만 독서를 할 계기를 만들기 위해 신청한 것이다. 수요모임과 마찬가지로 첫 모임에서는 책과 저자를 소개하고 책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고, 네 번째 모임에서는 느낀 점을 나눈다. 토요모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모임에서는 독특하게 ‘묵독’을 한다. 따로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렵기에 함께 모여 조용히 읽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관점에 따라 책에 대한 감상평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회원들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감상을 나누기 어려워하는 일부 회원을 위해 김 회장은 모든 모임 시간에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저자에 대한 정보가 담긴 인쇄물을 준비한다.

지난해 12월 송년회에서 회원들은 1년간 활동을 기념하며 ‘비판적 사고 상’, ‘열정 상’, ‘성실 상’ 등을 서로에게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윤 씨 제공
지난해 12월 송년회에서 회원들은 1년간 활동을 기념하며 ‘비판적 사고 상’, ‘열정 상’, ‘성실 상’ 등을 서로에게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윤 씨 제공

지정 도서와 관련된 작은 이벤트도 한다. 지난해 10월 성인의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능력을 다룬 책 <어른의 문해력>을 읽고 작가와 온라인 북토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일정이 이태원참사 국가애도기간에 겹쳐 취소했다. 대신 회원들끼리 문해력 시험지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직접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윤 회장은 “중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처럼 OMR 답안지에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했다”며 “생각보다 낮은 점수에 충격을 받은 회원들도 적잖이 있었다”고 말했다.

독서로 지역을 “다정한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

다독다독은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넓히는 시도도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다독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독서 행사를 진행했다. 제천시립도서관에서 중고책을 팔고 책갈피 만들기와 캘리그라피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를 운영했다. 부스 활동에 시민 100여 명이 참여해 생긴 수익금 37만 원은 전액 지역 아동복지관에 기부했다. 김 회장은 “독서를 통해 느끼게 된 것을 지역사회 활동으로 나타내고 싶었다”며 “회원들도 이런 방향에 뿌듯해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회원들은 제천 시내에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아동복지관이나 도서관 봉사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도서관에서 시민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책을 정리하는 미화 봉사도 계획 중이다. 김 회장은 “다독다독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동호회가 됐으면 한다”며 “다독다독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다정한 세상’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다 보니 봉사활동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제천시립도서관에서 다독다독 회원들은 ‘다독마켓’을 열었다. 시민들에게 중고책을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그림책과 책갈피를 만드는 등 체험 활동도 진행했다. 김지윤 씨 제공
지난해 10월 제천시립도서관에서 다독다독 회원들은 ‘다독마켓’을 열었다. 시민들에게 중고책을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그림책과 책갈피를 만드는 등 체험 활동도 진행했다. 김지윤 씨 제공

‘자연 치유 도시’에서 문화생활도

“사람들이 ‘제천’하면 젊은 분위기보다 자연 치유의 도시, 시골로 인식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서도 독서모임 같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독다독을 만든 이유를 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지금도 거의 매일 책을 읽는다. 한 달에 최소 10권을 읽는 그녀는 연간 120권을 읽는다고 말했다. 다섯 살부터 쭉 제천에서 살아온 그녀는 원래 큰 도시로 가서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기는 걸 선호했다.

다독다독을 운영하는 김지윤 회장. 최은솔 기자
다독다독을 운영하는 김지윤 회장. 최은솔 기자

성인이 되고 제천에 머무르게 되면서 가족과 친구들의 일상이 담긴 이 지역을 다시 애정을 갖고 보기로 했다. 5년 전 제천 내 다른 독서 동호회에 들어가 책을 읽고 나누는 일에 재미를 느낀 게 시작점이었다. 얼마 뒤 다른 일이 겹쳐 동호회 활동을 그만두게 됐다. 그 뒤로 혼자 책을 읽던 그녀는 2021년 11월 지인들과 함께 독서 동아리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김 회장은 현재 프리랜서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일도 하면서 꼼꼼하게 책 모임도 준비한다. 그녀는 매주 나흘 동안 그 주의 모임을 준비한다. 모임에 필요한 인쇄물과 질문들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쓴다. 그녀의 꿈은 제천 시내에 언제든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북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현재 독서와 관련 없는 일을 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김지윤 회장은 “회원 수가 늘고는 있지만, 또래 젊은 층이 독서에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게 애로사항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독서에 관심 있는 또래를 찾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독서를 할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있다. 김 회장은 “제천의 경우 독서와 관련된 행사는 시립도서관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청년들이 참여할만한 독서 행사는 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독투어 프로그램으로 지난달 경북 영주의 한 서점과 지난해 7월 충북 단양의 헌책방을 체험한 모습. 김지윤 씨 제공
다독투어 프로그램으로 지난달 경북 영주의 한 서점과 지난해 7월 충북 단양의 헌책방을 체험한 모습. 김지윤 씨 제공

김지윤 회장은 그래서 ‘독서’ 외에도 청년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조직으로 다독다독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현재 다독다독은 ‘다독투어’라는 이름으로 책 모임 외에 전국 각지의 독립책방이나 관광지를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다른 큰 지역에서 운영되는 독서 동아리의 경우 ‘독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며 “기존에 해온 플로깅 모임, 북 콘서트나 작가와의 만남 등 행사를 더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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