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가꾼 정진야학] 에필로그

전편 : ① 지역 주민 가르치는 청년 공무원

② 야학에서 교사의 참맛을 느끼다

③ 제천 시민을 가르친 미국인 야학 교사

④ 학생들에게 청춘을 바친 평생 야학교사

⑤ 한글을 모르니까 평생 막일만 한 거야

⑥ 야학 교사가 된 야학 졸업생

평일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충북 제천시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2층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이곳에는 제천 유일의 검정고시 야간학교 정진야학이 있다. 1986년 개교한 정진야학은 지난 37년 동안 오롯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로 운영됐다. 1986년 이래 지금까지 1980여 명이 정진야학에서 배우고, 그 가운데 860여 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단비뉴스>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정진야학 교사들과 학생들을 만났다. 그 내용을 6회에 걸쳐 ‘시민이 가꾼 정진야학’ 시리즈에 소개했다. 빛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야학을 만들고 가꾸고 지켜온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 기사에 소개한 정진야학 구성원들의 근황을 전하며 ‘시민이 가꾼 정진야학’ 연재를 마친다.

 김서진 제천시 주무관이 정진야학 중등부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김서진 제천시 주무관이 정진야학 중등부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정진야학 교사 중 가장 어린 김서진 제천시 노인장애인과 주무관은 매주 금요일 저녁 정진야학에서 중등부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김 주무관이 가르친 어느 학생은 지난 8월 치른 검정고시 시험에서 국어 과목에 합격했다. 그 학생은 시험을 통과한 뒤에도 ‘더 공부하고 싶다’며 야학 수업에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 김 주무관은 아버지인 김창순 제천시 건설과 과장과 함께 ‘KT희망나눔인상’을 받았다. KT희망나눔인상은 나눔을 실천해 아름다운 사회 가치를 만드는 데 기여한 이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나눔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KT그룹 희망나눔재단이 지난 2021년 제정한 상이다. 그 상을 정진야학의 ‘부녀 교사’가 함께 받은 것이다. 아버지인 김 과장 역시 1992년부터 정진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현재는 정진야학 교장직을 맡아 중등부 수학을 담당하고 있다. 김 주무관은 “야학에 오래 근무하신 아버지는 이런 (봉사와 관련한) 상을 여러 번 받아보셨지만 저는 처음이라 얼떨떨하면서도 좋았다. 이번 수상으로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정진야학을 알고 찾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진모 교사가 충북 청주 금천고등학교 정문 앞에 서 있다. 김은송 기자
장진모 교사가 충북 청주 금천고등학교 정문 앞에 서 있다. 김은송 기자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 동안 정진야학에서 과학과 영어를 가르친 장진모 교사는 본업인 고등학교 교사 일에 열중하고 있다. 장 교사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를 맡아 학생들과 더불어 수능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청주의 한 야학에서도 5년여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장 교사는 언제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야학으로 돌아갈 마음이다. 장 교사는 ‘시민들이 가꾸는 정진야학’ 기사를 계기로 정진야학에서 함께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사들이 한데 모여 밀린 회포를 풀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제천에 살던 매튜 위더스푼의 모습. 매튜 위더스푼 제공
2000년대 초반 제천에 살던 매튜 위더스푼의 모습. 매튜 위더스푼 제공

정진야학 개교 이래 유일한 원어민 교사였던 매튜 위더스푼은 고향인 미국 워싱턴주 리치랜드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매튜는 집 근처에 위치한 핵 시설에서 작업자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기술자 겸 감독관으로 일한다. 요즘에는 아내와 함께 학교에서 발리볼 선수로 활동하는 딸의 경기를 자주 보러 다닌다. 매튜의 아내와 딸은 최근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 매튜는 일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가까운 미래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곤 교사가 정진야학에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이상곤 교사가 정진야학에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정진야학이 태동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야학을 지켜온 이상곤 교사는 일주일에 이틀은 정진야학, 하루는 단양야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 교사는 퇴직 후 농부의 삶을 살고 있는데, 최근에는 제천에 있는 밭에서 농사지은 들깨를 수확했다. 이 교사는 정부가 지원하는 지역 활성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단양에서 농사짓는 이들과 새로운 영농조합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동금 할머니가 자택 앞 도로에서 웃고 있다. 목은수 기자
김동금 할머니가 자택 앞 도로에서 웃고 있다. 목은수 기자

정진야학 교사와 학생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만학도 김동금 할머니는 집을 수리하느라 한동안 야학에 나가지 못했다. 지난 8월 치른 검정고시에서는 사회와 국사 두 과목에 겨우 합격했다.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김 할머니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마음만큼 기억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웃었다. 요즘에는 사고 후유증으로 아픈 눈이 다시 말썽이다. 야학에 가는 길에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보면 시야가 흐려지고 어지러워 집을 나서기 어렵다. 낮이 다시 길어지는 계절이 돌아올 때까지 김 할머니는 야학을 쉴 예정이다. 대신 집에서 쉬엄쉬엄 공부하고 독서하며 제천의 추운 겨울을 지내려 한다.

정종근 교사가 정진야학 교무실에서 학생들의 검정고시 지원서를 살펴보고 있다. 김은송 기자
정종근 교사가 정진야학 교무실에서 학생들의 검정고시 지원서를 살펴보고 있다. 김은송 기자

한때 정진야학에서 공부했고 이제는 정진야학 교사가 된 정종근 씨는 낮에는 시멘트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 고등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8월 정 씨는 정진야학 교장인 김창순 제천시 과장과 함께 검정고시 시험장에 따라가 학생들을 격려했다. 정 씨의 학생 중 서너 명이 수학 과목에 합격했다. 오는 28일 정진야학 교사와 학생들은 다 함께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생업과 공부로 지친 몸과 마음에 바람을 쐬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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