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농협 비상임조합장 연임제한 위헌성 논란 짚어보니

<단비뉴스>가 실태를 보도한 지역농협 비상임조합장의 무제한 연임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비상임조합장도 3선까지만 연임할 수 있게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새로운 규제를 적용할 시점이다. 올해 초 전국 동시선거로 새 조합장들이 임기를 시작했지만, 연임제한은 4년 뒤에 치러질 다음 선거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법을 만든 때보다 앞서 일어난 일에 새 규정을 적용해 불이익을 주면 ‘소급 입법 금지’라는 헌법 원칙을 어긴다는 것이다.

발의된 법안은 당장 현직부터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이었지만 상임위 수석전문위원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고 여기에 의원들이 동조하면서 수정됐다. 하지만 <단비뉴스>가 여러 헌법 전문가를 취재한 결과 이 법안의 위헌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전문위원실도 위헌성을 검토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농림부가 위헌이 아니라는 법률 자문 결과를 국회에 전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아무리 오래 연임한 조합장도 현재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 최대 16년이나 더 재직할 수 있게 됐다. 상임위가 충분한 검토 없이 입법 취지를 스스로 훼손한 채 법안을 의결한 셈이다.

늦어진 적용, 반세기 넘게 연임할 수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달 11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역농협 비상임조합장의 임기를 상임조합장과 마찬가지로 3선까지만 가능하도록 제한하기로 의결했다.

비상임조합장의 연임을 제한하는 법안은 2013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정부패와 갑질 등 폐단이 일어나고 있다며 연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결국 처음 법안이 나온 때부터 10년 만에 21대 국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한 것이다.

조합장이 직위를 비상임으로 전환하면 상임이사를 둬 경영을 맡겨야 하지만 실제로는 권한을 이전과 같이 행사하면서 연임 제한만 피해 간다는 비판이 컸다. 연봉과 의전 등 대우도 상임과 비상임조합장 사이 차이는 거의 없다. 비상임조합장이라는 제도가 사실상 조합장들이 장기집권을 위한 길이 됐던 셈이다.

그런데 비상임조합장의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하는 이번 법안이 조만간 본회의까지 통과한다고 해도 실제 적용 시기는 다음 선거 이후인 2027년이 된다. 이미 지난 3월에 일제히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현직 조합장이 4년 임기를 마친 뒤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때부터 다시 3선을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를 포함해 지금까지 연임한 경력은 전혀 계산하지 않는 경과규정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서 가장 길게 연임한 사람은 올해 82살인 박준식 관악농협 조합장으로, 무려 11선을 했다. 40년 넘게 재임하고 있다. 두 번째로 길게 연임한 사람은 홍성주 봉양농협 조합장으로 1988년 35살에 처음 당선된 뒤 이번까지 내리 10선을 기록했다. 이들은 법률 개정안이 적용되더라도 그때부터 세 번 더 연임할 수 있기 때문에 50년 이상씩 재임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긴 연임은 7선으로 전국에 7명이 있다.

지난 3월 치러진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 이후 비상임조합장 체제인 농협과 축협 488곳 가운데 조합장이 3선 이상 연임한 경우는 179곳으로, 전체의 36.7%나 되는 것으로 농협중앙회는 집계하고 있다. 조합장이 상임인 곳을 포함한 전국 1112개 조합 전체를 기준으로 볼 때 현직의 연임률은 62.3%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 위탁을 시작한 2015년 당시 53.4%에서 9% 포인트 가량 늘었다. 

현재 연임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는 448명의 농협 비상임 조합장만 놓고 보면 새로운 조합장으로 교체돼 초선인 곳은 32.6%로 전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 새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이들 초선은 최장 16년, 재선인 조합장은 20년까지 재직할 수 있다.

지역농협 비상임조합장 재임 현황. 새로운 조합장으로 교체된 경우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연임하게 됐다. 그래픽 김다연 기자
지역농협 비상임조합장 재임 현황. 새로운 조합장으로 교체된 경우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연임하게 됐다. 그래픽 김다연 기자

연임제한 법안 의결 미루다 위헌 논쟁

이번 21대 국회에서 비상임조합장의 연임을 제한하는 법안은 2021년 2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4건이 상정돼 있었다. 법안심사는 이번 회기에서 첫 발의안이 나온 지 2년 가까이 흐른 지난해 11월 시작했다.

법안은 현직 조합장부터 1선을 한 것으로 보고, 앞으로 두 번만 더 연임할 수 있게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정부를 포함해 의원들 사이 특별한 쟁점은 없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회장의 임기를 지금의 단임제에서 한 번 연임할 수 있도록 바꾸는 농협법 개정안과 묶어 함께 처리하기로 하면서 통과가 늦어졌다.

지난해 11월 열린 소위에서 윤준병 의원이 연임제한 법안이 상정되지 않은 것에 항의했다. 안건은 지난 3월에야 다시 상정됐다. 사진 출처 국회영상회의록, 그래픽 김다연 기자
지난해 11월 열린 소위에서 윤준병 의원이 연임제한 법안이 상정되지 않은 것에 항의했다. 안건은 지난 3월에야 다시 상정됐다. 사진 출처 국회영상회의록, 그래픽 김다연 기자

결국 법안은 올해 3월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다시 논의됐지만 이미 선거가 끝나 새로 선출된 조합장의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현행법에 따라 당선된 조합장에게 뒤늦게 새로운 법을 적용해 임기를 제한할 수 있느냐”는 논쟁이 일었다. 

2개월 뒤인 지난달 다시 논의를 거쳤지만 같은 논란이 되풀이됐다. 회의에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의는 선거를 앞두고 됐지만 통과된 것은 아니었다”며 “(이번에 당선된 조합장부터 적용하면) 법리적인 측면에서 (조합장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도 “법제사법위원회에 가서 (부결될까) 염려가 된다”며 “아예 그런 부분을 배제하는 것이 맞는다”고 장단을 맞췄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본회의에 올라가기에 앞서 법사위에서 법체계와 문안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4명 중 한 명인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법의 효용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고 항의하며 표결을 막았다. 하지만 소위원장인 같은 당의 김승남 의원은 일단 규제가 생기면 “지금 3선 조합장도 여론에 밀려 또 출마하는 데 부담이 간다”며 “그런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일단) 이 법이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표결을 강행했다.

지난달 11일 열린 소위원회 회의록 일부. 신정훈 의원이 거칠게 항의하는 중 법안이 통과했다. 상임위원회 전체 회의와 달리 소위원회 회의는 영상으로 남지 않는다.
지난달 11일 열린 소위원회 회의록 일부. 신정훈 의원이 거칠게 항의하는 중 법안이 통과했다. 상임위원회 전체 회의와 달리 소위원회 회의는 영상으로 남지 않는다.

“임기 중 제한은 위헌 아냐”

<단비뉴스>는 연임 제한을 현직부터 적용하는 법안이 헌법 원칙에 어긋나는지 전문가에게 확인했다. 헌법소원 같은 헌법재판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3명과 헌법학 교수 1명에게 자문한 결과 이들 모두 헌법재판소가 논란이 된 법안을 위헌으로 판단할 우려는 거의 없다고 답했다. 

법을 만들기 전에 일어난 일이더라도, 끝나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면 헌법재판소가 소급입법을 허용한다. 조합장 선거는 지난 일이지만 조합장의 현재 임기는 이제 막 시작해 진행되고 있어 연임 제한을 현직부터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형사법이 아닌 영역에서의 소급입법은 기존 법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중대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금지된다. 차진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는 “예외에 해당하려면 법을 바꿔야 할 공익보다 개인의 이익이 훨씬 커야 하고, 아주 강력해야 한다”며 조합장의 이익은 “앞으로 두 번 더 연임할지, 세 번 더 할지 정도여서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창훈 변호사는 “농협 조합장은 헌법상 보호되는 선거가 아니”라며 “민주사회의 피선거권을 제한할 때는 매우 엄격해야 하지만 공직자가 아니라 사적 결사체의 대표자를 뽑을 때는 기본권 제한을 비교적 폭넓게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임기 중 연임제한을 적용해도 위헌이 아니라는 데 자문을 한 전문가 네 명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래픽 김다연 기자
임기 중 연임제한을 적용해도 위헌이 아니라는 데 자문을 한 전문가 네 명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래픽 김다연 기자

그렇다면 이미 3선 넘게 연임하고 있는 조합장은 아예 다음 선거에 나올 수 없게 한다면 어떨까? 이 질문에는 전문가들 의견이 갈렸다.

이명훈 변호사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집권해온 조합장이 많은데 꼭 앞으로 세 번 더 연임해야겠다는 개인적인 이익은 크지 않다”며 “이 경우라도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례에 따라 이미 끝난 일에 대한 소급입법이 무조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법으로 지켜야 할 개인의 이익이 아주 작거나, 법을 바꿔 이룰 공익이 매우 중대해서 사익보다 현저히 앞서는 두 가지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반대로 김광재 변호사는 “농협 개혁도 공익은 공익이지만 매우 중대한지는 따져야 한다”며 “공소시효 완료에도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5.18 특별법 정도의 중대성이 있어야 하는데, 사적 결사체인 농협을 굳이 소급까지 하면서 규제하면 위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장기 연임이 꼭 부패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라며 “고치지 않고 뒀을 때 피해가 계속 커지는 등 시급성이 작고, 지금부터 연임제한을 하더라도 법의 취지는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차진아 교수와 조창훈 변호사는 공익과 신뢰 보호 이익을 구체적으로 비교해야 한다며, 합헌일지 위헌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수석전문위원 ‘위헌성’ 발언 근거 없어

그런데 애초 위헌논란에 불을 지핀 건 농해수위 수석전문위원이었다. 지난 3월 소위원회 회의에서 법의 적용 시점이 언제인지 잠시 혼란이 생겼다. 김승남 소위원장이 발의된 법안 내용이 현직부터인 것을 확인한 뒤 논의를 계속하려 하자 권영진 수석전문위원이 발언을 자처해 “그렇게 하면 소급이 돼 버린다”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상임위마다 전문위원실을 설치하고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 등을 둔다. 수석전문위원은 이 부서의 장으로 책임자다. 국회법에 따라 상임위는 법안을 심사할 때 전문위원이 쟁점을 정리한 검토의견을 반드시 먼저 들어야 하고, 전문위원은 심사 중에도 발언할 수 있다. 영향력이 큰 만큼 전문위원은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김승남 소위원장은 “법안에 있는 대로 하자”며 수석전문위원에게 발의된 법안 4건 모두 적용 시점에 관한 내용이 같은지 확인을 요구했다. 이들 법안의 경과규정은 같다. 하지만 권영진 수석전문위원은 “(규정을) 다음부터 적용해야지 이분들(현직)한테 그렇게 적용하게 되면 위헌 결정을 받는다”며 “예전에도 그렇게 많이 받았다”고 다른 답을 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수석전문위원을 비롯한 전문위원실이 회의 전에 검토를 거쳐 준비한 내용은 아니었다. 권 수석전문위원은 <단비뉴스>와 통화에서, 현직부터 임기를 제한하는 경과규정이 위헌 결정을 받은 사례가 실제로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번 경우와 맞는 사례는 없다”며 “(일반적으로) 소급입법은 위헌인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11일 열린 농해수위 전체회의. 이날 회의에서 농협 중앙회장의 연임 허용과 지역 조합장의 연임제한이 함께 의결됐다. 영상자료 국회영상회의록
지난달 11일 열린 농해수위 전체회의. 이날 회의에서 농협 중앙회장의 연임 허용과 지역 조합장의 연임제한이 함께 의결됐다. 영상자료 국회영상회의록

권영진 수석전문위원은 “당시 위헌을 단정하지 않았다”며 “회의가 끝난 뒤 저도 자신이 없어서 그럼 입법 사례를 찾아보겠다고 의원들에게 얘기했었다”고 해명했다. 자신이 위헌 문제가 있다고 보고한 내용이 사실인지 법리를 확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연임제한을 현직부터 적용한 입법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한 것이다.

오히려 이 문제를 검토해 본 건 정부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 회의에서 경과규정이 쟁점이 된 이후 전문가들로부터 위헌 우려가 적다는 법리검토 의견을 받았다. 이동기 농림부 농업금융정책과 사무관은 “법무법인 세 곳에 자문했는데 같은 답변이 나왔다”며 “결과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관과도 전화로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졸속 심사, 결점 남긴 개정안

2개월 만인 지난달 다시 열린 회의에서 권 수석전문위원은 선출직의 연임제한을 현직부터 적용한 입법 사례는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입법 사례보다 법안이 정말 위헌인지가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었다. 신정훈 의원은 전문기관에 법리검토를 의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논의할 시간이 없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법안을 처리하기로 여야 합의가 돼 있었고, 오전 소위 회의에 이어 오후에는 상임위 전체회의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오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오간 대화 일부. 이날 오후 상임위 전체회의가 열려 추가 검토 없이 연임제한 안건이 가결됐다. 사진 출처 국회영상회의록, 그래픽 김다연 기자
지난달 11일 오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오간 대화 일부. 이날 오후 상임위 전체회의가 열려 추가 검토 없이 연임제한 안건이 가결됐다. 사진 출처 국회영상회의록, 그래픽 김다연 기자

법안이 위헌이라고 한 보고를 결국 바로잡지 않은 데 대해 권 수석전문위원은 “의원들이 법 논리로만 의결하지는 않았다”며 “소급 적용한 입법례도 없었고 당선 직후인데 연임을 제한하기 어려운 정서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답했다. 자신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임위에서 비상임조합장의 연임제한과 함께 의결된 농협중앙회 회장의 1회 연임 허용은 이성희 현직 회장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당사자에게 이익이 되는 규정은 소급 입법을 해도 위헌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농해수위는 두 가지 내용을 함께 반영한 단일한 법안을 새로 만든 뒤 다시 상임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한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아닌 이상, 국회 관례상 일단 법안심사소위를 넘은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오랫동안 필요성이 제기된 농협 개혁 과제 하나가 해결됐지만, 입법이 너무 늦어진 데다 이마저도 졸속으로 심사돼 결점을 남겼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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