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민선 8기 김창규 제천시장 공약 확정 내역 분석

지난해 6.1 지방선거로 취임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민선 8기 공약사업을 확정했다. 아직도 세부적인 추진안을 논의 중인 정책도 일부 있지만 예산 편성을 마친 올해부터 본격적인 공약 이행에 나선다. <단비뉴스>가 위치한 제천시의 공약은 선거 때와 비교해 후퇴하지 않았는지, 추진 과정에서 우려될 만한 점은 없는지 점검하기 위해 제천시가 지난해 하반기 세 차례 걸쳐 공약을 검토한 문건을 확보해 들여다봤다.

김창규 제천시장은 임기 4년 동안 추진할 49개 공약을 발표했다. 몇 가지를 제외하면 못 지키겠다고 삭제한 공약은 거의 없었고, 반대로 선거 과정에서 약속하지 않았는데 취임 뒤 은근슬쩍 검토 대상에 올려둔 공약도 없었다. ‘3조 원 투자유치’를 비롯해 주요 공약의 목표치를 낮추지도 않았다. 하지만 면밀한 검토 없이 국가기관 유치를 계획하거나 지역 의료계가 반대하는 방식의 공공의료 확충을 공약해 추진 과정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7월 1일 취임한 김창규 충북 제천시장. 사진자료 제천시
지난해 7월 1일 취임한 김창규 충북 제천시장. 사진자료 제천시

투자유치 ‘3조 원’ 목표치 그대로 추진

김창규 제천시장은 취임 뒤 실무부서와 공약 검토 과정에서 ‘시민과 약속’을 여러 번 강조했다. 김 시장은 “추진부서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며 “어려운 사업도 대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민선 7기 실적의 두 배를 달성하겠다며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3조 원 투자유치’는 목표치도 수정하지 않았다. 다만 산업체 투자만으로 3조 원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개발과 공공기관 유치를 통해 1조 원을 채우겠다고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

외교관 경력을 살려 ‘외국기업특화도시’를 만들겠다며 내놓은 외국기업 유치 목표는 임기 안에 3개 기업으로 구체화했다. 제천시는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친환경에너지인 청록수소 개발 기업 ‘모놀리스 머티리얼스’(Monolith Materials)와 협상하고 있다. 가시적인 투자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제천시는 2000억 원 규모 공장 유치를 기대하고 있다. 김창규 시장은 지난해 10월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리비아 등 중동지역에서도 투자유치를 논의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봉 제천시 투자유치과장은 <단비뉴스>와 통화에서 “제1, 2산업단지에 있는 유휴부지 3만 7천 평에 국내 기업 유치를 우선하고, 외국인투자유치 조례를 마련하는 게 올해 목표”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조례 내용은 만들고 있다”며 “국내 기업보다 많은 혜택을 줘 역차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4, 5 산업단지는 2028년과 2030년 순차적으로 준공할 예정이어서 제천시는 산업단지가 아니더라도 유치 기업의 입지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공기업법상 설치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논란을 부른 ‘무역투자진흥공사’ 설립은 일단 속도 조절에 나섰다. 6급 상당 임기제 공무원인 무역투자진흥관 1명을 채용하고, 수출에 관심 있는 기업을 발굴하는 등 수출산업 생태계를 먼저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설립 타당성을 검토해 결과를 공개하고 주민공청회까지 거친 뒤 2025년에야 본격적인 설립 추진에 나선다.

제천시가 ‘민선8기 공약사업 실행계획서’를 통해 공개한 투자유치 목표. 임기 말에 이를수록 더 많은 산업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제천시가 ‘민선8기 공약사업 실행계획서’를 통해 공개한 투자유치 목표. 임기 말에 이를수록 더 많은 산업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관광개발은 민선 7기와 달리 민간자본 투자 중심으로 계획했다. 레저를 중심으로 한 청풍호 관광단지 조성에 2810억 원, 금성면에서 청풍랜드까지 이어지는 길이 10킬로미터(km) 호숫가 관광열차 설치에 1700억 원, 의림지 한옥호텔 건설에 800억 원 등 민간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제천시가 공약 이행을 위해 4년 동안 필요한 돈은 1조 5천억 원이다. 가장 많은 예산 분야가 관광개발로 전체의 절반가량인 7400여억 원이 배정됐고 이 가운데 대다수인 6000여억 원이 민간자본이다.

김창규 시장은 국비와 도비를 제외하고 제천시 예산만 1200억 원 넘게 투입되는 농경문화 테마파크인 ‘드림팜랜드’ 조성 사업을 ‘소비행정’이라고 부르면서 후보 시절부터 지자체 직접 투자의 위험성과 예산 낭비를 비판해 왔다. 사업지 마련을 위한 농경지 매입이 한창 진행되던 드림팜랜드는 사업이 중단된 채 반년 넘게 경제성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제천시는 민선 8기 충청북도의 대표 공약인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사업과 맞물며 청풍호를 집중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사진자료 제천시
제천시는 민선 8기 충청북도의 대표 공약인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사업과 맞물며 청풍호를 집중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사진자료 제천시

청소년 복지는 선별복지 강화로

제천시는 ‘청소년 역량 강화 교육비’ 공약을 통해 13살에서 18살 사이 청소년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1200여 명에게 예체능과 직업기술 분야 학원비로 연간 20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는 3월부터 지급이 이뤄져야 하지만 공약사업 확정 발표 이후 선별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대상자를 200명으로 줄이는 대신 지원금액을 종전의 10배인 200만 원으로 늘려 실효성을 키운다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소득이 더 낮은 순으로 대상자가 결정된다. 최종 계획은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다.

청소년 교육비 지원 공약은 애초 보편적 지급 방안이 검토됐다. 비슷한 목적의 사업이 이미 지난해부터 보편복지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천시 청소년 수당인 ‘꿈모아바우처’는 9살에서 18살 사이 모든 청소년에게 나이대에 따라 연간 최대 10만 원을 주는 사업으로 제천시와 가맹계약을 맺은 독서실이나 문구점을 포함해 예체능학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꿈모아바우처는 지원금액을 연간 28만 원으로 늘리자는 안이 검토됐다. 하지만 수혜 대상자가 1만 명이 넘어 필요 재원은 연간 31억 원으로 추산됐다. 김창규 시장은 “보편적 복지로 확대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지만 재정적 현실에 맞게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선별복지로 계획을 바꾼 뒤 필요한 예산은 연간 4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여성 청소년에게는 월 1만 2000원씩 생리대 비용 지원이 검토됐지만 최종 공약에서 빠졌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중 9살에서 24살 여성을 대상으로 정부가 선별복지를 지원하고 있는데, 대상이 아닌 계층은 지자체에서 지원해줘 보편적 복지로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필요 예산은 연간 13억 원으로 추산됐다.

지자체 가운데 이 사업을 추진한 곳은 경기도다. 2021년부터 사업을 하고 있다. 제천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예산도 문제지만 경기도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결제할 때도 생리용품만 살 수 있도록 자체적인 전자바우처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따라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도시가스 공급 확대 공약도 당장 공사를 추진하기에는 어려워 도시가스 미공급지역에 에너지바우처 10만 원 지급이 대안으로 검토됐지만 최종 공약에서 도시가스 확대 계획 자체가 삭제됐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바우처 카드와 관리시스템. 포인트 형태로 복지수당을 지급하면 사용자는 판매점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지정된 품목의 재화만 결제할 수 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바우처 카드와 관리시스템. 포인트 형태로 복지수당을 지급하면 사용자는 판매점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지정된 품목의 재화만 결제할 수 있다.

공공기관 유치, 설득력 있는 논리 제시해야

‘국립중부권생물자원관 유치’는 생물다양성 연구와 보전을 위해 환경부가 설치한 국립생물자원관을 제천에 유치한다는 공약이다. 직원 150명 정도 규모에 사업비 800억 원의 사업으로 2020년부터 지역발전을 위해 추진한 핵심 사업이라며 제천시의 기대가 크다. 김창규 시장은 지난해 5월 KBS가 주관한 TV토론회에 출연해 상대 후보인 이상천 당시 시장과 이 사업을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를 두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취임 뒤에는 공약 검토 과정에서 “경쟁 지자체보다 늦을 것”을 우려하며 “서둘러 추진”하라고 관련 부서에 지시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중부권생물자원관을 세울 계획이 없다. 현재 생물자원관은 인천광역시의 ‘국립생물자원관’과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전라남도 목포시에 자리한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이 있다. 5년마다 작성하는 생물자원관 기본계획에 따라 강원도 인제군에 DMZ평화생물자원관 설립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중부권생물자원관도 제천시가 자체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권정현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사무관은 “생물자원관은 담수생물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낙동강자원관과 섬, 연안을 연구하는 호남권자원관처럼 기능과 역할이 구분돼 있을 뿐, 지역이나 권역별 연구가 필요해서 설치하지는 않는다”며 “기본계획에 있는 DMZ평화생물자원관 외에 추가 설립을 검토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TV토론회에서 두 후보는 국립중부권생물자원관 설립 문제를 놓고 잠시 설전을 벌였다. KBS
지난해 5월 TV토론회에서 두 후보는 국립중부권생물자원관 설립 문제를 놓고 잠시 설전을 벌였다. KBS

제천시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진 않다. 이준용 제천시 자연보전팀장은 이번 공약을 검토하면서 환경부와 협의하지는 않았다면서 “환경부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테지만 제천시는 지역발전, 균형발전을 위해 사업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며 “지금 사업 계획이 없어도 선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현실성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제천시는 지역 국회의원을 통해 정부에 설립 필요성을 설득하고 2026년부터 적용되는 2차 생물자원관 기본계획에 중부권생물자원관을 반영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치권을 통한 설득도 자체보다 설득력 있는 논리가 더 중요하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유치하려는 사업이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된다’,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논리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며 “사업의 상대방이 추구하는 방향에도 도움이 되는 논리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 확충방안 신중히 결정해야

공공병원을 짓는 방안과 민간병원을 지원해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한 김창규 시장은 결국 공공병원을 짓는 방향으로 최종 공약을 확정했다. 300병상 규모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이나 공공의료원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예상 사업비는 국비를 중심으로 1500여억 원이다. 다만 정부와 협의 절차와 설립 타당성을 검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정상적으로 추진돼도 최소 8년이 걸려 2030년 개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선 8기 공약사업 사전검토서’를 보면 공공병원 건립은 최초 공약 검토 때도 부정적이었다. 제천시의 인구 대비 의료기관·병상 수는 충북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청주보다 많다. 일반적인 질환 때문이라면 치료받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응급사망과 뇌혈관 사망 비율은 청주보다 높다. 굳이 병상 수를 늘릴 필요는 없고, 의료기관의 수익성은 낮아도 환자의 생명과는 직결되는 ‘필수의료’ 서비스를 강화하면 된다는 뜻이다.

민선 8기 공약사업 사전검토서에 인용된 자료 일부. 제천시는 인구 대비 병상 수는 많고 응급사망 비율은 높게 나타난다.
민선 8기 공약사업 사전검토서에 인용된 자료 일부. 제천시는 인구 대비 병상 수는 많고 응급사망 비율은 높게 나타난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공공병원은 적자를 제천시가 감당하기 어렵고, 수익성이 없어 심뇌혈관 질환을 다루는 전문의를 구하기 어려우면 애써 만든 공공병원이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제천명지병원은 2021년 중증응급의료센터와 심뇌혈관센터 공사에 들어가 올해 완공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보고서에는 명지병원의 전문의 인건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심뇌혈관질환센터 운영비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이 과제로 제시됐지만 최종 확정된 공약에서 제외됐다. 지역책임의료기관 지정 추진도 보건복지부의 권한이라며 공약 목록에서 빠졌다.

김창규 시장은 지난해 7월 열린 공약사업 검토보고회에서 “공약은 정치적인 요소도 지닌 사항으로 행정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동시에 고려”하라며 ‘공공병원 유치 등 의료서비스 확충’ 공약을 예시로 들었다. 김 시장은 지난해 5월 선거를 치르기 일주일 전 “더불어민주당 이상천 후보가 공공의료 확충 기회를 걷어찼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2021년 12월 정부의 공공병원 수요조사에 제천시가 확충 계획이 없다고 회신했다는 것이다. 김 시장은 며칠 뒤인 선거운동 마지막 날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지원 유세 때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2021년 11월 열린 제천명지병원 중증응급의료센터와 심뇌혈관센터 기공식. 명지병원이 자발적으로 필수의료 분야에 투자했다. 올해 3월 문을 열 예정이다. 단비뉴스 자료사진
2021년 11월 열린 제천명지병원 중증응급의료센터와 심뇌혈관센터 기공식. 명지병원이 자발적으로 필수의료 분야에 투자했다. 올해 3월 문을 열 예정이다. 단비뉴스 자료사진

2021년 9월 공공병원 유치 대신 심뇌혈관 치료 등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쪽으로 제천시와 정책 방향을 협의했던 최성호 ‘제천·단양공공의료강화대책위원회’ 정책위원은 “공공병원이 들어서더라도 심뇌혈관센터까지 갖춘 4∼500병상 규모의 큰 병원이 건립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명지병원에 심장내과 전문의가 있지만 1명밖에 없어서 적어도 2명이 더 필요한데 제천시가 지방비를 지원해 의료인력을 유치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최 정책위원은 그러면서 “김창규 당시 당선자의 시장직인수위원회와 이 문제를 협의했을 때 김 당선자도 방식은 어찌 됐든 의료공공성을 높이는 데 공감했었다”며 “김 시장이 공공병원 신규 건설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비뉴스는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초부터 단비뉴스가 있는 충북 제천을 중심으로 민선 지자체장들의 공약 이행상황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도하고 있다. 앞으로도 민선 지자체장들이 공약을 계획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꾸준하게 점검해서 보도할 계획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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