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가꾼 정진야학] ⑥ 정종근 교사

<지난 이야기>

정진야학은 1986년 충북 제천 대명상호신용금고 지하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제천 유일의 검정고시 야간학교인 정진야학은 지난 37년 동안 오롯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운영됐다. 지난 5회에서는 정진야학의 큰언니, 78세 김동금 학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민이 가꾼 정진야학’ 마지막 편에서는 정진야학 졸업생이자 현 교사 정종근 씨의 이야기를 싣는다.

 

저녁 6시 30분, 충북 제천 남현동 주민자치센터에 위치한 정진야학 고등부 교실. 교실 문을 뚫고 학생들을 다그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수학은 뭐가 중요한가 하면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중요한 거야! 수학은 그게 다야 사실은. 그것들을 가지고 응용을 해서 쓰는 거거든요. 그래서 답이 얼마라고?” 

정진야학의 고등부 수학 교사 정종근(56) 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무서운 선생님’으로 통한다. 정 교사는 1990년대 정진야학에서 공부했던 졸업생이기도 하다.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한 뒤 야학 교사가 된 그는 30여 년 동안 정진야학에 몸을 담아왔다. “내가 좀 열정 과다야. 그래서 수업하다 보면 한 해에 한 명씩은 꼭 울려.” 야학에서 가르치는 일이 어떤지 묻자 정 교사는 웃으며 말했다.

정진야학의 꼬마 대장

정종근 교사가 정진야학 학생들의 검정고시 지원 원서를 살펴보고 있다. 김은송 기자
정종근 교사가 정진야학 학생들의 검정고시 지원 원서를 살펴보고 있다. 김은송 기자

정 교사는 20대 후반이던 1990년대 처음 정진야학을 찾았다. 정규학교에 다니지 못한 동생을 야학에 데려갔다가 얼떨결에 같이 다니게 됐다.

정 교사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정 교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농사일을 했다. 정 교사도 어릴 적 학교에 다녀오면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다. 강원도 영월에서 5만 평짜리 사과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정 교사가 12살이 되던 해에 농사가 망했다. 과수원을 접고 온 식구가 제천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부터 정 교사는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대신 아버지의 농사를 돕거나 작은 회사에 다니며 20대 후반을 맞았다.

정 교사가 29살이 되던 1996년, 친구가 야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처음엔 동생을 입학시킬 생각으로 정진야학을 찾아갔다. 얼떨결에 자신도 중등반에 입학하게 됐다.

1990년대 후반 정진야학은 제천 하소리 마을의 복지센터에 자리했다. 낮에는 수녀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밤에는 야학이 무료로 얻어 썼다. 중등반과 고등반 각각 30~40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었는데 그중 3분의 2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었다. 당시 정진야학은 공부만 배우는 곳이 아닌 하나의 공동체였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정 교사는 정진야학의 허리 같은 역할을 맡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고,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다. 당시 야학에 나오던 청소년들은 대부분 정규학교를 그만두고 낮에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정 교사는 그런 아이들을 챙겨 바닷가로, 강가로 데리고 다녔다. “나도 뭐 그닥 많은 나이가 아니어서 그냥 야학에 놀러 다니는 기분이었어. 그때는 주말에도 수업이 있었는데,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토요일, 일요일은 수업 안 간다고 그러고 놀러도 가고 그랬지.” 정 교사는 당시 어울리던 10여 명과 아직까지도 연락하며 지낸다. 근처에 사는 이들과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도 만난다. 제천을 떠난 이들도 명절이나 여름에 돌아오면 함께 소주 한잔하며 회포를 푼다.

2000년대 초반 정진야학 학생들과 함께 나들이를 간 정종근 교사(앞줄 맨 오른쪽). 출처 정진야학
2000년대 초반 정진야학 학생들과 함께 나들이를 간 정종근 교사(앞줄 맨 오른쪽). 출처 정진야학

정 교사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다녔다. 주로 컴퓨터 수리나 광고 관련 일을 했던 정 교사는 수업 시간 외에도 스터디를 꾸려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했다. 수업 한 시간 반 전에 만나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당일 배울 내용을 미리 예습했다. 스터디에 참여한 학생들은 각자 한 과목씩 맡아 공부한 내용을 10분 동안 설명했다. “맡은 과목이 없는 학생들은 노래라도 한 곡 불렀다”고 정 교사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걸 왜 했는가 하면, 딱히 할 일도 없는 애들이 그냥 돌아댕겨 봐야 뭐 해. ‘야, 내일 뭐해? 일 없으면 몇 시까지 와’해서 모였지. 그때 내가 봉고차가 있었으니까 애들을 태우러 가기도 하고. 10명 정도 태우러 다니면 제천시 한 바퀴를 다 돌았어.”

정 교사가 스터디를 꾸린 데에는 학습적인 목적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 보고 하는 것도 그 학생들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어요. 그 아이들 같은 경우는 상황이 안 좋으니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좀 두려워할 수도 있잖아. 그래도 아는 사람들끼리는 괜찮을 것 같고, 그래서 연습 삼아 한 거지. 하하.”

어제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는데 오늘부터 선생이래

정 교사는 정진야학에 입학해 처음 치른 중등 시험을 제외하면 모든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해 2년 만에 야학을 졸업했다. 그에게 졸업은 곧 새로운 시작이었다. 정 교사는 야학 졸업 후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수업을 들으려면 청주로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일과 병행하는 것이 힘들고 학구열도 떨어져 2년을 다니고 그만뒀다.

대신 대학에 진학한 덕분에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정진야학에서는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교사로 받아줬다. 정 교사는 졸업과 동시에 정진야학 수학 교사가 됐다. “사실 내가 (검정고시에) 미처 합격하기도 전에 선생님들이 ‘야 교사해’ 그러셨어요. 정식 교사 되기 전에도 선생님들이 수업에 못 나오는 날에 ‘야, 대신 수업하고 있어’ 그러면 하고 그랬어.”

정종근 교사가 2004년 4월 정진야학 입학식에서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출처 정진야학
정종근 교사가 2004년 4월 정진야학 입학식에서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출처 정진야학

정 교사는 수학 과목을 선택했다. 이유는 ‘쉬워서’다. 꾸밈없고 솔직한 그의 성격과 닮은 과목이다. “수학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하면 되는데 다른 과목들은 설명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영어 같은 경우는 단어의 뉘앙스 같은 게 있고. 하여튼 다른 과목은 가르칠 때 설명을 많이 해야 하더라고요.”

20년 넘게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각종 사건사고도 많이 겪었다.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이 있다. 여느 날처럼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과 술 한잔하고 집에 들어가던 길이었다. 야학 앞을 지나는데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어린 학생 한 명이 야학에 구비해 둔 라면을 몰래 끓여 먹고 있었다. 당시 야학에서 쓰던 컴퓨터 모니터와 다른 물품들도 종종 도둑맞곤 했는데, 정 교사는 바로 그 학생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 할머니와 형편이 어렵게 살던 학생이었다. 정 교사에게 발각된 학생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학생과 정 교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야밤의 추격전을 벌였다. “그 밤에 걔를 막 쫓아댕겨서 결국 잡았어. 그놈을 잡아가지고 ‘야, 그런 짓 하지 말고 이제 야학이나 열심히 당겨’ 하면서 꾸짖었어.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일도 열심히 하고 결혼도 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

정종근 교사(왼쪽에서 네 번째)가 검정고시 시험장에서 학생들에게 점심 식사를 배식하고 있다. 출처 정진야학
정종근 교사(왼쪽에서 네 번째)가 검정고시 시험장에서 학생들에게 점심 식사를 배식하고 있다. 출처 정진야학

이해는 되는데 용서가 안 돼

야학 학생들에게 수학은 유독 힘겨운 과목 중 하나다. 쉽지 않은 만큼 더 매달리게 되는 과목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그랬다. 검정고시에 과락제가 있을 때는 모든 과목이 최소 40점을 넘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수학 과목이 ‘인기 짱’이었다고 정 교사는 말했다. 하지만 과락제가 폐지되면서부터는 학생들이 굳이 어려운 과목을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수학 과목의 위세도 떨어졌다.

그래도 정 교사는 기본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기초과목이라 수학이 잘 안되면 다른 과목을 공부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선생님들은 시험 위주로 가르치기도 하는데, 저는 기본을 많이 가르치려고 해요. 그래도 명색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근의 공식은 알고 있어야지.”

정진야학 교무실에 중등 수학 검정고시 시험지가 놓여있다. 김은송 기자
정진야학 교무실에 중등 수학 검정고시 시험지가 놓여있다. 김은송 기자

30여 년간 정진야학을 지켜온 정 교사는 야학의 변화와 부침을 지켜봐 왔다. 2000년대부터는 야학 학생들의 연령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린 학생들이 다른 기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나 학원 등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야학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사실 스승이라는 개념이 옛날보다 떨어졌죠. 나도 변했겠지만 학생들도 옛날 같지 않아요.”

나이가 찬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쉽지 않다. 살아오는 내내 수학을 접해본 적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수에 대한 개념이 없는 학생들이 많아요. 특히 음수를 어려워해. ‘-3 더하기 -3 하면 얼마야?’ 그러면 ‘0’이라고 하는 거지. -3 더하기 2 하면 ‘5’라고 그러고. 평생 장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돈으로 계산하면 엄청 잘하는데 문제를 풀라고 하면 그때부터 돈이 아니라 수학이 되는 거야. 그런 숫자들을 오랫동안 접하지 않고 살아오다 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머리로는 이해는 해. 그런데 심정적으로는 용서가 안 되지. 하하하.”

야학은 봉사가 아니에요

정 교사는 현재 6년째 근무 중인 시멘트 회사 협력업체에 다니고 있다. 8시간 3교대 근무라 오후 4시부터 오전 12시까지 근무하는 날에는 가끔 수업에 못 나갈 때도 있다.

겉으로는 까칠해 보이는 정 교사지만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다. 학생들이 수업을 잘 따라오는지,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항상 신경이 쓰이고 걱정된다. 학생들을 오래 지켜봐 온 만큼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야학에 오는지, 수업을 기다리는지도 알게 됐다.

야학에는 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배움이 더딘 학생들이 많다. 정 교사는 그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공부에 대한) 한풀이야 되겠지만 한 풀자고 이렇게 고생시키나? 너무 안타깝잖아. 너무 고돼 보이고. 그런 분들이 보면 일도 되게 빡세서 피곤한 몸 이끌고 6시 반에 와서 9시 반까지 있다가 가는 게 힘들거든. 가끔은 그냥 포기하고 쉬시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

정종근 교사가 정진야학의 추억이 담긴 사진 앨범을 보여주고 있다. 김은송 기자
정종근 교사가 정진야학의 추억이 담긴 사진 앨범을 보여주고 있다. 김은송 기자

정 교사를 비롯해 야학에서 오래 가르친 교사들은 야학이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최근에 야학에 들어온 젊은 교사들은 야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힘들게 생각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당연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야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봉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정작 정 교사를 비롯한 원로 교사들은 봉사라는 단어가 낯간지럽다. “봉사라는 건 사실 거창해. 난 내가 재밌어서,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봉사라는 개념으로 하지 않거든. 우리 오래된 교사들이 다 그렇게 생각해. 봉사 그런 거 막 간지러워. 그냥 하는 거야. 우연치 않게 기회가 왔고 또 때맞춰 시간도 되고, 나름 내가 능력도 있어요. 그럼 된 거지 뭐.”

※ 정진야학은 신입생을 상시적으로 모집하고 있습니다. 연령제한 없이 중고교 졸업학력을 원하는 누구나 공부할 수 있습니다. 관련 문의는 정진야학(043-643-7102)이나 김창순 교장(010-9147-2829).

평일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제천시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2층 곳곳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제천 유일의 검정고시 야간학교 ‘정진야학’의 수업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1986년 이래 지금까지 1980여 명이 정진야학에서 배웠다. 그 가운데 860여 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난 37년 동안 오직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봉사로 학교를 운영해 왔다. 공무원, 교수, 교사, 학생, 직장인, 주부, 외국인 등이 이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웠다. 빛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정진야학을 만들고 가꾸고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싣는다. (편집자)

① 지역 주민 가르치는 청년 공무원

② 야학에서 교사의 참맛을 느끼다

③ 제천 시민을 가르친 미국인 야학 교사

④ 학생들에게 청춘을 바친 평생 야학교사

⑤ 한글을 모르니까 평생 막일만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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