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지방대 살린다는 교육부 정책에 사립대·전문대의 자리는 어디?

충청권의 상당수 사립대가 정부의 지방대 선별 지원 사업인 ‘글로컬대학 30’에 응모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비뉴스>가 지난 3일부터 14일까지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에 있는 총 39개 대학 가운데 19개 대학 본부에 일일이 확인한 결과, 10개 대학이 ‘응모하지 않겠다’거나 ‘응모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답했다. 지원 사업 응모에 부정적인 이들 10개 대학 중 9개 대학이 사립대 또는 전문대였다. 또한, ‘사업에 응모하겠다’고 밝힌 나머지 9개 대학 가운데 8개 대학은 ‘응모해도 교육부의 지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낮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다.

충청도 소재 대학 19곳에 글로컬대학 응모 여부를 문의해 정리했다. 그래픽 김다연
충청도 소재 대학 19곳에 글로컬대학 응모 여부를 문의해 정리했다. 그래픽 김다연

<단비뉴스>가 직접 확인하지 못한 충청권의 나머지 20개 대학 가운데 15곳이 사립대이거나 전문대여서 ‘글로컬대학 30’에 응모하지 않는 충청 지역 대학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전국 각 지역 대학의 교수들도 대규모 공동행동을 준비하고 있어, 이 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지난달 16일 시안을 공개하고, 지난 18일 확정·발표한 ‘글로컬대학30’은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위기에 놓인 지방대를 구제하겠다는 정책이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있는 대학 가운데 소수를 선발하여, 1개 대학에 5년간 최대 1,000억 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단일 대학에 투여되는 정부 지원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10개 안팎의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하고, 2026년까지 매년 추가하여 총 30개 대학을 선정할 예정이다.

교육부 대학공시 자료인 ‘대학알리미’를 보면, 2023년 4월 현재 국내 비수도권 대학의 수는 모두 273개다. 대략 10대 1의 경쟁을 거쳐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 유현정 주무관은 “대학 종류를 구별하지 않고 담대한 혁신을 추진하는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할 계획”이라고 <단비뉴스>에 말했다.

정책 발표 직후부터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7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공공적 고등교육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전국교수연대회의)는 지난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글로컬대학 사업이 사회적 공론화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김명환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은 “학생이 몰리는 극소수 대학만 남기는 정책이 ‘글로컬대학30’이다. 지역 소멸을 해결하기는커녕 살아남은 지역 대학의 경쟁력도 강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발의 배경에는 소수의 지역 국립대학만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장원석 대원대학교 기획처장은 “올해는 국립·사립·전문대를 합쳐 10개만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한다는 것인데, 지방 거점 국립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은 인프라 등에서 취약해 (국립대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단비뉴스> 취재 결과, 이번 사업에 응모할 계획이라고 밝힌 충청 지역 9개 대학의 기획처 또는 기획팀 책임자 가운데 8명은 ‘응모는 하겠지만, 우리 대학이 선정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서류 제출 전부터 비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교육부의 선정 기준이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대전·세종·충남 지역 대학 총장들과 만나 ‘글로컬대학3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대전·세종·충남 지역 대학 총장들과 만나 ‘글로컬대학3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혁신성’을 선정 기준의 핵심으로 제시했고, 특히 대학 간 통합, 학사제도 유연화, 지자체 및 산업계와 협력 강화 등을 혁신의 예시로 제시했다. ‘대학 간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지역 산업체와 협력’하는 대학일수록 ‘글로컬대학’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대학 간 통합을 선정 기준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 조성훈 중원대학교 기획팀장은 “국립대학들은 서로 협력해 나갈 방향을 찾기 쉽겠지만, 사립대는 (통폐합 논의 등을 위해) 협력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가가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국립대의 통합은 비교적 수월하지만, 재단이 서로 다른 사립대는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어려워 통합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마침 국립대인 충남대와 한밭대는 지난해 12월 28일 ‘대학 통합 논의 공동 선포식’을 열었다. 이들 대학은 대전광역시에 있지만 ‘비수도권 대학’으로 분류되어 ‘글로컬대학’에 응모할 수 있다. 조성훈 중원대 기획팀장은 “만일 충남대나 한밭대가 교육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다면, 이미 정부가 예산을 대고 있는 국립대학에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정 기준인 산학협력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지역에 좋은 기업이 있어야 산학협력을 할 텐데, 양질의 기업체가 많은 지역에는 주로 지역 거점 국립대가 자리 잡고 있다. 권순양 세명대학교 기획팀장은 “충주와 청주 등에는 산업체나 기관들이 많으니 산학협력 차원에서 대학이 도모할 혁신의 폭이 넓다. 이에 비해 세명대가 있는 제천은 충북에서도 외진 곳이고 큰 기업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지역적 불리함을 극복하려면 세명대가 다른 대학보다 더 혁신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7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전국교수연대회의가 지난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공적 고등교육정책과 대학균형발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제공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7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전국교수연대회의가 지난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공적 고등교육정책과 대학균형발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제공

대학 간 격차가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통폐합이나 산학협력 등을 기준으로 지원 대학을 선정하는 게 과연 공정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강원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김일규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지자체와 대학의 협력 위에서 지역혁신을 하겠다는 ‘리스’(RIS) 등 다른 지방대 사업에 대한 정부 심사에서도 규모가 큰 거점 대학이 더 유리했다”면서 ‘글로컬30’ 사업에서 같은 일이 재연될 것이라 우려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리스’(RIS)는 지역 경제와 지방대 활성화를 위해 국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2020년 시작됐다. 이 사업을 통해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같은 지역에 있는 여러 대학이 ‘대학 플랫폼'을 구성하고, 그 가운데 한 대학이 ‘총괄대학’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총괄대학은 플랫폼에 참여한 다른 대학의 사업과 지원금 지급 여부를 심사하는데, 지난해까지 충북대, 충남대, 경상국립대, 전남대, 경북대, 강원대가 각 지자체의 총괄대학이었다. 이들 6개 대학 모두 해당 지역의 거점국립대다.

여러 우려에 대해 교육부 ‘글로컬대학위원회’의 자문위원인 박철우 한국공학대 교수는 <단비뉴스>와 인터뷰에서 “‘글로컬 30’ 정책은 지역별 핵심 대학을 육성해 지방을 살리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문제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앞으로 10년은 지방의 거점도시와 중소 도시 간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시야를 넓혀 전국에서 (학생들이) 찾아오는 지방대학을 육성해 지역 인프라를 살려낼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 유현정 주무관은 “여론 수렴을 위해 권역별로 공청회를 여는 등 대학 현장의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 “규모가 작은 대학도 그 규모에 맞는 혁신 전략을 가졌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국립대만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30’ 사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촉박하다는 여러 대학의 의견을 수용해 기획서 제출 마감 기한을 기존 4월에서 6월로 늦췄다. 최종 선정 결과는 9월에 나올 예정이다. 한편, 7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전국교수연대회의’는 1천 명 이상의 교수·연구자가 참여하는 전국교수대회를 오는 5월 20일 개최하고, ‘글로컬대학 30’ 정책을 비판하는 교수·연구자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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