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충북 55개 지역농협 정관 개정 상황 등 전수조사

<단비뉴스>는 지난달 29일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농협 조합장의 갑질 논란을 보도했다. 직원들에게 100만 원 상당의 바자회 티켓을 강매하는가 하면 운전을 하거나 물건을 배달하는 등 잔심부름을 시키는 등 갑질을 했다고 주장하며 노조가 벌이는 파업은 12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대상이 된 홍성주 봉양농협 조합장은 37년째 집권하고 있다. 조합장의 임기는 4년으로 10번이나 연임에 성공한 건데, 홍 조합장은 11선인 박준식 서울 관악농협 조합장 다음으로 전국에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004년 농협법이 개정돼 비로소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지만, 지역농협별로 정관을 바꾸면 무제한 조합장을 연임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뒀다. 그동안 농협 조합장의 장기집권이 부패나 갑질 등 각종 폐단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은 많았다. <단비뉴스>는 충북도내 55개 지역농협을 전수조사해 얼마나 많은 농협이 정관을 바꿔 연임 제한 규정을 피해 갔고, 이들 가운데 몇 명이 실제로 장기집권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현상의 원인과 문제점은 뭔지 짚어봤다.

선거 직전 ‘무제한 연임’ 정관 개정

농협법에 따라 지역농협 조합장은 두 번 연임해 3선까지만 일할 수 있다. 다만 중임에는 제한이 없다. 그런데 지역농협의 자산총액이 2500억 원을 넘으면 의무적으로 조합장의 지위를 비상임으로 전환해야 하고, 이 경우 비상임 조합장은 연임 제한 규정을 받지 않는다. 조합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조합장의 비대해지는 권한을 막기 위해 이사 가운데 한 명 이상을 상임으로 바꿔 경영을 맡기면, 조합장은 굳이 연임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단비뉴스>가 조사한 충북도내 55개 지역농협 가운데 자산총액이 2500억 원이 넘어 의무적으로 비상임 조합장으로 전환한 농협은 15곳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40곳은 상임 조합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교적 작은 농협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20%인 8곳이 정관을 개정해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전환했다. 결국 비상임 조합장 농협만 모아놓고 보면 3분의 1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정관 개정을 한 셈이다.

조합장을 반드시 비상임으로 전환해야 하는 곳은 충북도내 지역농협 55곳 가운데 15곳밖에 되지 않았지만 8곳은 의무가 없었는데도 정관을 바꿨다. 그래픽 박시몬
조합장을 반드시 비상임으로 전환해야 하는 곳은 충북도내 지역농협 55곳 가운데 15곳밖에 되지 않았지만 8곳은 의무가 없었는데도 정관을 바꿨다. 그래픽 박시몬

그런데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바꾼 8개 농협 중 4곳이 이미 3번 이상 당선돼 더는 출마가 어려워지자 다음 선거 직전에 비상임으로 정관을 바꿨다. 김성태 제천시 백운농협 조합장과 이길웅 남청주농협 조합장은 세 번 연임한 상태에서 2019년 선거를 한 해 앞두고 2018년 정관을 바꿔 현재까지 5선을 기록했다. 음성군 감곡농협 권태화 전 조합장도 임기를 세 번 이어간 뒤 2018년 정관을 바꿔 4선에 성공했다.

다만 심복규 전 동충주농협 조합장은 2020년 정관을 바꿔 4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봉양농협의 경우 홍성주 조합장은 농협법이 개정될 당시 이미 5선 조합장이었다. 그러나 개정된 농협법이 소급해서 적용되지는 않아 그 때부터 세 번 더 당선될 수 있었지만 2006년 일찌감치 비상임으로 정관을 개정했다. 2007년 선거를 한 해 앞둔 시점이었다.

조합장이 비상임인 농협 조합만 따졌을 때 의무가 없는데도 정관을 개정한 곳은 전체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래픽 박시몬
조합장이 비상임인 농협 조합만 따졌을 때 의무가 없는데도 정관을 개정한 곳은 전체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래픽 박시몬

무리하게 정관 바꾸려다 분란도

조합장이 선거를 앞두고 비상임으로 정관을 바꾸려다 조합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2018년 2월 김병국 전 서충주농협 조합장은 선거 직전 정관을 바꾸려다 실패해 이듬해 선거에 나서지 못했다. 김 전 조합장은 당시 이미 5선이었는데, 농협법이 바뀌기 전 두 번 당선됐고 법이 바뀐 뒤에는 세 번 당선돼 더는 출마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서충주농협 조합원 A는 “김 조합장이 대의원총회에서 조합장 권한으로 정관을 비상임으로 개정하는 안이 가결됐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었다”며 “조합원들이 농협중앙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에야 김 조합장이 다시 총회를 열어 ‘절차상 문제가 있어 부결하겠다’고 정리해 일단락됐다”고 회고했다. 현재 서충주농협의 조합장은 상임이다.

봉양농협에서도 반발이 있었다. 2006년 홍성주 조합장이 대의원총회를 거쳐 정관을 개정하자 조합원들은 홍 조합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대의원이었던 김준철 씨는 “농협이 각종 경제사업을 하고 있어 조합장은 지역에서 권한이 큰데 비상임 조합장이 되면 연임에 제한도 없어 문제가 크다”며 “당시 지역에 있는 농민단체들도 함께 반발했다”고 말했다.

당시 홍 조합장은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직위를 비상임으로 바꾼 뒤 제천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한나라당 공천 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상임 조합장은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직해야 하지만 비상임 조합장은 그렇지 않다. 2014년에도 홍 조합장은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제천시장 후보로 출마한 홍성주 봉양농협 조합장.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나섰다. 그는 당시 MBC충북을 통해 방송된 후보자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MBC충북 자료화면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제천시장 후보로 출마한 홍성주 봉양농협 조합장.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나섰다. 그는 당시 MBC충북을 통해 방송된 후보자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MBC충북 자료화면

상임·비상임, 권한과 대우 실질적 차이 없어

비상임 조합장 제도는 1999년 도입됐는데, 2004년 법 개정으로 상임인 경우에만 연임을 두 번까지로 제한했다. 이전까지는 상임과 비상임 구분 없이 연임 제한이 없었다. 그러다가 농협의 규모와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상임 조합장은 연임을 규제할 필요가 제기됐는데, 비상임 조합장은 상대적으로 권한이 작다며 연임 제한을 두지 않았다.

지역농협의 자산총액이 2500억 원을 넘어 의무적으로 비상임 직위로 전환되면 조합장은 금융업무를 할 수 없다. 농산물 가공과 판매를 비롯한 경제사업, 조합원 대상 교육과 복지후생 사업 등 지역농협의 다른 주요 업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하는 고시에 따라 상임이사와 실무 권한을 나눠 갖는다.

반대로 자산총액이 2500억 원을 넘지 않는데도 굳이 정관을 고쳐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바꾸면 금융업무는 물론 경제 업무를 비롯한 모든 실무 권한이 상임이사에게 넘어간다. 이 경우 조합장은 조합원을 대표하는 권한만 갖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런 농협법의 취지는 현실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지역농협 현장에서 비상임 조합장의 권한은 상임 조합장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지웅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일반적인 기업과 달리 일상적인 업무가 이사회와 대의원회의를 통해 이뤄지는 곳이 조합”이라며 “조합장이 이들을 대표해 의사결정을 주도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결재를 상임이사가 하더라도 결정된 내용에 서명할 뿐”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이사와 대의원도 모두 조합원이다.

억대 연봉에 상임이사 인사권까지…관용차 두기도

상임이사의 인사권을 사실상 조합장이 쥐고 있는 문제도 있다. 조합장이 인사추천위원장으로 상임이사를 지명해 추천하면 대의원총회에서 투표를 거쳐 임명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상임이사는 ‘꼭두각시’에 비유되기도 한다.

비상임 조합장이 누리는 대우도 상임과 차이가 없다. 조합장의 급여는 상임이냐 비상임이냐에 구애받지 않고 지역농협마다 자체적으로 정한다. 경제 규모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작은 농협이라도 연봉을 1억 원 넘게 받는 경우가 많다. 업무추진비까지 더하면 2억 원에서 2억 5천만 원 정도 받는 셈이다. 조합에 따라 조합장의 업무를 위해 관용차를 마련하기도 한다.

동충주농협 관계자는 “상임이나 비상임이라고 조합에 이익이 되거나 할 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봉양농협 관계자도 “규모가 작더라도 전문경영인이 필요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말만 ‘비상임’일 뿐 권한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건) 애초 농협법을 개정할 때부터 어느 농협이든, 누구나 다 아는 얘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성주 봉양농협 조합장은 비상임으로 정관을 바꾼 것에 장기집권 목적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홍 조합장은 “상임 조합장은 종일 사무실에 앉아 건건이 업무를 봐야 한다”며 “운신의 폭을 넓혀 대외적인 활동을 하려고 정관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고추산업연합회 회장으로 지금도 한 달에 열흘 정도 출장을 갈 정도로 대외활동이 많다”고 말했다.

“비상임도 3선까지 제한” 법안도 발의돼

농협과 수협, 산림조합은 2015년부터 조합장 선거를 할 때 선거관리위원회에 관리를 위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농협과 산림조합은 비상임 조합장의 연임 제한이 없다. 수협은 상임 조합장은 3선 연임까지 가능하고, 비상임 조합장은 오히려 상임보다 짧게 재선까지만 허용된다. 상임 조합장은 경영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위해 3선까지 근무할 필요가 있지만 비상임 조합장은 권한이 작은 만큼 굳이 길게 연임할 필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수협은 전국 91개 조합 가운데 3곳만 비상임 조합장 체제다. 수협은 자산총액 기준 없이 자율적으로 상임이나 비상임을 선택할 수 있는데, 무제한 연임 같은 유인이 없는 만큼 비상임을 많이 선택하지는 않는 것이다. 곽도진 해양수산부 수산정책과 주무관은 “하지만 최근에는 농협이나 산림협동조합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와 비상임도 상임처럼 두 번까지 연임할 수 있도록 임기를 늘리는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개정안에 긍정적이다,

지역농협의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제한하는 방안은 이미 국회에 여러 법안이 제출돼 있다. 지난달 14일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명이 발의한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안은 상임과 비상임 구분 없이 연임을 두 번으로 제한해 3선까지만 연임할 수 있게 했다. 21대 국회에서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은 4건이 계류 중이다.

지난해 10월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안 개정안을 보면 “상임조합장과 유사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친인척 채용 비리,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폐단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장기집권으로 인한 문제 해결”을 위해 법안을 발의한다고 제안이유가 설명돼 있다.

지난해 10월 윤재갑 의원이 대표발의한 농협법 개정안. 개정안의 제안이유에 ‘비상임 조합장의 영향력이 상임과 유사하다’고 설명돼 있다. 윤재갑의원 대표발의안 갈무리
지난해 10월 윤재갑 의원이 대표발의한 농협법 개정안. 개정안의 제안이유에 ‘비상임 조합장의 영향력이 상임과 유사하다’고 설명돼 있다. 윤재갑의원 대표발의안 갈무리

이지웅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농협 안에서 비판이 누적됐었다”며 “발의된 내용은 국회에서 이런 의견을 수렴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이 통과되더라도 3선 이상 재임 중인 조합장들이 다음 선거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연임을 한 상태라도, 법 개정 시점을 최초 임기로 보고 앞으로 두 번 더 연임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지금 10선인 조합장의 경우 12선까지는 가능한 셈이다.

이동기 농림부 농업금융정책과 사무관은 “비상임 조합장의 임기를 제한하는 법은 이미 20대 국회 때부터 법안이 많이 제출됐었다"며 "정부에서도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고 있고, 국회에서 논의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파업 한 달째, 더 이어질 수도

이런 가운데 봉양농협 노조의 파업은 장기화할 수도 있어 보인다. 파업을 벌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노조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협상을 하고 있다. 결렬되면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받아야 한다.

지난 8일 '10선 조합장'을 배출한 뒤 노조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충북 제천 봉양농협. 박시몬 기자
지난 8일 '10선 조합장'을 배출한 뒤 노조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충북 제천 봉양농협. 박시몬 기자

봉양농협은 그때까지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안경수 봉양농협 상임이사는 “파업하고 있는 노조가 다른 노조를 해산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그렇게는 못 한다고 하니 ‘그럼 계속 파업하겠다’고 하는데 대화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자가 노조를 해산하려 하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파업이 시작되자 봉양농협 측이 노조를 무력화하려고 간부급 직원들을 시켜 한국노총 산하 노조를 급조했다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 안병기 사무금융노조 봉양농협분회장은 “한국노총 노조를 해산해 달라고 말한 것은 아니”라며 “봉양농협이 한국노총을 만들어 대화를 피해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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