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조합장 전면 부인… “상황 지켜본 뒤 경찰에 고소”

토요일이었던 지난 25일 낮 하나로마트 정문은 닫혀 있었다. 마트를 찾은 주민들은 노사 단체협상 중인 관계로 주말에는 휴업한다는 안내문을 읽고 발걸음을 돌렸다. 마트 오른편에는 천막이 있었고 그 안에는 노조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조합장이 갑질을 했다고 비판하며 지난 22일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협 건물 양옆에는 조합장의 갑질을 규탄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지난 8일 충북 제천시에서 전국적으로도 드문 ‘10선(選) 조합장’이 배출됐다. 홍성주(70) 봉양농협 조합장은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당선되며 충북도 최다선 조합장이 됐다. 그는 1988년 35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조합장에 당선됐고 올해로 37년째 조합장직을 계속하게 됐다. 그러나 ‘10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재, 홍 조합장은 ‘갑질’ 의혹을 제기하는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25일 제천시 봉양읍의 한 주민이 농협 정문에 붙어 있는 휴업 안내문을 읽고 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 25일 제천시 봉양읍의 한 주민이 농협 정문에 붙어 있는 휴업 안내문을 읽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제천 봉양농협 하나로마트 옆에는 지난 22일부터 농성 천막이 설치됐다. 박시몬 기자
제천 봉양농협 하나로마트 옆에는 지난 22일부터 농성 천막이 설치됐다. 박시몬 기자

조합장만 37년째… “안 군, 이 양, 머스마들이라 불렀다” 주장도

홍 조합장은 37년째 봉양농협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노조는 홍 조합장이 사적 업무에 직원을 동원해 운전과 배달 같은 잔심부름을 시켰다고 주장한다. 노조 분회장인 안병기 씨는 “조합장이 50대 남자 직원은 ‘안 군’ 등으로 부르고, 여자는 ‘이 양’, ‘최 양’ 등으로 불러 모멸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10년째 조합에서 근무하면서 노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대환(47) 씨는 조합장이 40대 이하 직원을 찾을 때는 “‘머스마들 어딨냐’고 했다”고 말했다.

홍 조합장의 10선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비상임 조합장이기 때문이다. 농업협동조합법은 조합장의 임기를 4년으로 정하고 상임 조합장은 2차에 한해서만 연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농협은 자산총액이 2천 500억 원 이상일 경우 조합장을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으로 둘 수 있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린 지난 8일 봉양농협에서 ‘10선’ 조합장이 나왔다. 박시몬 기자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린 지난 8일 봉양농협에서 ‘10선’ 조합장이 나왔다. 박시몬 기자

노조는 홍 조합장이 자신이 활동하는 봉사단체의 티켓을 강매한 일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홍 조합장은 사단법인 ‘사랑의 징검다리’의 제천시 지부 운영위원장으로 연탄 봉사를 해왔다. 홍 조합장은 연탄 구입을 위한 바자회 티켓 100장을 사업장별로 나눠 1장당 만 원씩 직원들에게 구매하게 했다. 티켓을 산 50대 직원은 “어린 직원이 티켓을 사지 않게 하려고 대부분 40~50대 선배들이 돈을 모아 티켓을 샀다”고 주장했다.

김대환 씨는 7년 전부터 홍 조합장의 운전을 담당했다고 말한다. 자재 배달 업무를 주로 하던 김 씨는 조합장의 출장이 잡히면 운전을 했다. 작업 복장에 목장갑을 뒷주머니에 넣은 채로 운전대를 잡은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출장은 서울과 같은 장거리였다.

조합은 3년 전 관용차를 마련했다. 그전에는 홍 조합장의 차가 고장이 잦아서 김 씨의 차로 운전하는 일도 많았다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는 자기 차로 조합장을 태우고 출장을 다녀온 뒤 농협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려고 했지만, 농협 상무가 눈치를 줘 기름을 넣지 못한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출장을 다녀오면 출장비로 1만 원 정도를 받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지난 22일 제천 봉양농협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봉양농협 노조원들이 앞줄에 앉아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 22일 제천 봉양농협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봉양농협 노조원들이 앞줄에 앉아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 2021년 1월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A 씨는 김 씨를 이어 홍 조합장의 운전기사 역할을 했다. 직원은 입사 후 조합에서 업무분장을 해주는 대로 일을 하지만 운전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A 씨는 자기 고유 업무와 함께 운전도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지난 2년간 서울에 있는 농협중앙회, 양재동 양곡유통센터, 1박 2일 부산 조합장 회의처럼 조합과 관련이 있는 일정은 물론 대전에 있는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청년 캠프, 조합원 가족의 장례식 같은 개인적인 일정까지 함께 다녀왔다. 부산 조합장 회의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같은 방에서 여럿이 자고 싶지 않아 지인의 집에서 잠을 잤다. A 씨는 행사장에서 조합장의 사진을 찍고 답례품도 챙겨 조합장에게 건넸다.

초과근무가 잦았던 A 씨는 “처음부터 이에 상응하는 출장비를 받지 못했다”며 “지난해 3월 조합 측에 출장비를 요구한 뒤로 출장 때마다 2만 5천 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마트, 경제사업소, 주유소 등에서 근무하는 동안 줄곧 홍 조합장의 심부름도 했다. 조합장 앞으로 온 택배를 찾아다 주기도 했고, 조합장 지인에게 물건을 배달한 적도 있다. 조합장이 전화로 지시한 물품을 마트에서 꺼내 주차장 타이어 위에 올려두기도 했다. A 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메신저에는 홍 조합장의 심부름을 한 과정이 남아 있다.

지난해 10월 노조가 만들어지자마자 가입한 A 씨는 지난 2월 인사위원회로부터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통보 열흘 후, 총무과로부터 복직하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현재 A 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근무하고 있다. 계약만료 때나 무기계약직 전환 때나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홍 조합장이 A 씨에게 연락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문자에는 조합장의 택배와 물건 배달, 주유 지시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봉양농협 노조 제공
홍 조합장이 A 씨에게 연락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문자에는 조합장의 택배와 물건 배달, 주유 지시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봉양농협 노조 제공
홍 조합장과 A 씨가 카카오톡 메신저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이다. 행사 사진을 전달하거나, 전화로 지시받은 물품을 구입해 주차장 타이어 위에 올려놓은 사진, 운전수행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봉양농협 노조 제공
홍 조합장과 A 씨가 카카오톡 메신저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이다. 행사 사진을 전달하거나, 전화로 지시받은 물품을 구입해 주차장 타이어 위에 올려놓은 사진, 운전수행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봉양농협 노조 제공

“내가 한 일은 갑질 아닌 조합을 위한 일”

홍 조합장은 노조의 ‘갑질’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29일 낮 봉양농협 조합장실에서 <단비뉴스>를 만난 홍 조합장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노조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조합장은 먼저 연탄티켓 강매 주장에 대해 “티켓 구매를 강요한 적이 없고, 직원들은 그 티켓을 농산물로 바꿔 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홍 조합장은 그러나 “이웃을 돕기 위한 행사에 조합뿐만 아니라 주변 단체에도 티켓을 사도록 독려해왔다”고 말해 사실상 사람들에게 티켓을 사라고 말한 사실은 부인하지는 않았다.

직원에게 운전을 시킨 일에 관해서는 “35년 동안 운전기사를 채용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다녔다”며 “공적인 업무로 운전을 시켰을 때는 직원에게 용돈과 출장비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을 위해 잔심부름을 시킨 일은 한 번도 없었다”며, “이틀에 한 번꼴로 있는 조합원의 장례식 또한 공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행위는 조합과 농민을 위한 일이었지 노조가 주장하는 갑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노조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노조가 상여금과 학자금 등을 크게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조합장 갑질 문제를 들고나왔다고 주장했다.

“노조 가입하지 마”… 부인도 ‘부적절 언행’ 논란

갑질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홍 조합장만이 아니다. 실제로 봉양농협에 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9월 초 벌어진 홍 조합장의 부인과 일부 직원 사이의 갈등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 조합 측의 주장이다. 마트 뒤편에서 한 여성이 쓰레기봉투에 담아 놓은 상한 쪽파를 가져가려는 것을 신입직원 B 씨가 발견해 제지했는데 그 여성이 조합장 부인이었다고 당시 함께 근무했던 이미진 씨는 말했다. B 씨로부터 얘기를 들은 이 씨가 조합장 부인을 만류하자 그는 막말을 하며 직원들에게 쪽파와 두루마리 휴지를 던졌다고 이 씨는 말했다. 마트 안 CCTV에는 조합장 부인이 쪽파와 두루마리를 던지는 모습이 찍혀있다. 신입직원 B 씨는 입사 일주일도 안 돼 일을 그만뒀다.

조합장 부인이 이미진 씨와 이은지 씨를 향해 쪽파와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고 있다. 당시 이미진 씨는 도마 위에서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봉양농협 노조 제공
조합장 부인이 이미진 씨와 이은지 씨를 향해 쪽파와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고 있다. 당시 이미진 씨는 도마 위에서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봉양농협 노조 제공

조합 대의원이기도 한 조합장 부인은 일부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고 종용하며 인사이동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마트 여직원 D 씨에게 전화해 “노조에 절대 가입하지 말고 있으라고. 나중에 불이익당해”라고 말했다. 또 “내가 요번 연말에도 너 표창장 하나 주라고 (조합장에게) 벌써 얘기해 놨다”며 “너는 그냥 마트에 있고 싶지? 다른 부서 가고 싶은 데 있어?”라며 인사까지 거론하면서 회유하는 내용이 남아있다.

조합장 부인은 29일 <단비뉴스>와 통화에서 “직원이 딸 같아서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고 했다”고 통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부서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 될 수 있다.

지난 25일 봉양농협 노조원 이은지(왼쪽) 씨와 이미진(오른쪽) 씨가 농성 천막 안에서 시위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지난 25일 봉양농협 노조원 이은지(왼쪽) 씨와 이미진(오른쪽) 씨가 농성 천막 안에서 시위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조합과의 단체교섭이 잘 진전되지 않으면서 봉양농협 노조는 지난 15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22일에는 민주노총 충북본부가 봉양농협 앞에서 조합장의 갑질 의혹을 규탄하는 행사까지 열었다. 이런 와중에 조합에는 농협 간부 등 15명으로 구성된 한국노총 노조도 생겼다. 작은 지역 농협에서 단체교섭권을 놓고 두 노조가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민주노총 봉양농협 분회는 30일 농협중앙회 충북본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조합장이 고소하면, 노조가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인지가 법적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조용하던 지역이 시끌시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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